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제로 대제"을(를) 전체 찾아보기

제로 대제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몽키 D. 루피 . . . . 15회 일치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물론 '''일반적인 루피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냉철한 구석도 있다는 뜻이지, 루피라는 인물 자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러설 때를 알기는 하지만 당장 동료나 친구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에니에스 로비|상]][[정상결전|황]]이면 몇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달려든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절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상 넣으면 의식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상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상황상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주인공이 크는 건지 필살기가 크는 건지 모를 괴이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상인 배틀만화에서 필살기를 부각시키지 않고도 화려한 전투 씬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액션 마니아들에게 작품의 매력의 하나로써 어필된 바가 크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들에게는 [[사카타 긴토키|간판 기술의 부재]]라는 부담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인기가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고[* 고무고무 바주카나 고무고무 도끼의 경우는 사실 많이 쓰는 편도 아닌데 인기가 좋고 폭풍우도 따지고 보면 두세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인기와 지명도는 굉장히 높다.][* 사실 초반의 강력한 필살기가 후반에서 인플레를 맞고 쩌리가 되는 상황도 배틀만화에서 많이 보여지는 경향인데, 루피같은 경우는 되려 초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후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취급이 비슷하기 때문에 되려 잊혀지는 기술이 없다. 정상결전 직전인 에니에스 로비 편에 가서 대미를 장식한 기술이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쓸 줄 알던 고무고무 개틀링인 셈이니 정말로 잊혀지는 기술이 없는 셈.] 실제로 격투 게임 등에서의 취급이 손쉽다는 결과는 그야말로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펠다운 탈옥에서부터 예전에 싸웠던 적들이 대거 재출연하면서 꽤 우호적인 관계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크로커다일, 버기, Mr3 등이 있다. 특이 케이스로 인성 자체가 변한 베라미, 이 경우는 루피가 베라미를 끌어들였다기 보다는 베라미가 스스로 변한 것이지만. 또 같은 초신성으로 명백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들과도 얽혔다 하면 친분을 만들고 인맥을 쌓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팔가 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루피를 정상결전에서 피신시키고 치료해주며 현재는 동맹[* 사실 이것도 루피를 이용해 스마일 공장을 박살낼 의도가 컸지만 아무래도 루피는 로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듯 하며, 실제로 로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알게모르게 루피를 위해 움직일 때가 많다. ]을 맺은 상태이다. 물론 이들은 엄밀히 말해 징베나 행콕과 비슷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전, 현직 칠무해이며 적이 될 사람들까지도 어느 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루피의 [[패기(원피스)|'사람을 이끄는 자질']]을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 '''[[시저 클라운]]''' - 반죽여놓고서 고무고무 그리즐리 매그넘으로 쏘아버렸다. 루피가 싸운 적 중에서 가장 루피를 열받게 만든 인물 중 한 명이다. 실제로도 작중 공인 루피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
          * '''[[제트(원피스)|제트]]'''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에는 실력자가 없었다.] 제트와의 3 번째 대결에서 끝내 이겼다. 하지만 3 번째 대결때는 기어를 이용해서 싸워 왔으나 막판에는 단순히 무장색 강화만 써서 서로 주먹 교환에 집중했다. 이 때 제트가 신념에 신념으로 답해준다면서 핸디캡으로 오직 팔에다가만 무장색 패기를 두르고 공격을 맞아주었기에 건강과 나이 때문에 한계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던 것.[* 실제로 루피의 무장색 패기를 담은 주먹은 제트의 부하인 슈조의 무장색 패기 + 철괴에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하거나 패기를 담은 주먹에 막히기도 했다. 30년이 넘게 무장색 패기 마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제파의 패기의 힘을 생각하면 제파가 전신에 무장색 패기로 무장을 했다면 루피는 데미지를 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싸움마저도 루피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으면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엘리펀트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레드 호크(불주먹)같은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사실 이런 기술은 2년 후에 루피가 등장하면서 쓴 지 얼마 안 되었던 기술이고 게다가 현재 시점으로 아직 2년 동안 수련된 상태의 루피의 기술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
          * '''[[마젤란(원피스)|마젤란]]''' - 루피를 독독 열매 능력으로 꺾는다. 어차피 죽을 거라 생각하고 버려두는데, 실제로 놔뒀으면 죽었을 상황이지만 Mr.2와 [[엠폴리오 이반코프]]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는다.
          * [[후지토라]] - 후지토라가 루피가 떠나는 길을 막자 대결. 하지만 조금 싸우고 강제로 배로 이송된 덕분에 결판은 내지 못했다. 짧은 대결이었지만 후지토라도 루피와의 전투 중 조금 헐떡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2부 루피가 1부에 비해서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다만 루피가 후지토라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겨룬 것은 후지토라 쪽에서 '''중력 능력과 무장색 경화를 사용하지 않고''' 대결해서 그런 듯 보이며,[* 루피는 후지토라의 '''열매 능력도, 무장색 경화도 쓰지 않은 평타'''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색 경화에 기어3'''까지 동원하며 대응했다. 이게 흠좀무한게 기어4를 제외하면 루피의 기술 중 기어3+무장색 경화가 가장 강한 축에 드는 기술인데, 이것을 '''능력도 쓰지 않는 일반 공격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항한 것이다.'''] 실제로 능력을 사용했을 때는 루피가 한 방에 밀렸다. 또, 후지토라가 헐떡이던 것은 루피와의 싸움에 지쳐서 라기보다는 --건방지게-- 장님이라고 후지토라에게 어떤 공격을 할지 알려주려했던 루피에게 분노하여 그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카즈키랑 전보 벌레로 분노를 표하며 말다툼을 했을 때도 헐떡이던 묘사가 있다. 그리고 루피를 봐줬다는 증거로 싸울 때 폭소를 했을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 은지원 . . . . 13회 일치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실제로 보면 무표정한 얼굴에 눈매가 정말 매섭고 ~~다크서클도 진해서~~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다. --죽여달라거나 덮쳐보자는 식의--센 문구 투성이였던 당시 팬들의 응원 현수막에는 정말 이례적으로 매우 공손하게 '은지원! 쳐다봐도 되나요?'라는 문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젝키 멤버들이 밴에서 내릴 때 은지원만은 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줄(...) 정도로 포스 있었다. 현장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은지원의 말은 알아서 꼬박꼬박 잘 들을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지니 집에 가라고 하면 순순히 갔다고 한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팬들에게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장난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고민이었는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 아니지만 웃음을 주어 친근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필 같은 것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은초딩이 되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의외로 연기 활동도 좀 했다. ~~[[흑역사]]지만~~ [[영화]] [[세븐틴]]과 [[여고생 시집가기]]를 통해 영화 2편 주연을 한 영화 배우이며[* 그러나 여고생 시집가기를 함께 찍은 배우 임은경은 이 영화 이후로 더 이상 스크린에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여고생 시집가기가 입봉작이었던 감독도 그 이후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QTV 20세기 미소년을 통해 은지원 본인이 직접 밝혔다.], MBC 추석특집 '옥탑방 구렁이'에서도 [[윤은혜]]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그 외에도 MBC [[뉴하트]]에 레지던트 카메오 역으로, 최근에는 tvN [[응답하라 1997]]을 통해 30대 중반에 고등학생 역할을 또(...)했다. 응답하라 1997의 [[이우정]] 작가는 '은초딩' 캐릭터를 만들어 낸 KBS 예능 '1박 2일'의 작가로 응답하라 1997의 모티브가 은지원과 (1997년에 데뷔한) 젝키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7'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 된 것은 은지원이었다고 한다. ~~극 중에서 깨알같이 본인 디스도 했다~~
         2013년 출연한 [[나 혼자 산다]]에서는 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성격차이로 인해 부딪히는 점이 많았다.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라고 언급했다. ~~게임도 성격 차이라면 성격 차이다~~ 이혼 이후 가끔 방송상에서 본인의 이혼을 자폭 소재로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꽤 상심이 컸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성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뭉쳐야 뜬다]]에서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를 듣고 [[정형돈]]은 "요즘에 그런 건(이혼) 절대 흠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당사자가 안 돼봐서 모를 것이다"라고 답했다.]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팬]], [[아기]], [[동물]], [[이재진(젝스키스)|젝]][[김재덕|키]] [[강성훈|멤]][[고지용|버]][[장수원|들]] 한정으로 약하다. 실제로 팬들을 굉장히 많이 챙긴다. 아기랑 동물만 보면 혀가 짧아지기까지 한다. 다만 [[20세기 미소년]]에서 아기보기 에피소드가 등장했을 때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는데, 자신은 아기랑 싸울 것 같아서 어렵다고. 전형적인 '''자기도 애같아서''' 잘 놀아주는 타입.
          * 춤을 젝스키스 하면서 처음 췄다고 밝혔다. 이전엔 기껏해야 안무를 따라하는 정도였다고. 이재진은 '지원이형 춤 못 춰요'라고 농담삼아 디스했고, 실제로도 프리스타일 댄스에는 약하다. 하지만 안무를 할 때 춤선이 멋있다는 평가가 많다.
          * 그리고 [[나루토]], [[원피스(만화)|원피스]]의 팬이라는 듯.[* 실제로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가아라|모래 압사 사고]] 관련으로 나루토 관련 사연 문제를 내자, 다른 MC들은 몰라서 어쩔 줄 몰랐던 데에 비해 은지원은 문제의 답을 유창하게 해석하면서 쉽게 맞혔다.][* 신서유기6에서도 농부 분장을 할 때 밀짚모자를 쓰고 "루피다 루피!"라고도 했다.] 나루토 애니와 원피스 애니를 보면서 운 적도 있다고 한다. [[네모바지 스폰지밥|스폰지밥]]의 한국판 오프닝을 부른 적이 있어, 1박 2일에서 캐릭터 퀴즈로 스폰지밥이 나왔을 때 손쉽게 맞혔다. [[신서유기]]에 나온 모습에 따르면 [[드래곤볼]]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 '''같은 1978년생인 [[최현우(마술사)|최현우]], [[나얼]]과 같이 사기급으로 [[동안]]이다.''' --사실 젝키 멤버들 전체가 동안이다.-- 실제로 은지원은 연예계에서도 알아봐주는 동안연예인이면서 하는 짓도 초딩같고 그렇지만 벌써 '''마흔'''이다. 다만 얼굴이 너무 동안인데다 은초딩의 싱크로율이 너무 적합해서 그다지 부각되지도 않고(...) 지금 얼굴과 젝키활동 시절의 모습을 비교하면 얼굴선이나 눈매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만 빼면 거의 차이가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치열 교정을 하라고 했음에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는 일화나[* 실제로 풀샷이 잡힐 때나 입을 벌리고 있을 때(뭔가에 집중하거나 오디오 겹침 때문에 멘트 대기중일 때 자주 그런다) 보면 위쪽 치열이 상당히 앞으로 나온 편이다. 그래서 일부 캡쳐에서는 앞니가 튀어나와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연예인임에도 피부 관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2016년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생전 처음으로 피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지원 본인의 말로는 젝스키스 해체 이후 솔로 가수로서 출연한 모든 방송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고...]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은지원의 관리 받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흠많무. 현역 10, 20대 아이돌을 압살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흡연이라는 동안 유지에 치명적인 디메리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는 팬들을 위해 금연하는 중이다.] 최근 동안 얼굴이 큰화제가 되어 뜻밖의 월드투어(기사로)를 하는중이다.
  • 김재규 . . . . 12회 일치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만, 소극적인 국민들의 성격과 견고한 기득권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근·현대사를 통틀어 당사자 개인에게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진 사례는 실제로 흔치 않다. 또한 [[박정희]] 본인은 [[이승만]]이나 [[전두환]], [[노태우]]와는 달리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결코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또,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수천, 많으면 수만에서 수십만의 애꿎은 목숨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을 대신 이루어준 것이 과연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제로 [[장준하]]가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당시 감방동기였던 이해학 목사는 "당시 장준하가 '이제 민중투쟁으로는 안 된다. 양심적인 군인을 포섭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 말고는 박정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절망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 실제로 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 내의 시민들이 대거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또 [[김영삼]] 당시 [[신민당(1967년)|신민당]]총재 외에도 [[김대중]], [[이철승]] 등 호남인사가 신민당에 있었고 [[여촌야도]] 현상이 강하여 수도권 민심이 야당에 있었으므로 단순히 부마에만 그치지 않고 '''호남, 수도권까지 퍼져 전국적으로 경찰,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규모 충돌'''이 생겨 엄청난 희생자가 났을 것이다.
         2015년 박권흠 전 의원이 김영삼과 김재규가 단 둘이 나눈 대화 내용을 한 언론매체에 공개하였는데, 당시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 1979년 김영삼은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과 공화당은 김영삼의 발언을 '사대주의적 망언'으로 규정하고 국회의원직 제명을 시도한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양 측을 중재하고자 김영삼에게 만남을 요청하여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박권흠 전 의원이 공개한 둘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76|#]]
         실제로 쿠데타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장관들을 모아놓고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를 정권탈취시도로 보는 경우도 많다. 김재규 본인은 권력장악을 의도하지 않았고, 유신의 잔재를 청산한뒤 물러나 박정희 묘에 시묘살이나 할 생각이라고 했었지만 이런거야 자기만 아는 일이니까.
         >한 교수는 “[[박정희]] 정권은 당시 [[부마항쟁]]을 비롯한 일련의 민중저항을 통해 어차피 붕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김재규의 행위가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김재규의 행동이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그 뒤 실제로 5·17 쿠데타를 통해 더욱 폭압적 군사정권인 [[전두환]] 체제가 들어선 점에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전화를 받을 때 일어서서 차렷자세로 받았고, 다른 사람한테 박정희를 지칭할 때는 항상 존칭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10.26 사건]]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항상 "대통령 각하"라고 존칭을 쓰면서 말한다. 또 궁정동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재판정에서 박선호의 증언을 제지하면서까지 막았다. 당시 [[박정희]]조차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남자의 허리 아래는 거론하지 말라"[* 이는 [[이토 히로부미]]도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이토는 생전에 매우 문란한 인물이었다.]고 일축할 정도로 당시 시대에 남자의 성생활 문제를 언급하는게 금기시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남은 여생을 박정희 무덤에 묘막을 짓고 시묘하며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증언으론 박정희를 죽이고 자신도 박정희 무덤에 가서 자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했던 시점은 10.26이 벌어지기 전이기에, 최종적으론 시묘살이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최후진술에서 박정희와는 친형제간도 그럴수 없을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15997&viewType=pc|#]]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 역시 김재규가 자신의 입으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회고했다.[[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90618&path=200404|#]] 그러나 김재규는 10.26 이전에 수차례나 박정희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고, 김재규의 수사를 총 지휘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회고록에서 김재규의 언동에서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10.26 직후 김재규를 목격한 국무위원들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고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는 증언 등 위의 언급을 반박할 행적들이 많이 존재한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70404.99002001133|#]]
         김재규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최초로 명예면관[* 예편과 비슷]을 당한 장교이기도 하다.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7년 6월, 군경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자기 부하를 강제로 연행하려는 [[미 육군]] 장교와 대립각을 세우며 칼로 위협하다 면관을 당한 적이 있다. 이후 고향인 경북 선산으로 내려와 [[대륜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쳤는데 이 때의 제자 중 유명한 사람들이 꽤 있다. 위에서 말한 박선호와 전 국회의장 [[이만섭]]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면관 1년 4개월만에 군에 복귀하였다. 정부수립 초기 군과 경찰은 서로 총질까지 하는 등,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전부 좋지 않은건 아니고 광복군출신과 일제 순사출신과의 사이]
          [[정한용]]이 [[정주영]] 회장이 연상되는 거대 재벌총수로 나오는 [[드라마]].[* 여담이지만 정한용은 [[영웅시대]]에서는 [[정몽구]] 역할을 맡았었는데, 외모가 정몽구와 정말 많이 닮았다.] 여기서는 실명 대신 정보부 부장이라는 호칭 아래 백찬기가 열연했다. 사진상의 김재규와 상당히 비슷했고 원래 정치자금 문제로 [[박정희]]와 같이 회장님에게 충고하는 1회성 출연이었으나 의외로 인기를 끌어 고정 게스트화 되었다. 여기서 박정희로 나온 사람은 연극인 이진수. 박정희와 정보부 부장 2명은 실제 인물과 꽤 비슷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다.
          [[백윤식]]이 열연했다. 김재규와 [[박정희]] 살해 사건을 주제로 한 블랙 코미디 영화. 이런 류의 풍자 코미디가 드문 한국에서는 괜찮은 수작이다. 다만 조롱에 중점을 둔 나머지 영화 속 청와대 사람들에 대한 묘사의 리얼리티는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 희빈 장씨 . . . . 11회 일치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1688년]]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로 승격한 장씨는<ref group="주">승정원일기 기록상 1688년 3월까지 장씨의 품작은 숙원이었다. 시기 상 숙원 장씨가 소의로 진봉된 것은 회임을 한 이유임을 알 수 있다.</ref> 같은 해 10월 28일,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숙종|숙종]]의 장남‘균’(昀)<ref group="주">실록에선 윤으로 읽기도 하고, 균으로 읽기도 한다. 균이라 번역된 기록에도 한자는 윤(昀)으로 쓰여있다. 숙종의 세 아들(昀, 昑, 昍)은 모두 '日'자를 부수로 썼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왕들의 이름은 현재의 독음과 다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종 대에 편찬된 《열성어휘(列聖御諱)》에 경종의 휘는 "균'으로 읽는다[音勻]"고 명시되어 있다.</ref> 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서인의 반응은 싸늘하여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상(喪) 중임을 앞세워 숙종의 득남에 축하연은커녕 하례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음 달인 11월 12일에는 숙종에게서 입궁하여 장씨의 산후조리를 도우라는 어명을 받고 입궁하는 장씨의 생모 윤씨를 지평 [[이익수]]가 명을 내려 사헌부 관원들이 그녀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하인들을 눈 앞에서 매를 때리고 체포하였다.
         [[1689년]] 4월 21일, [[영빈 김씨|귀인 김씨]]가 [[조선 숙종|숙종]]이 빈청 인견의 공사를 적어놓은 종이를 훔쳐 소매에 숨긴 것이 발각되어 유배 중인 [[김수항]]에게 사형의 명이 내려지고, 22일 [[영빈 김씨|귀인 김씨]]의 작호가 삭탈되고 사제로 폐출되었다.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태후]]를 의미한다.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여태후, 측천무후, 서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태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태후는 남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반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실제로 희빈 장씨는 그녀의 처소인 취선당 한편에 신당을 지었고 굿을 하였다. 하지만 희빈 장씨의 측근은 1699년 [[조선 경종|세자 윤]]이 두창에 걸리자 쾌유를 기원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미 세자의 두창은 완쾌되었지만 세자가 후유증으로 안질을 앓았고, 병이 나았다고 하여 신증(떡을 바치는 것)을 그만 두면 귀신의 분노를 산다는 무당의 말에 철거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고문 중에도 번복되지 않았으며 다만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였다는 추가 증언이 더해졌을 뿐이다.
         노론의 입장에서 집필된 《수문록》과 《인현왕후전》에는 장씨가 숙종에 의해 강제로 사사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에 반해, 정사 기록인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자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래는 《인현왕후전》에 묘사된 장씨의 최후이다.
         하지만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사사설을 부정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조선 숙종|숙종]]이 [[승정원]]에 명하여 정식으로 장씨의 자진을 명한<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8일(신유) 8번째기사</ref> 1701년 음력 10월 8일의 유시(酉時), 판중추부사 [[서문중]]·우의정 [[신완]]·이조판서 [[이여]]가 [[조선 숙종|숙종]]을 청대하여 마지막으로 희빈 장씨의 구명을 청하였고, [[조선 숙종|숙종]]의 뜻이 완고하여 자진의 명을 번복할 수 없을 깨닫자 구명을 포기하고 희빈 장씨를 자진시키는 수단에 대해 물었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이 사약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고 답하자 [[서문중]] 들이 말하길, 왕세자를 낳고 기른 사친에게 유사(攸司)의 형벌을 쓰는 것은 《주례(周禮)》에서 금한 것이며, 궁 안에선 사사를 할 수 없으니 사제로 내보내 사약을 써야 하는데 이는 유사의 형벌이 되는 것이라 지적하고 ‘공족(公族)의 사죄(死罪)는 전인(甸人)에게 넘겨 목매어 죽인다’고 간언하였다. 자리에 함께한 모든 대신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 [[조선 숙종|숙종]]은 자진을 명한 것은 유사의 형벌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고 답하였으며, 앞서 [[승정원]]에 명하여 장씨에게 자진을 명하는 교지를 적어 장씨에게 내리도록 했던 어명 역시 유사의 형벌이라는 [[서문중]]들의 지적에 따라 즉시 회수토록 하고 대신 다음날 조보(朝報)에 자진의 명이 있었음을 싣도록 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8일(신유) 11번째기사, 《승정원일기》숙종 27년 10월 8일 (신유) 원본400책/탈초본21책 (38/38)</ref><ref group="주">《숙종실록》의 해당 기사에는 간략하게 편집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승정원일기》의 해당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승정원일기》에는 《숙종실록》에서 누락된 내용인 [[조선 숙종|숙종]]이 승정원에 교지를 쓰라는 어명을 회수토록 한 이후에도 서문중 들이 이제 사친을 잃을 세자의 마음을 헤아려 줄 것과 보호해줄 것을 간언하고 약속받는 내용이 있다.</ref> 이는 희빈 장씨가 사사되었을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함을 증명한다.
         1720년,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즉위하자 장씨를 추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이에 노론이 노골적으로 극심한 반발을 하자 [[조선 경종|경종]]은 [[조선 숙종|숙종]]이 승하한 지 한 달만에 이러한 화제를 올리는 것이 해괴하다며 상소를 올린 유학 조중우를 유배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하였지만 노론은 조중우에게 대역죄를 물어 사형에 처했다. 이 사건 직후, 성균관 장의 윤지술이 [[조선 숙종|숙종]]이 장씨를 죽인 것은 빛나는 업적이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경종과 소론이 이에 대해 분노하여 윤지술에게 유배형을 내리고 곧 처형하려 하였지만 노론은 윤지술의 의기를 높이 사야 한다며 윤지술에게 죄를 주어선 안 된다고 방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와 동시에 노론은 [[조선 경종|경종]]에게 왕세제 책봉을 종용하여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직후 왕세제 대리청정을 주장해 [[조선 경종|경종]]이 정치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신임사화]]가 발발하여 노론이 숙청되었다. 1721년 12월, [[조선 경종|경종]]은 비로소 1년 전에 그의 생모를 모욕한 윤지술에게 사형을 내릴 수 있었다.
         숙종실록 숙종13년 6월 16일 3번째 기사에 "당초에 후궁(後宮) 장씨(張氏)의 어미는 곧 조사석(趙師錫)의 처갓집 종이었는데 조사석이 젊었을 때에 사사로이 통했었고, 장가(張家)의 아내가 된 뒤에도 오히려 때때로 조사석의 집에 오갔었다."는 문장으로 인해 현대에는 장씨가 얼녀로 해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숙종실록의 개정보수판인 숙종실록보궐정오 같은 날 기사에 "장(張: 희빈 장씨) 의 어미가 조사석의 처갓집 종이란 것은 전연 허황한 말이고, 사통(私通)했다는 말은 더욱 무리(無理)한 말이다."로 명확히 정정되어 있는 만큼 진실로 신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숙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에 실제로 공론된 내용이 아니라 [[조선 숙종|숙종]]이 사망한 후에 숙종실록이 편찬되면서 더해진 것으로, [[조선 숙종|숙종]]실록을 완성한 [[조선 영조|영조]] 때의 실록청 총재관이 [[민진원]]이었다는 사실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ref group="주">[[민진원]]은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로 희빈 장씨와 [[조선 경종|경종]]에 대한 원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과격한 발언 및 과장과 거짓말도 서슴치 않아 [[조선 영조|영조]] 초기에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숙종실록보궐정오는 [[민진원]]이 완성한 숙종실록의 내용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전면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개정판이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감시를 받으며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된 만큼 분량과 내용이 미진한게 한계이다.</ref> 승정원일기에도 장씨의 어미와 조사석의 통간 사이를 언급하거나 상징하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김수미(1949) . . . . 10회 일치
         1980년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으로 21년 간이나 열연했는데, 처음 촬영할 당시 겨우 32세의 나이에 노인 연기를 한 것. 게다가 아들인 일용이 역의 박은수보다 나이가 어렸다. 아들보다 나이 어린 엄마였던 것.[* 이전 이 항목에는 박은수가 1살 어리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박은수는 실제 1947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MBC 1기 탤런트 출신이다.(3기인 김수미의 직속선배) 두 사람 다 실제나이와 방송나이를 다르게 활동하였던 걸로 보인다. 실제로도 전원일기의 뒷풀이격 되는 쇼프로그램에서 전원일기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밝힐 때 '''일용이가 일용엄니보다 2살이 많다'''고 자막까지 덧붙여서 나왔다.]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전원일기"에 출연을 통보 받았는데 처음에 어떤 역할이라고 구체적인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기실에서 만난 박은수가 "야 너랑 나랑 한 집에 산다."그러시길래 "어머, 선배님. 우리 부부예요?" 그랬더니 "네가 우리 엄마야." 처음에는 나이도 위이고, 방송사 직속 선배인 박은수와 연기하는 게 좀 불편했지만, 적응이 된 뒤에는 연기할 때는 신나게 '일용이 너 이눔시키'하고 혼내다가 그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 (박은수) 선배님도 적응이 되셔서 아무렇지 않아 하셨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5년 7월, '[[나를 돌아봐]]'가 정규편성이 되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김수미의 매니저 역할 [[장동민]]이 뜬금없이 하차통보를 받았다. 빈 자리는 [[개그맨]] [[박명수]]로 대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나돌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토요일에 편성될 수 있으니 장동민에게 같은 토요일에 방영하는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 하차를 요구했다고 한다. [* 이건 실제로 하차해도 그거대로 문제다. [[더 지니어스]] 자체가 매주 탈락자가 정해져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누가 떨어질까" 궁금해서 팬들이 모이는 건데, 이걸 하차하라는 건 장동민보고 자진하차하거나 방송을 조작하라는 말 밖에 안된다. 그런데 자진하차는 프로그램 구성상 택도 없고 조작을 시전했다간 그 후폭풍은...] 그러나 전 시즌 우승자 장동민이 빠진다는 건 말조차 안 되는 일, 장동민은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하고 나돌에서 하차했다. --그런데 정작 나돌은 금요일로 편성되었다-- 파트너 김수미 역시 장동민의 하차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그런데 무개념 악플러들은 박명수와 같은 전라도 군산 출신인 김수미가 입김을 넣어서 장동민을 하차시켰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추측을 하고 "망할 전라도 놈들", "같은 전라도라서 니가 꽂아줬냐"라는 식으로 애꿎은 김수미를 원망하며 비난했다. 이에 김수미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제작 발표회에서 자신이 [[지역감정]]에 대한 악플을 보고 상처받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제작 발표회에서 [[조영남]]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조영남과 말다툼을 하며 현장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이후 김수미는 '나를 돌아봐'를 포함한 모든 연예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7월 20일, 김수미는 계속되는 제작진과 이경규의 설득 끝에 출연 중단 의사를 번복하고 '나를 돌아봐' 출연을 결정지었다. --조영남과 판박이--, --[[이경규]]는 뭔 죄?--
         [[네티즌]]들은 김수미가 조영남에게 무척 까칠했던 까닭을, 조영남 과거로 여겼다. 한때 조영남은 배우 [[윤여정]]과 결혼했다가, 나중에 갈라섰다. 그런데 갈라선 까닭도 놀라웠다. 조영남이 옛날부터 워낙 심각한 바람둥이였기 때문이다. 윤여정은 조영남과 갈라선 뒤부터 조영남이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한다. 실제로 조영남의 'ㅈ'조차 입에 안 담는다. 윤여정과 김수미는 사실 서로가 매우 가까운 사이인데, 파일럿 당시 김수미는 파트너였던 장동민에게도 윤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 김수미가 장동민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는 방송국대기실에서 김혜자와 윤여정이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때 옆에 있던 김수미를보고 윤여정이 "야 김수미 너 선배들앞에서 싸가지없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냐?"라고 말을했고 이말을 들은 김수미가 "아니 그럼 언니는 뭔데 선배님앞에서 맞담배질이냐"라고 받아친 사건이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고있던 김혜자가 윤여정한테 "김수미말이 맞다 윤여정 네가 잘못한거다"라고 김수미편을 들어줘서 상황이 끝났다고한다.] 그런데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이 계속 여자타령을 하자 심기가 불편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여론은 안 좋은 과거가 꽤 알려진 조영남과 자신보다 4살 위인 조영남[* 조영남 나이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본인이 1944~45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부모도 한국전쟁 피난 중에 자식들 태어난 나이들을 헷갈리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43~46년생 연예인들과 친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언제라 해도 1949년생 김수미보다는 나이가 많다.]을 배려하지 않은 김수미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다. 풀 영상을 보면 김수미가 워낙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조영남이 맞받아 치지않고 자리를 뜬것이 오히려 가상할 지경이긴 한데, 김수미가 문제 발언을 하기 직전에 조영남이 김수미를 이수미씨라고 부른다던가[* 김수미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인물을 조영남이 모를리도 없고, 윤여정과 같은 시기에 방송활동을 해서 기본적인 친분이 있을 뿐더러, 그 이후에도 김수미가 자신이 관여하는 행사에 와달라고 하며 조영남에게 공연을 부탁했을 정도로 사적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웃기려는 드립이었든 진짜 실수였든 김수미로서는 충분히 듣기 불편했을 수 있다.][* 최근 몇년간 방송에서 조영남은 변장하고 나온 [[이국주]]에게 '너 김국주지?'라고 부르는 등 특별히 악의없이 성을 잘못 부르는 사례가 많았으므로, 이수미라고 부른 것도 꼭 놀리려는 고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수미와 이국주는 방송 경력으로나 사적 친분관계로나 전혀 비교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여기서 예를 들기에는 부적절.] 김수미의 안티가 "시청률 3%나 되라" 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조영남이 "그 정도면 높은 거 아니냐"고 하는 등[* 3%면 굉장한 거 아니냐 라고 자기 딴에는 웃자고 한 소리인 것 같은데, 괜히 안티의 악담 발언을 들먹--이면서 깐죽거린--인 것이 김수미에게는 불쾌했던 듯. 장동민 사태 때 김수미도 싸잡아 욕먹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언짢음을 해당 방송에서도 몇 번 내비치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고, 시어머니 사건, 간장게장 사업건 등으로 인해 먹을 욕 안 먹을 욕 다 먹어본 김수미로서는 충분히 예민할 수 있는 부분. 더군다나 말이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어서 듣기에 따라 충분히 "(니 주제에) 3%면 대단한거지 뭐 딴 세상에서 왔냐"라는 식으로 비꼬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물론 실제 조영남 성격상으로 볼 때 큰 생각없이 해본 말일 가능성이 훨씬 높긴 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실제로 들어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발언으로, "나(조영남)에게 3%면 대단한 건데 김수미한테 3%는 낮은 거라니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다" 즉 자기가 인기 없음을 인정하고 김수미의 인기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조영남의 다른 발언은 몰라도 이 발언만 놓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괜히 김수미를 먼저 긁어서 김수미가 --정신줄--이성을 놓았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조영남 발언 후에 김수미에게 발언권이 넘어갈 때 김수미 표정이 매우 안 좋다.
         [[1998년]]에 [[BMW]]의 최고급 대형 세단인 [[BMW 7시리즈|7시리즈]](E38형 740iL V8 4.4 [[DOHC]])를 구입했는데, 김수미의 전속 운전기사가 이 차에 탑승해서 단지 시동만 걸었을 뿐인데 차량이 [[급발진]]하는 바람에 당시 김수미가 출연하고 있었던 연극의 공연 벽보를 붙이고 계셨던 시어머니가 차에 치어 숨지고 말았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1700329119012&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1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6514&publishType=00010|#]] 이 사건으로 김수미는 피해자 신분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며, 시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한때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 [[BMW]]를 상대로 강력하게 [[급발진]] 결함 규명 및 보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패소했다. 김수미는 그렇게나 존경하던 시어머니를 너무 어이없게 잃은 탓에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2000년대]] 초에는 수 년 동안 병에 걸려 연기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무속]] 신앙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퍼졌고, 김수미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한 내용으로 시어머니의 영혼에게 [[빙의]]되어서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물론 진짜 원인은 '''극도의 우울증과 [[PTSD]]'''[* 당시 증언을 보면 환청과 환시까지 있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에, 신내림이 아니라 더한 상황으로 받아들였어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 실제로 당시 김수미가 빙의 등을 주장했을 때 상당수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으며 병상에서 삭발까지 했다.--[[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그리고 BMW는 20년 후 거하게 일을 일으키는데.....]]--
         하지만 결국 병상에서 일어나 회복해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가 몸에 쌓이는 무병에 걸렸는데 연예인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기를 발산하여 회복한 것이라고 한다. 무속인들은 연예인들이란 족속중 상당수가 끼를 발산하지 않았으면 자신처럼 무속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는데, 그냥 한귀로 듣고 흘리자. 실제로 찾아보면 연예인을 하다가 무속인이 된 사례도 꽤 있고, 대부분 요즘 무당들이 점 봐줄 때 무당 팔자로 나오는 손님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기 힘들어서 '요즘은 무당 사주가 연예인 사주랑 거의 같은 거다. 당신이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위로하기도 한다고 한다.--복채 받으려면 손님 비위를 맞춰야-- 또한 그것이 맞든 아니든 무속인들 관점에서 그들이 말하는 사례를 봐도 무당 팔자로 태어나는 사람 모두가 신병에 걸리거나 무당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조선시대 야사에도 무속인 팔자를 타고났으나 기생이 된 사례도 있다고 하고 무속인이 안 된 사례에 대한 민담은 있어 왔다. 김수미가 방송에 복귀한 후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신병을 치유했다는 식으로 책을 냈고, 나름 이쪽 계통에도 유명해진 '묘심화'라는 비구니도 있었다.(박근혜 상대로 한자리 얻으려고 약팔다가 척진 그 인물이 맞다.) 참고로 그녀는 배우 복귀 후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 무당역할을 한 적도 있긴 하다. 극 중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무관이 죽고 그 무관 귀신과 만나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가문 시리즈와 [[맨발의 기봉이]]에서 아들 역으로 나왔던 ~~즐라탄~~[[신현준(배우)|신현준]]을 정말 친아들처럼 아낀다고 한다. 실제로 신현준도 김수미를 어머니처럼 섬기고 있을 정도로 존경한다고...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신의 아들 역할로 나온 배우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조인성]]이라고[* 김수미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맡은 역할인 재벌 2세 정재민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극중 직업은 재벌 사모님답게 미술관 관장이다.] 한다. 모 방송에서 직접 말하길, 신현준은 진짜 그야말로 '아들'같고 좋은 후배 같아서 남자로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조인성은 드라마 이후에 다른 방송에서 만났을때 "엄마~"라고 부르면서 김수미에게 안겼는데 겉으로는 "어 그래 내새끼~"[* 실제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김수미는 [[조인성]](정재민)에게 "어유 내새끼"란 대사를 하는 장면이 많았다. --"내 새끼~ 엄마한테 뽀뽀"라는 대사는 애드립이었다는 설도...-- 둘째 아들인 정재민이 첫째 아들하고 터울(나이 차이)이 많아 엄마로써 어릴 때부터 예뻐해서 커서도 어린 아이처럼 귀여워하며 대하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드라마 촬영할 때 아들 대하던 스타일로 대했다는 것으로 보인다.]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포옹해 줬지만, 실제로 심장이 떨리는 걸 느끼며 --[[심쿵]]-- 속으로 "어머 이게 남자구나" 싶었다고... --조인성이 [[신현준(배우)|신현준]]보다 훨씬 어린데... [[흠좀무]].--[* 실제 신현준은 엄마라고 하기엔 부족하게 김수미와 20살 차이도 안 나지만, 조인성은 김수미의 진짜 자식들과 비슷한 또래이다. 심지어 그녀의 자식들보다 더 어리다. --진짜 아들뻘에게 느끼셨다니...--]
  • 슈가(방탄소년단) . . . . 10회 일치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 '''I know, feel like ㅎ tony montana'''[* 실제로 가사에 ㅎ가 들어간다. 들어 보면 'Huh'에 가까운 추임새다.]
          * 데뷔 전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곡을 프로듀싱한 경력이 있다. 곡의 제목은 [[https://youtu.be/elmH5rBKD-M|518-062]]이며, 이 곡을 프로듀싱하던 당시 슈가는 고등학교 2학년이였다.[[https://youtu.be/uA9I9pE0IbM|#]][* 518은 말 그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062는 광주의 지역번호이다. 참고로 슈가는 대구 출신으로, 지역별 정치적 성향과 당시 곡을 작업하던 당시의 나이를 감안하는 사뭇 놀랍다는 반응이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 실제로 광주에서 나고 자란 멤버는 [[제이홉]]이며, 그 또한 "Ma City"에서 "모두 다 눌러라 062-518"이라는 가사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언급한 바 있다.] [[http://m.pann.nate.com/video/213092772|당시 글]] 참고로 당시에는 gloss라는 예명을 썼다.
          * [[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18/11/be1484b12993a180322807c7015586f4.jpg|피부가 하얗고]] 말을 너무 잘해서 팬들 사이에서는 이빨까기 인형으로 불린다. [[RM]]과 [[정국(방탄소년단)|정국]], 그리고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만장일치로 꼽는 사업을 하면 성공할 것 같은 멤버. 언변이 너무나도 화려한 탓인 듯. 좋게 말하면 설득, 나쁘게 말하면 공갈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은 설득 당해 슈가에게서 맞지도 않는 사이즈의 바지를 샀다고 한다.
          * 슈가가 대구에 부모님을 위한 국밥집을 차려드렸다. 상당히 맛이 좋다는 평이 많다. 슈가의 부모님을 만나뵙기 위해 대구까지 직접 내려가 국밥을 먹으러 갔다는 팬들이 있을 정도이며, 실제로 [[탁재훈]]의 딸이 슈가의 팬인데, 슈가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국밥집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kSF6JWQJEc|링크]] 맛도 좋고 팬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아 장사도 잘 되는 듯 하였으나 부모님께서 최근 건강상의 문제로 가게는 다른 분에게 넘기시고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고, 이름은 "큰맘할매국밥집"이다.
          * 어릴 적 장래희망은 건축설계사였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건축설계사' 라는 단어가 있어 보였었던 것 같다고. 물론 지금도 무언가 설치하거나 고치는 일을 잘한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기계에 강한 듯. 숙소에서 망가진 물건을 잘 수리해준다고 멤버들이 언급한 적이 있다. 실제로도 [[진(방탄소년단)|진]]과 같이 쓰는 숙소 사진에서 등장한 가구들의 대부분이 조립식[* [[이케아]] 가구인 듯함.]이었고, 이사한 숙소의 비데는 슈가가 설치했으며, --[[RM]]: 덕분에 우리 엉덩이가 뽀송뽀송합니다-- RM의 믹스테이프가 발매되었을 때는 [[https://twitter.com/BTS_twt/status/578777871440740352|호들갑을 떨며 벽선반을 설치했다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 애창곡은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방탄밤을 비롯한 여러 영상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음이 올라가면 힘들어하는 듯. 그리고 [[https://youtu.be/yh9L9skRGqs|피아노를 칠 줄 안다!]] 매우 짧은 영상이지만 연주한 곡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흑건]]. 원래 미디과를 준비하던 터라 화성학 쪽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음대 교수인 친척분이 페이스북을 통해 화성학이나 컴퓨터 음악장비, 프로그램에 관한 지식이 대학 교수인 자기 수준이었다고 인증했다.] 그리고 [[가요대제전]] 무대에서에서 짧게나마 [[https://youtu.be/ZKibO8tZyZw|'I NEED U']]를 연주했다. 본 무대에선 핸드 싱크를 했지만 [[https://twitter.com/BTS_twt/status/682607618355941377|트위터에 본인이 직접 연주한 버전을 공개했다]]. 그리고 스타쇼 360에 나온 ‘꽃미남 방탄고등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나와 피아노를 쳤다. [[https://youtu.be/DhZuscK4FkM|영상]] [[방탄소년단]]이 광고 모델인 [[푸마(브랜드)|푸마]] 광고 영상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피아노 칠 때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또한 BTS COMEBACKSHOW에서 즉석 연주를 보였다.
          * Run BTS! 2018-ep.38 [[RM]] 피셜에 따르면 최근 유도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방탄밤이나 V앱을 보면 팔뚝에 근육이 붙은 것을 볼 수 있다.
  • 유승민(정치인) . . . . 10회 일치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국내 예산으로 [[THAAD]]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반대했다고(...) [[http://defense.na.go.kr/servlet/Download?committeeId=2005110000006&boardId=2006011000274&recordId=2014010040549&fileId=01|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방어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식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군]]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사드 2~3포대 추가배치를 주장하였고, 후에 [[성주군]] 배치로 결정된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36495|유승민 "사드,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연합뉴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해 방중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며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http://www.nocutnews.co.kr/news/772179|''UAE 파병'' 결정, 문서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태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이미 돈을 미국이 대기로 합의를 하고 끝난 사안이라서, 우겨도 돈을 줄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사업(비지니스)을 한 사람이라, 속칭 '지르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즉,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방위비 분담 쪽으로 얘기가 올 듯하다.''' 내가 대통령 되면 이거 협상해서 잘 해결할 거다." 라는 것. 실제로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방위비분담금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협상과 각종 통상압박에 맞물려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업자끼리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것''' 이라는 주장으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이 분류도 정확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중부담-중복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부담과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 수준을 장기적 목표로 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낮은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한나라당]] || '''7,613,660 (35.76%)''' || '''당선 (14번)''' || [* 2005년 9월 의원직 사퇴 / 대구 동 을 지역구 재보궐 출마 - 부연 설명하자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이, 같은 17대 국회의 지역구에 공석이 생기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당 지역구 재보궐에 출마한 거다(...)--재선 같은 초선-- 이에 대해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던지라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박근혜]] 당시 당 대표와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의 의중이었다. 사실 이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가 워낙에 쎘던 것도 있다. 실제로 두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도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였고, 당일에도 유승민은 정권 레임덕 + 현역 의원 공천 + 텃밭 프리미엄 + 일반적으로 민주당계가 열세인 재보선임에도 고작 8% 차로 신승했다.] ||
          * 자신을 [[유시민|유''''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삼국지)|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와 [[비박#s-4]],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승민은 [[빠른생일|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 유시민이 JTBC 신년토론에서 말하면서 실제로는 깔 거 다 깠다~~[*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시민의 정치적 대부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
  • 정칠성 . . . . 10회 일치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7년]] [[11월]] 서대문정 [[조선여자기예원]](女子技藝院) 교수로 초빙되었다. 여자기예원 교수로 있으면서 부녀자들에게 수자수, 편물, 공예 등을 가르쳤고 일과시간 이후에도 자신의 사택을 찾아온 부녀자들에게 개인지도를 하기도 했다. [[12월 2일]] 마포청년회 강당에서 열린 [[신간회]] 경성지회 강연에 [[이관용]](李灌鎔), 이관구 등과 함께 연사로 참여, '신간회와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5월 12일 경성부 경운동 천도교기념관에서 근우회 창립1주년 기념식 때 사회자이자 연사로 활동했다. 이때 그는 '근우회 창립 일주년 기념식을 맞으며'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5일]]에는 [[경상북도]] [[영천]]에 파견되어 [[근우회]] 영천지회 조직에 착수하였다. [[6월 7일]]에는 근우회 영천지회 창립발기식을 지원하고 근우회 조직 취지를 설명하였다.
         여자직업사의 수자수 교사와 근우회 각 지회설치 활동을 하면서도 동아일보,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을 발표하였다. [[1928년]] [[5월 20일]]에는 황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황해도 황주지회가 주최한 '사회문제대강연회'에 연사로 참여, '여성운동과 신간회'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강연 주제 중 그는 '우리 조선여자들은 남자들의 완롱물이요, 남자의 위안물이며, 남자들의 일개의 생식기계에 지나지 않는 노예였다.'는 내용이 문제시되어 임석경찰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7월 7일]] [[경성부]] 도화동예배당에서 열린 동아청년회 2주년 기념식에서 '노동청년의 할일'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9월]] 신병 요양차 울산으로 내려가 요양하였다. [[9월 5일]] 요양차 울산 체류 중 경남울산청년회와 동아일보 울산지국 후원하 울산예배당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여자의 불평과 남자의 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9년]] [[3월 3일]] 근우회 경성지회 대회 준비위원이 되어 천도교당에서 근우회 경성지회 대회를 개최하였다.[[3월 7일]] 아현리에서 열린 신춘여성문예대강연회에서 '여자의 속과 해방'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3월 30일]] 근우회 영주지회 창립 준비에 파견되어 영주지회 조직을 지원하였다. [[4월 28일]]에는 근우회 전국지방순회강연 조를 편성하자 [[경의선]]지역 순회강연 연사로 선정되었다.
         5월 22일 평양 백선행기념관에서, 5월 25일에는 진남포에서 에버트 청년회관에서 '근우회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1일]] 근우회 경성지회 상무위원을 겸하였고, 의주에 도착하여 의주공회당에서 강연하였다. 이후 신의주 강연을 거쳐 [[6월 14일]] 인천 내리에서 조선여성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순회강연을 마쳤다. [[6월 18일]]에는 개성 고려청년회관에서 개최된 근우회개성지회 대회 행사에 사회자로 참석하였다.
  • 허정숙 . . . . 10회 일치
         이후 '세상이 귀찮아 중이나 되겠다고' 단발했든(조선일보 1924년 7월 21일자),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강제로 삭발을 시켰든(1923년 12월 13일자), 여성의 단발은 빠짐없이 기사로 소개됐다. 군산 기생 강산월(康山月)이 더 이상 '유산계급 노리개'를 할 수 없다며 단발했을 때는 박스기사로 크게 소개됐다.(조선일보 1925년 3월 20일자)<ref name="chossdd"/> 그러나 [[단발령]]을 최대의 불효와 패륜으로 규정한 [[성리학]]자들은 그가 사회를 금수처럼 만들려 한다, 뉘집의 딸이냐며 비방하였다. 단발 운동을 지지, 주도하던 그는 [[1925년]] 다시 공개 단발을 감행한다.
         귀국 직후 그는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라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귀국한 뒤 [[박헌영]]과 [[주세죽]], [[김단야]]와 [[고명자]], [[조봉암]]과 [[김조이]] 부부 등과 함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허정자는 이때 박헌영, 김단야와 함께 [[화요회]] 3인방으로 불리던 [[임원근]]과 결혼하여 부인이 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이름 정자 대신 정숙을 사용하였다. 허정숙은 여자들이 봉건 이래로 남자와 사회로부터 부당한 억압과 순종을 강요당하였으며, 일제로부터도 억압당한다고 보았다. 그는 조국의 독립에 앞서 당면 과제로 여자들이 우선 남자들로부터 독립하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설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남자들로부터 독립하려면 의식이 깨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1925년]] [[3월 8일]] 전 세계 무산자 부녀들의 기념일인 [[세계 여성의 날|국제무산부인데이]](國際無産婦人紀念日) 기념행사에 참석하였다. 3개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경성여자청년회]] 등의 연합주최로 [[천도교]] 기념관 내에서 열린 기념대강연회에서 그는 [[김조이]], [[박희자]], [[주세죽]], [[박원희]], [[김희자]] 등과 함께 연사로 참석,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의 의의와 여성운동'이란 주제로 강연하였다.
         {{인용문2|[[조선]]의 여자 교육의 시설과 그 방침이 저질이요 수구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더욱 [[기독교]]측 설립의 학교교육의 시설과 그 방침이야말로 무던히도 [[하나님|한우님]]의 명령대로 복종한다면 (생략) [[조선]][[여학교]] 중 그 시설과 방침이 무리에서 떨어지고, 시대에 뒤쳐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피교육자에게 강제로 [[예수]]를 주입하여 사람(여성)이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도 통분한데다가, 정체를 알 수 없고 과학이 버리는 신의 노예를 만들 양으로 하는 것이라던지, 그 학교학생으로서 성실한 신자가 아니면 선생의 귀애(貴愛)와 친절한 지도 보담은 일종의 이단자로 취급하는 행동과 심사는 가증하기가 끝이 없다. 대체 제군들의 조선여자교육의 본의가 거대한 신도 명부 작성에 있느냐, 현실살이 사람 교육에 있느냐<ref>상허학회, 《상허학보 13집》 (깊은샘, 2004) 257페이지</ref>|정숙, "착오된 교육방침" 《신여성 1925년 11월호》 29쪽}}
         [[1925년]] [[10월 25일]] [[기독교|기독교계]]가 준비한 [[전조선주일학교대회|제2회 전조선주일학교대회]]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의 방편으로 [[한양청년동맹]] 등의 주최로 '반기독교대강연회'가 개최되었다.<ref name="gassin">[http://100.naver.com/100.nhn?docid=328799 반기독교운동]</ref> 강연에는 [[박헌영]](朴憲永)의 '과학과 종교', [[김장현]]의 '지배계급과 기독교', [[김단야]]는 '기독교의 기원', 홍순준(洪淳俊)은 '기독교는 미신이다', 김평주(金平主)는 '대중아 속지 말아라', [[박래원]](朴來源) '양면양심의 기독교', 허정숙의 '[[현하 조선과 기독교의 해독]](害毒)' 등의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ref name="gassin"/> 그는 연단에서 [[기독교]]가 우리 민족에게 끼친 해악과 독이라며 [[기독교]]가 노예화를 촉진시켰다며 비판하였다. 허정숙은 [[기독교]]가 지나치게 인간에게 죄의식을 심어준다는 점과, 수동성과 타율성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강연이 있기 전 [[기독교]] 계열의 밀고로 출동한 일제 경찰당국에 의해 해산되고 그도 경찰의 시선을 피해 피신하였다.
         한편 [[조선공산당]]의 비난은 계속되었다. 허정숙은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북풍회]]를 심하게 경계하던 [[화요회]]계 인사들은 이를 믿어주지 않았다. 허정숙은 [[송봉우]]에게 당의 정보를 빼냈다는 소문은 [[코민테른]]에도 보고되었는데 이슈는 정보 유출에서 허정숙과 [[송봉우]]의 동거로 확산된다. [[1926년]] [[12월]] [[제2차 조선공산당]] 전당 대회에서 허정숙과 송봉우의 동거 사실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어 주제로 오르기도 했다.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 조차도 편견을 가졌다.
         [[1929년]] [[일본인]]의 [[조선]]여학생 희롱 문제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발생하여 [[서울]]까지 확대되자, [[근우회]] 서무부장으로 있던 그는 모교인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찾아가 시위 동참을 호소, 독려하였다. 바로 [[이화여전]] 여학생과 함께 학생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만세운동을 사주, 선동했다 하여 검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29년 [[8월]] [[근우회|근우회 상무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30년]] [[11월]] 남편이 감옥에 갇혔거나 독립운동으로 망명했을 때 부인이 순결을 지켜야 되느냐 라는 주제로 [[삼천리]]지 등의 주최하에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정칠성]]과 [[이덕요]] 등은 정조를 지켜야 된다라고 주장했고, 허정숙과 [[유영준]]은 '경제적인 문제 혹은 [[성욕]]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허정숙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며, 그 사람과 영원히 갈라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다른 남자와의 자유로운 연애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김일엽 (승려)|김일엽]]은 '최소한 1년에서 3년 정도는 참아야 된다'고 절충안을 내세우기도 했다. 남편이 투옥되거나 망명했을 때 부인이 정조를 지켜야 되느냐를 두고 토론회가 벌어지자 일부 [[성리학]]자들이 상경해서 회의를 무산시키려 했다가 저지되기도 했다.
         [[1933년]] [[5월 5일]]에는 [[동래군]] [[율전고무공장]] 여공 파업을 주도하였다.<ref name="maeills19330505"/> 월급을 올려주지 않으며, 작은 월급을 미지급하는 일이 잦자 결국 그는 휴직과 파업을 주도한다. [[4월 30일]]부터 [[율전고무]]의 파업을 주도하였으나 월급이 지급되지 않자, [[5월 5일]] 총파업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공장장 [[강원길]]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자마자 갑자기 기절하였고 시위는 각지로 보도되었다. 이때 총파업을 유도하기 위해 파견된 남성 운동가 2명이 체포되었으나<ref name="maeills19330505"/>, 그는 실신을 이유로 체포를 모면하였다. 그는 정숙, 정자라는 이름을 병행하여 사용하였고, 얼마 뒤 감시망을 피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 박근혜 . . . . 9회 일치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박근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나와 '줄푸세'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세금은 '''줄'''이고, 각종 규제는 '''풀'''고, 법기강은 '''세'''운다'는 뜻으로 그의 대통령후보 경선시 주요 정책구호였다. 이 정책은 그녀의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정책이라는 평가가 있다. 자유주의(liberalism)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신분제 등으로부터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던 '고전적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기보다는,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각종 규제로부터 억압받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neo-liberalist)'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ref>[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07052913423936363&type=2 박근혜 바꿔야 산다.]<<[[머니투데이]]>> 2007-05-29 작성</ref> 이는 이후 제17대 이명박정부의 정책에도 많이 반영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3280135 李 “김정일은 만만치않은 터프가이” 朴 “줄푸세 운동해야”] <<[[동아일보]]>> 2007-03-28 작성</ref>
         불안한 당내외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하여 과반 1당을 유지하였으며 그 후 공식적인 당 지도부가 출범하였지만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 문제로 [[김문수 (1951년)|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대립하였고, 결국 [[정몽준]] 대표, 이재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속에 경선을 치렀다. 8월 중순 치뤄진 경선에서 박근혜는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였다.
         [[2013년]] [[10월 14일]], 국정감사 중 [[김광진 (1981년)|김광진]] 의원의 질의를 통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ref>오종택,[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431505 김광진 의원 "사이버사령부도 댓글 작업했다…대선개입 정황"],뉴시스,2013년 10월 14일</ref> 직후 사이버사령부 소속 군무원들이 사용했던 아이디가 공개되었고,<ref>하어영·최현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05849 군 사이버사령부도 대선 ‘댓글 공작’ 의혹],한겨레 1면,2013년 10월 15일</ref> [[10월 15일]]에는 국방부가 자체 수사에 착수했다.<ref>오종택,[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434421 국방부, 軍사이버사령부 대선기간 '댓글 작업' 의혹 조사 착수],뉴시스,2013년 10월 15일</ref> 이후 실제로 댓글 작업이 있었으며 심지어 평일 업무시간대에도 작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ref>김회경·변태섭,[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428583 사이버사령부 요원들, 국정원 트윗 재전송],한국일보 1면,2013년 10월 16일</ref> 최초 국방부는 4명의 소수 인원이 벌인 개인적 일탈이라고 해명했으나 당해 해명이 거짓 논란에 휩싸였으며,<ref>권경성,[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430607 국방부 거짓 해명 논란],한국일보 3면3단,2013년 10월 23일</ref> 뒤이어 추가 용의자들이 공개되는 등 논란은 확대되었다.<ref>임형섭,[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552868 "사이버司 '정치글 요원' 더 있다…확인된 요원 15명" ],연합뉴스, 2013년 10월 23일</ref>
         [[2017년]] [[11월 3일]], [[자유한국당]]은 '1호 당원'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출당·제명 조치하였다. 이로써 박근혜는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본인 의사없이 강제로 당적이 정리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또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떠안게 되었다.
         임기 초반부터 가장 비판을 받아온 것은 인사 실패 문제로,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용한 인사인 [[윤창중]] 전 대변인, '의혹 백화점'으로 불리며 국방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김병관 (1948년)|김병관]], 과거사 관련 교회 강연 논란으로 비판받으며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문창극]] 등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친 '수첩인사'의 실패는 비판을 받는다.<ref>‘박근혜 수첩 인사’가 빚은 ‘데스노트 참사’, 한겨레 2013.03.22</ref><ref>새누리 2년 전엔 '극우발언' 공천 취소... 문창극은 어떻게? 2012년 총선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역사인식 논란 국회의원 후보들 공천 취소, 오마이뉴스 2014.06.12</ref><ref>안철수,송광용 사퇴 파동 "박근혜 수첩인사에 따른 참사", 레디앙, 2014년 9월 23일</ref>
         이후의 행적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켜야 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재산을 은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 실제 박근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삼]]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김경은 기자 |제목=[커버스토리]‘박정희 장물유산’ 언제 원소유주에 돌려주려나 |url=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9090 |뉴스=주간경향 |날짜=2015-04-07 |확인날짜=2015-04-02}}</ref>
         한편 "박근혜가 [[박근령]]의 [[육영재단]] 이사장 해임의 배후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비방글이 동생 박근령의 남편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25756 '박근혜 비방글'은 근령씨 남편이 작성 ]</ref> 이 문제로 [[신동욱 (정치인)|신동욱]] 교수는 징역 1년 6개월형에 확정되었다.<ref>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2/17/7030554.html?cloc=olink|article|default{{깨진 링크|url=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2/17/7030554.html?cloc=olink%7Carticle%7Cdefault }}</ref>
         * [[2014년]] [[4월 16일]]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small>([[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상황을 점검하며)</small><ref>박성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14&aid=0000367321 朴대통령 "참담한 심정, 구조에 최선"…청와대 시상체제로 전환], MBC, 2014년 4월 16일</ref>
  • 우현(배우) . . . . 9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 우리의 여자들 - 시몽역. 라이어 이후로 17년 만에 서는 연극무대. 출연 계기가 표면적으로는 친구인 [[안내상]]의 권유지만 실제로는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에 도전하는 래퍼들을 보고 출연하기로 결심했다고..
         상기했듯이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그것도 연세대 수석입학자에다 총학생회 사회부장직까지 맡은 수재였으니.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외모에 놀 수도 없고 운동도 싫어해서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집안 환경이 공부 잘하는 가족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였다고. 그에 반해 아들 준서는 공부에는 영 관심 없고 게임에 너무 빠져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는 게임도 있지만, 우현 부부 자체가 공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데 친구 [[안내상]]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안내상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련이가 너무 예쁘니까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어디다가 들이대느냐.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우현이 장기간 아내에게 호감을 표시하였으나 아내가 알면서 적잖이 모른 척하거나 거부했고, 그걸 그전부터 조련과도 친분이 꽤 있던 안내상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내상과 조련 두 사람이 같이 부부 역할로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조련이 상당히 미인이라서, 주변 남자 배우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상은 우현이 상처만 크게 받고 끝날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일찍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한다.
         장모님은 유명 소설가인 故 곽의진 씨로, 백년손님에 함께 출연했다.[* 곽의진 씨는 103세의 아버지와 함께 [[인간극장]]-세월이 가면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또한 우현 가족도 아주 잠깐 출연했었다.] 또한 장모님이 실제로 워낙 [[동안]]이고 우현이 워낙 노안인 데다가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장모-사위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종종 오해를 받았았었다.[* 사실 처가 자체가 동안인 인물들이 많으며, 아내와 아들도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편] 실제로도 <백년손님 자기야>에 출연 당시에도 오해하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또한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고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에서도 주택이 있으며, 실제로 가족들과 3여 년간 살았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천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주유소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해서 장모님의 추천으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할 겸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고. 가족들은 김천에서 지냈고, 본인은 일 때문에 [[대구]]과 진도를 오가면서 살았었다.[* 때문에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했고, 주변에서는 "이혼한 거 아니냐"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그 진도 집은 [[동물농장]] 견스테이와 유자식 상팔자 특집 코너[* 대표적으로 아빠, 삼시세끼를 부탁해! 코너. [[홍서범]] 과 함께 코너를 진행했다]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 울릉군 . . . . 9회 일치
         역사적으로 줄곧 그래왔듯이 한국 본토에서 어떤 급변상황이 터지더라도 일단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시비가 붙는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위치이다. 실제로 과거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국땅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자세한 것은 [[울릉군/역사]]를 참조.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도동이 일본인 마을로 통했다면 저동은 조선인 마을로 통했다는 점. 실제로 도동에는 아직도 일본식 건축물이 약간 남아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이후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다.], 묵고 갔다던 당시 울릉군수 관사도 일본식 건물이다.
         그 외 [[대한민국 공군]]의 319 관제대대와 [[777사령부|보안상 소속을 밝힐 수 없는 부대]] 등이 있다. 실제로 북면 북동쪽에 SEC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섬 중에서 기독교 교세가 강한 점은 역시 섬이면서 [[천주교]]가 강세인 [[백령도]]와 비슷하다. 이 백령도는 실제로 지역 유지에 해병대 6여단 소속 해군 [[군종 신부]]가 들어갈 정도이다. 단, 울릉도의 천주교 교세는 개신교와 불교에 많이 밀린다. 본당도 도동에 있는 도동성당과 북쪽 북면소재지에 있는 천부성당 2개밖에 없다. 신자는 1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 울릉SEC연구소-안용복기념관 근처에 있으며 말이 연구소지 실제로는 777사령부의 지부이다.
         항공편이 없다. 다만 군인이라면 군 비행장인 [[강릉공항]]에서 격주로 1대씩 다니는 공군 수송헬기를 이용할 수는 있고,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포항공항]]에서 UH-60 헬기가 출동한다. 때문에 뭍에서 울릉도로 민간인이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은 사실상 배가 유일하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가장 찾아가기 힘든 [[대한민국]] 땅으로 현지에서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2009년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 272,555명 중 외국인은 838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0.3%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해 [[제주특별자치도]]에는 6,523,938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이중 9.7%인 634,354명이 외국인이었다. [[미군|지구방위군]] 경계구역의 극서북단 코너에 위치한 현실상 여객선 타면 발에 채이는 게 외국인[* 미 '''해병대''', '''제7함대''' 간부, '''정치안보''' 외신 기자들 등.]인 [[백령도|국토 반대편의 섬]]과 대조된다.
         2017년 7월 28일, [[롯데리아]]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pc방도 몇 군데 위치해있고 게임도 나름 잘 돌아간다. --초딩 때 한 번쯤 들어봤을 "울릉도 PC방 한 시간에 5천원"-- 실제로는 5천원까진 당연히 아니다. 물론 좀 비싼 곳도 있기야 하지만 그래봐야 1000원 중후반대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9회 일치
         ||<:><#4C4C4C>'''{{{#FFFFFF 출생}}}'''||[[1973년]] [[3월 15일]]([age(1973-03-15)]세)[* [[1973년]] [[3월 15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고 실제로는 1972년 12월 15일이라는데 공신력있는 증거가있으면 추가바람.] / [[전라북도]] [[군산시]] [br] 물고기자리/검은소띠 (계축년) ||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더불어 공약으로 게릴라 데이트를 찍으면서 [[연예가 중계]] 생방송 스튜디오 방문도 걸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8월 8일에 실제로 연예가 중계 생방송 스튜디오에 나와 15분 가량 인터뷰를 한 뒤 돌아갔다.
          * 자타공인 연예계의 대표 패셔니스타. 그가 레드카펫이나 공식행사에서 입은 의상은 바로 인구에 회자되며 무슨 옷을 입고 나타나는지가 대단한 관심거리가 된다.[* 실제로 시상식에 참가하면 그 날의 패셔니스타로 무조건 뽑힌다고 봐도 될 정도로 댄디하면서 멋진 수트핏을 연출한다.] 유수 명품 패션 브랜드의 파티에도 꼭 초대받는 패션 셀렙. 개인적으로는 댄디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하며 좋아하는 브랜드는 입생로랑, 디올옴므 등이라고... 그렇지만 럭셔리하게 옷장을 몇 개씩 채우고 있을 이미지와는 다르게 쇼핑은 일 년에 두세번 하는 정도로 그친다고. 돈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며 옷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故우종완과 출연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 '토크 앤 시티'에 보면 몇십만원짜리 티셔츠를 비싸서 사기 싫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 2013년 영화 관상의 900만 돌파 행사 당시 한 여성 팬의 '''"잘생김"'''드립이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다. 이후 연예프로나 기사에 이정재가 나오면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잘생김이 묻은 배우"이며, 이 수식어는 2015년 8월 2일자 섹션 연예tv에 이정재가 나왔는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역대급 드립을 해준 팬을 위해 실제로 이정재가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한편 이정재 측 관계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보그 코리아 에디터, 이정재, 우종완 모두 오랜 친분을 갖고 있던 사이로, 인터뷰와는 별개로 나눈 지인 간의 사담을 기사화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즉, 오프 더 레코더로 이야기한 것을 기자가 멋대로 기사로 써버린 것이고, 이정재가 우종완에게 '게이 좀 그만해라'라고 한 것은 애정 문제로 너무 힘들어하는 고인에게 힘든 사랑은 그만하라 이야기한 것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낸 것. 두 사람은 20년지기 친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고인의 카드 빚을 이정재가 막아준 적도 있다.
         ||2017||[[신과함께-죄와 벌]]||특별출연[* 세번째 천만 영화][* 특별출연이라고 되어 있으나 촬영 중 예상외로 염라대왕의 분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30회 정도 촬영하였으며, 대부분 촬영 막바지에 촬영된 장면이라고 한다.]||14,410,931명|| 성공 ||
  • 율리우스 네포스 . . . . 8회 일치
         474년, 레오 1세에게 서로마 황제로 추대받았다. 레오 1세는 조카 사위인 네포스를 서로마 황제로 올려서 일족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네포스는 동로마 레오 왕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서로마는 부르군트 족에게 추대된 글리케리우스(Glycerius)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레오 1세와는 대립하고 있었다. 서로마 황제로 추대된 네포스는 글리케리우스를 공격하였으며, 부르군트 족이 전투를 거부했기 때문에 글리케리우스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항복했다. 항복한 글리케리우스는 달마티아에 유배당해 [[주교]]로서 살았다.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를 [[스트라테고스|제국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영지였던 달마티아로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동로마 황제 제논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즉위가 로마법에 비추어보아 정당성이 없다고 하여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정식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비록 서로마 제국의 지배권은 잃었지만 네포스의 서로마 황제 지위는 동로마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로마 황제 신분을 바탕과 자신과 연고가 깊은 달마티아를 근거지로 하여, 네포스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찬미(AOA) . . . . 8회 일치
         공식 포지션은 서브래퍼지만, 메인 래퍼 [[지민(AOA)|지민]]의 파트가 많다 보니 이렇다 할 파트가 없어서 [[민아(AOA)|민아]]와 함께 포지션이 ~~애매모호~~ 왔다갔다 한다. 특히 AOA가 프로듀서를 용감한 형제로 변경한 후에는 서브래퍼인 찬미와 리드래퍼인 [[민아(AOA)|민아]]를 보컬로 활용하고있는 상황.
          * 미용사인 어머니에게 미용을 배우는 과정이 방송되었다. 실제로 미용사 자격 필기시험까지 합격했다.[* 실제로 [[소유(가수)|소유]]는 미용사 자격이 있다.] ~~이직을 꿈꾸는 찬미~~
          * 가장 스마트한 멤버로 항상 뽑힌다. 기본적인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인지 전반적으로 센스가 좋은 편인 듯. 실제로 지민과 함께 [[AOA(아이돌)|AOA]]에서 멘트 정리를 가장 잘 하는 멤버다. 초아에 따르면 어떤 박사님이 찬미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하면 굉장히 잘할 거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 가족 구성은 부모님, 한 살 많은 언니, 7살 차이 나는 동생. 집에서 둘째인지라 팀에서 막내더라도 일반적인 막내 성향이 별로 없는 편이다. 오히려 어른스럽고 독립적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막내 성향이 없는 편. ~~그래서 멤버 관찰 및 디스 전문가~~ 이렇다보니 실질적으로 막내 역할을 하는 것은 실제로도 집에서 막내인 한살 많은 설현이다. ~~그리고 맨날 귀여운 척한다고 찬미가 디스 한다.~~
          * 단발 머리 컨셉 중 가장 부러운 의상은 민아의 알바생 옷. 굉장히 편해보이고 실제로도 춤추기 편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의상은 점프 수트라 화장실 갈 때 특히 불편하다고. (...)
          * 키에 비해 다리가 길어 비율이 좋다. 팀에서 두번째로 큰 설현이보다 다리가 더 길다(!). 힐 신지 않은 사진에서도 확인이 가능하기도 하고 실제로 라디오에서 설현이보다 나은 점을 물었을 때 "설현 언니보다 다리가 더 길어요!"라고 인증하기도 했다.
          * 2017년 10월 KBS에서 방영하는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에 출연 신청을 했다는 소문을 직접 부인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2017년에 크게 부진했던 [[오마이걸]]도 출연설이 돌았으나, [[오마이걸]] 팬들은 굳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 WM에서는 [[오마이걸]]이 아닌 [[아이(가수)|아이]]를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더 유닛]]에 보냈으나, 아이는 안타깝게도 중도 하차했다.][* 이와 별개로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더 유닛]] 출연자 중에는 [[희도|중학교 동창]]이 있다.]
  • 최준석 . . . . 8회 일치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군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할 무릎 수술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수비위치인데, 1루에 붙박이로 들어가려고 해도 [[김진욱(야구)|수비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감독 특성상]] [[오재원]]이나 김현수에게 밀리며, 지명타자 자리에는 [[홍성흔]]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컨택이 약간 아쉽지만 좋은 [[선구안]]과 강력한 장타율로 만회를 하고 있다. 실제로 15년 프로 생활 동안 타율이 3할을 넘었던 적이 3시즌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공에 배트가 잘 안나가기 때문에 삼진도 많이 당하지만 볼넷의 비율이 높고, 덩치에 맞게 장타율 역시 타율에 비하면 높아 순출루율이 1할을 넘나들고, 순장타율 역시 2할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쉽다는 컨택도 보통 최준석이 위치하는 클린업 타순 기준으로 리그최상급 클린업들에 비해 아쉬운 것이지 보통 타자들에 비하면 월등히 뛰어나다. 3할은 몰라도 2할 8푼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타자.
         타격에서의 단점은 바깥쪽 변화구에 취약하다는 것. 실제로 타석에서 가장 멀리 서서 타격을 하는 타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좁게 가져가는 타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했듯이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적잖이 나와 중심타자다운 적극적인 타격을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 정도야 [[이병규|초구부터]] [[송광민|냅다]] [[김주찬|배트를]] [[이지영(야구선수)|내미는]] 대신 [[이병규(1983)|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김태균|타격을 하는]] 유형의 타자인만큼 감수할 수 있는 장점이겠으나...
         스타팅으로 쓰겠다면야 최소한 딱 한 타석을 위해 선수 3명 투입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여태까지는 주로 스타팅멤버로 썼고, 또한 전성기 최준석의 방망이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최준석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백업 내지는 대타요원으로서 주로 기용될 것인데, 백업요원에게 이런 로스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원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두산 베어스 이적 후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타격 스킬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에서는 외야수 수비 연습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군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 무릎 부상 탓에 1루 수비 범위도 대단히 좁다. 이 때문에 타격 생산력에 비해 WAR이 높은 타자는 아니다. 특히 수비기여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스탯티즈]] WAR이 처참하다. 선수 본인이야 지금도 포수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되도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인만큼 진지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문제로 9회말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조차 힘들다. 1년에 한두번, 포수가 없는 비상사태 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1루 수비도 9회 대수비 정도 아니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만 가능하고, 사실상 풀 타임 지명타자이다.
          * 그 별명에 맞게 야심한 밤에 항상 야식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롯데 1기 시절에 [[이대호]]와 [[룸메이트]]였고 [[이대호]]가 살찐 이유는 최준석과 같이 야식을 먹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사실 최준석도 포철공고 때는 100M를 11초에 끊는~~실화?~~ 호타준족 포수였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간 이후 이대호에게 장갑을 빌려줄 정도이며, 실제로 롯데 락커룸에 자주 놀러가서 이대호 배트를 많이 받아온다고 한다. 롯데 출신이다보니 롯데 고참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서 라커룸에 가는 것도 거리낌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산 시절에는 [[이대호]]와는 등번호도 10번으로 똑같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때 일부러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를 택했다고 한다.
  • 표창원 . . . . 8회 일치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2016년 8월 3일에는 사드 배치 문제로 큰 분노가 일어난 [[경상북도]] [[성주군]]을 동료 의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이날 여기서 성주군민들에게 한 연설이 인터넷 상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55135.html|#]]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상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영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상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영장이다. [[영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영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남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영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영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영장이 반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 [[썰전]] 143화, 197화[* '''[[장제원]]'''과 같이 출연했다.], 224화[* [[김경진(정치인)|김경진]]과 출연하여 검경개혁을 주제로 토론을 펼쳤는데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영장청구권을 주제로 논의했다.], 227화 ([[JTBC]])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7회 일치
         사형대 바로 앞까지 도착은 했지만, 해군 3대장이 버티고 있었고 [[쿠잔]]에게 죽을 뻔하다가 [[마르코(원피스)|마르코]]의 도움으로 또 목숨을 건졌으나, 직후에 탈진한다. 독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제대로 회복할 틈도 없이 텐션 호르몬을 맞고 임펠 다운을 뚫고 올라와 끝없이 전투를 했기에 당연한 일. 이반코프는 이제 더는 무리라며 뒤는 맡기고 쉬라고 하지만, 루피는 오히려 이반코프에게 '''"지금 에이스를 구하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죽고 싶어질 거야"'''란 말로 우겨대 텐션 호르몬을 한 번 더 받아 강제로 회복하고, 포효하며 전장으로 돌격한다.
         크라켄의 도움으로 어인섬에 도착하게 된다. 어인섬 앞을 가로막는 신어인해적단 전투원 [[하몬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부하가 되라는 협박을 받지만 당연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어인섬에 어찌어찌 진입한 후 하몬드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 때 하몬드와 그 일당들을 박살냈다. 이 때 하몬드와 같이 다니는 [[효조]]라는 독문어 인어에게 공격당했으나 [[독독열매]]의 능력자 [[마젤란(원피스)|마젤란]]에게 당한 것 때문에 독에 면역이 생겨 상처가 좀 생기고 만 수준이었다.[[흠좀무]] 루피도 누가 공격한 건지 대충 알아챘지만 별 신경 안 쓰는 듯. 참고로 이걸로 루피가 모든 극독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듯한데 쵸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마젤란과 다시 만난다면 죽는다고 이반코프가 경고한 것을 보면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라는게 마젤란이 쓰는 독 기준이니 실상 마젤란이 상대인 경우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 실제로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적을 상대로 생채기를 낸 것 만으로 효조가 승기를 따냈다 확신했을 정도니, 효조가 칼에 발라둔 독도 굉장히 강한 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루피는 죽기는 커녕 붓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루피의 사상의 중심점은 자유에 맞춰져 있고 사황은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로에게 전해들은 신세계의 상황은 루피의 기대와는 달리, 이전까지와 같이 자유롭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라 사황의 밑에 들어가 통제를 받으며 항해하느냐 사황을 적대하느냐로 예상 외로 갑갑한 환경이 되어있었는데, 루피가 이것을 탐탁찮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황 격파 발언은 신세계의 얘기를 듣자마자 갑툭튀로 내뱉은 말.] 루피의 사황 격파는 누구에게 원한이나 감정이 있고 없고 이전에 신세계 전체를 자유로운 바다로 만드려는 의도일 확률이 크다. 실제로 사황을 전부 쓰러뜨리겠다는 말이야 했지만 자신이 사황이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애시당초 루피가 현상금 올라가면 단순하게 기뻐할 지언정 자기한테 붙는 소문이나 명성을 기뻐하는 타입은 아니다.], 샹크스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황의 일각으로써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샹크스가 스스로 사황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서야 결국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독자들은 전부 둘이 붙는걸 한번 보고싶을거 아냐? 어떻게든 싸우게 할거야 아마~~
         하이루딘을 쓰러트린 후, 떨어진 무기를 수집해 총알처럼 사용하는 참가자 "강도 쟝"[* 현상금 사냥꾼으로 현재 목표가 루피의 임펠다운 사건 당시 탈옥했던 죄수 전원을 잡아서 현상금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중 ~~쩌리들~~몇십 명은 잡아서 현상금을 받은 듯.] 이 루피의 정체를 눈치채고 투구를 빼앗은 뒤 공격하지만 루피는 견문색으로 날아오는 무기들을 여유있게 피하며 접근해 투구를 되찾는다.[* 그리고 강도 쟝은 루피를 발견하고 뒤쫒아온 돈 칭자오가, '''하필 루피가 피한 무기들을 죄다 배에 맞는 바람에''' 아프다며 날린 박치기를 맞고 그대로 리타이어.] 뒤이어 계속 루피를 노려온 돈 칭자오와 서로 무장색 주먹을 부딪히며 마침내 맞붙는다. 둘은 실로 대등한 결투를 펼치나 늙은 돈 칭자오가 조금 밀리기 시작한다. 이후 돈 칭자오에게 '''늙은 자신과 호각을 이루는 정도라면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겨우 이런 수준의 인간을 레일리가 선택했다면 레일리도 눈이 썩었다, 오히려 에이스를 죽인 해군의 판단이 옳았다 등등 여러가지로 화나게하는 말을 듣고 하늘높이 날아올라 칭자오에게 '''핵꿀밤'''(정확히는 고무고무 토르 엘리펀트 건)을 날려준다. 루피의 공격을 머리통에 직격으로 맞은 칭자오는 과거 가프에게 얻어맞아 찌그러졌던 두상이 다시 솟아오른다. [* 원피스 세계관의 골격변화는 참 경이롭다. 한데 젊은 시절의 가프가 특훈까지 해서 주저앉힌 두개골이 고작 루피의 펀치 정도로(?) 복구시킨 걸 보면 칭자오도 노화로 뼈가 약해진 것이 아닐까….] 그와 동시에 칭자오는 정신을 잃은 건지 경기장으로 곤두박질 치는데 뾰족해진 두개골에 경기장 바닥이 말 그대로 '''두동강'''나고 칭자오는 물에 빠져 장외 판정을 받는다. 이로써 루피는 C블록의 우승자가 된다.
         770화에서는 '''베라미의 무장색 경화 공격을 피하지 못해서''' 복부를 무장색경화 시켜서 막았음에도 '''피를 토한다.''' 일부러 맞아준 것인지 피하지 못한 것인지는 다음 장면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방어를 했는데도 충격을 받는 모습은 루피의 실력을 평가절하할 장면이다.[* 단 루피의 경우 무장색이 특기인 조로나 견문색이 특기인 상디와는 달리 패왕색이 특기라고 한다. 패왕색의 패기는 다른 패기들과는 달리 단련이 불가능하고 현재의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최대 위력이 정해지는만큼 패왕색의 패기가 특기라는 것은 루피의 무장색은 현재 루피의 실력에 비해서 성취가 낮은 편에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어인섬 때도 무장색 패기가 약해서 "아직 내 패기로는 이 정도 공격을 막을 수 없어."이라는 대사를 하기도 했다.]
         팬덤에서는 2년 후 시점의 루피가 그렇게 강한 것 같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논란이 크다. 도플라밍고와 싸우고 있지만 엇비슷하게 싸우는 것 같아 보여도 당장 지금의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에 맞아서 내장 자체가 파열된 것을 억지로 실로 급히 '''응급조치'''만을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회복이 천천히 되어가는 중이지 회복이 된 것이 아니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멀쩡한 몸 상태에서는 루피를 여러번이나 간단히 농락하고 제압했던 도플라밍고였기 때문에[* 실인형이 처음 드러났을때도 그렇고, 루피와 로우의 샴블즈 + 레드호크에 당했을때도 맞으면 맞아주면 그만이라며 간단히 루피의 손을 실로 묶어버리고 제압한 등.] 루피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도플라밍고에게 제대로 상대가 안되기에 도플라밍고에게 그만한 너프를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루피도 콜로세움에서부터 계속해서 체력을 소진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루피가 패밀리의 일반간부 수준인 돈 친자오 정도와 싸울 때 도플라밍고는 최고간부보다 훨씬 윗줄의 로우와 싸우고 있었다.(...)
  • 신성우(가수) . . . . 7회 일치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반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신성우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넓은 노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집의 "<구식 사랑(열번째 남자)>", 4집의 "<자유하는 삶을 위해>" 라는 곡과 5집의 "<내 맘대로>" 가 있다. <자유하는 삶을 위해>와 <내 맘대로> 두곡은 실제로 들어보고 피아노로 쳐보면 3옥타브 미 수준으로 음역대이며 또한 <구식 사랑>은 2옥타브 시를 자랑한다. 무겁고 탁한 바리톤의 목소리인 신성우의 보컬로 과연 저 음역대까지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상당히 시원한 고음을 자랑하는 곡들이다.
         비록 반키를 낮춰 부르긴 했었지만, 예전 초창기 2집시절 노을에 기댄이유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굵직하고 어두운 톤에 무겁고 탁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3옥타브를 거뜬히 넘겨서 실제로 불러보면 굉장히 어려운 그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절륜하다. 서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난 이유는 아마도 신해철처럼 엄청나게 성대를 혹사시키며 락 스타일의 고음을 질러대다보니 성대가 무리하게 되어 목소리가 저음에 가까운 쪽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가수의 노래들을 잘 살펴보면 음역대가 매우 비슷하다.[* 가요대전에서 신해철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는 곡을 아주 깔끔하게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신성우의 앨범 초창기부터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음역대를 잘 듣고 살펴보면 가면 갈 수록 음역대가 낮아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7회 일치
         ||<#878787> '''{{{#EEE156 신체}}}''' ||<(> 184cm[* 누구나 다 아는 상당한 머리 크기 때문에 키가 작아보여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장신으로 유명한 [[강동원(배우)|강동원]], [[조인성]]하고 비슷하며 심지어 이들보다 크다는 소문도 있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김용건이 70대임에도 178이다. 유전자의 위대함일지도...그리고 사람이 나이를먹으면 키가준다는논리까지합하면.. 전성기시절 김용건의 키는 180초중반이었을지도 모른다.], 75kg, [[A형]], 295~300mm ||
         아버지의 후광으로 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하정우라는 예명을 썼다고 한다.[* 배우를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하정우만 하더라도 부친과 같이 전원일기에 출연하여 형제로 설정되고 동시에 모교 교수인 [[유인촌]]의 아들 유대식도 같은 이유로 남윤호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가정 배경을 숨겼고, [[스티븐 킹]]의 아들 조지프 킹도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정우라는 예명은 원래 배우 [[김성수(배우)|김성수]]가 가수인 쿨의 김성수와 동명이인인 것 때문에 쓰려고 준비하다가[* 이 부분은 김성수가 해피투게더에서 직접 얘기한 적도 있고, 하정우가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에서도 직접 얘기한 적 있다.] 예명을 쓰지 않게 되어 얻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아버지 김용건과 함께 여러 예명을 연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정우라는 예명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여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에 김용건이 추천해 줬던 예명은 성만 바꾼 '금성훈'. --[[금성무|이 분?]]--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조연으로 출연할 당시에도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지만, 아주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2008년]] 《[[추격자]]》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널리 부각된다.
          * [[LG 트윈스|LG]] 팬이어서 [[두산 베어스|두산]]을 싫어한다는 루머가 있다. 러브픽션 시사회 당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했는데 하정우가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 팀'''만 시구할 겁니다." 라고 디스했다 [[카더라]]. 이유인 즉슨 두산과 LG의 오랜 연고지 다툼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 [[MBC 청룡|MBC]]가 서울, 두산(당시 [[OB 베어스|OB]])이 대전을 연고지로 했었는데, 두산은 3년 뒤 서울 이전을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터라 1985년부터 연고지를 공유했었다.[* 프로야구 출범 준비 시점 이전에 이미 [[문화방송|MBC]]는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1981년 6월 자체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프로야구 창립 계획 준비시점에 MBC가 전북 연고 기업 1안으로 선정되고 두산은 구단주의 연고지가 전북인데도 2안으로 밀려 경남 연고지를 부여받는다. 이에 두산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3년 뒤 [[연고지 이전]]을 약소하는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된 것. [[http://blog.naver.com/soonil39/|출처 : '홍순일(서울신문 주간스포츠 기자, 주간야구 창간편집장)의 야구이야기/프로야구 탄생비화']]] 비록 1990년 MBC가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구단을 매각했으나, LG 팬들은 원년부터 전북 연고였으므로 진짜 서울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두산 베어스도 원래는 서울로 팀을 하겠다 하고 안 된다니까 3년 뒤에 하겠다라고 했으니까, 실제로는 전북 연고지가 맞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주인이라는 거지 그렇다고 두산 보고 나가라고 하는 LG 팬들이 말하듯이 두산이 진짜 서울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는 것.]실제로 청룡의 역사를 계승한 팀이 맞고. 하지만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OB 베어스]]의 외야수 [[김우열]] 역을 맡은 적이 있다(...) --LG 팬의 [[흑역사]]-- 그래서 그런지 출연 내내 못마땅힌 얼굴을 하고 있다.
          * 2012년 오후 10시 30분쯤 가로수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 뺑소니를 '''당했는데 200m 가량을 직접 추격한 끝에 직접 맨손으로 피의자를 검거'''하여 ~~[[추격자|영화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경찰에 신고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21&aid=0000056261|관련기사]] 이 때 당시 영화 베를린을 찍으면서 몸을 만든 상태라 '''체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였고 ~~잘못 걸린 거다. 하필이면...~~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가로수길 근처에 살아''' 그 골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추격해서 잡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대두 배우로도 유명하다.[* 머리 크기가 작은 연예계에 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는 반론도 있으나, 실제로 본 사람들에 의하면 일반인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큰 편이라고 한다.] 덕분에 키가 184cm가 넘는 큰 키인데도 그렇게 안 보인다. [[지못미]]. [[선글라스]]도 하정우가 끼면 그냥 '눈알 가리개'로 변신할 정도다. 하지만 팬들은 "좋은 건 크게 봐야 돼" 라며 하정우의 큰 머리를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디씨의 하정우갤에서는 특별히 하정우의 얼굴 크기에 어울리는 큰 선글라스를 따로 주문제작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넥센 히어로즈]] 소속 [[이택근]]이 하정우와 닮은 꼴이다[* ...라고는 하지만 하정우와 함께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를 촬영했으며, 이택근과 한동안 연인 사이였던 배우 [[윤진서]]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1&oid=009&aid=0002157200|'(실제로 봤을 때 둘은)안 닮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강원도 . . . . 6회 일치
         [[백두대간]]([[태백산맥]])이 도의 동쪽을 남북으로 살짝 기울어져 지나가며, 이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 하나인 [[대관령]]을 기준으로 동쪽을 [[영동]], 서쪽을 [[영서]]라고 일컫는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태백이 영동 지방에 해당되며, 철원, 화천, 양구, 인제, 춘천, 홍천, 횡성, 원주, 평창, 영월, 정선이 영서 지방에 해당한다.[* 단 문화, 풍속 등을 주제로 삼을 경우에는 평창, 정선, 영월 등은 영동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 철원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다른 영서 지역과 생활권이 갈라져 있다.(실질 생활권은 경기도 동북권)] 두 지방은 서로 기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예컨대 강릉은 찜통인데 춘천은 비가 온다든가, 같은 도일지라도 TV나 신문 등의 일기예보에서 반드시 영동과 영서를 나누어 다룬다. 사실 [[푄 현상]]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든 기후가 반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바람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지배적일 때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영동지방은 해양성 기후가 매우 강하지만, 영서지방은 사실상 내륙성 기후가 나타난다.
         [[고려]] 말에는 영동과 영서지역이 교주강릉도로 합쳐졌고, 지금의 [[함경남도]] 일부분에 해당하는 동북면도 포함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충청도]]에 있던 원주, [[평창]] 등이 포함되었으며, 영서지역의 치소를 춘천에서 원주로 옮기고 도명을 강릉의 '''강''', 원주의 '''원'''에서 따 [[8도]]제 중 하나인 강원도로 바꾸었다. 허나 [[태백산맥|지리적 이유]] 로 인해 강원도 내에서 명목상 좌우도제로 영서는 강원우도, 영동은 강원좌도로 나뉘었다.[* 현 강릉에 병무청이라든지, 경찰청 등 도청이 위치한 춘천 못지 않게 강릉이 영동 지역의 거점을 계속담당했다. 지금도 영서 지역과 영동 지역의 시스템을 이원화하는게 효율적인데, 교통이 극악이었던 조선 시대는 당연했을 것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대부분 시기, [[23부제]]를 고려하면 영서와 영동지역을 조선시대에 합쳐선 안 되었다는 중론이 나온다.] 이때부터 강원도의 관찰사 감영이 원주로 옮겨졌다. 그러나 1895년 전국 행정구역을 [[23부제]] 337군으로 정비할 때 강원도를 폐하고 2부(춘천부, 강릉부)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속해있는 군이 되었고, 1896년 다시 23부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분할했을 때 감영이 있던 원주를 제치고 다시 춘천에 감영를 두게 되었다.
         [[도청(행정)|도청]]이 춘천으로 다시 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춘천이 구한말에는 영서 지역 중 가장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발생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국가 변란 등 유사시에 대비한 피난처를 물색하였다. 이에 여러 지역이 최적지로 오르내렸는데, 그 중에서 춘천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이에 따라 수도 한양의 동쪽 봉의산 자락에 위치한 춘천유수부 관아에 춘천이궁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춘천이궁은 1888년(고종 25) 초대 춘천유수 김기석이 공사를 시작하여 1890년(고종 27) 2대 춘천유수 민두호가 완공하였다. 완공 후 고종이 실제로 이곳에 행차한 적은 없었지만, 이궁이 춘천에 위치함으로써 원주에 있던 강원감영이 폐쇄되고 1896년에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首府)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영서와 영동을 비교하자면 영서가 영동에 비해 넓이도 넓고 인구도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지역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영서는 다시 [[춘천시]]를 중심으로 하는 영서 북부와 [[원주시]]를 중심으로 하는 영서 남부로 나뉜다. 결론은 강원도는 [[춘천시]], [[원주시]], [[강릉시]]가 --삼대장-- 트로이카를 이루며 왕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거철마다 강원도의 판세를 분석할 때 이 세 도시들은 표심을 좌지우지하는 big3 지역으로 표현되곤 한다.
         [[대한민국 공군|공군]]과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경우는 부대를 선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에 비해 선호도가 적은 편.[* 실제로 [[제8전투비행단]]의 경우는 청주에 있는 [[제17전투비행단]], 충주에 있는 [[제19전투비행단]]보다 서울에서 가까운데도 강원도의 [[이미지]] 때문에 기피된다. 하지만 막상 가 보면 버스 기준으로 17비, 19비가 8비에 비해 서울 가는 시간이 약 30분~1시간 가량 더 걸린다.] 공군과 해군의 경우 [[제8전투비행단]] 및 [[제18전투비행단]], [[제1함대(대한민국 해군)|제1함대]] 예하 부대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대배치를 받을 때 이동거리도 상당하여 전세버스 기사님들이 상당히 고생하게 된다. --공군은 북한기에 해군은 [[잠수함]].-- 그래서 기훈단과 기초교에서 강원도에 배치되었을 때는 동기들이 위로하기도 한다. 심지어 공군의 경우 심지어 전술항공통제(ROMAD) 특기를 받으면 강원도 내 육군부대에서 [[http://www.afplay.kr/857|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고자라니|내가 육군이라니]]!--[* [[근접항공지원]]을 담당하기 때문에 간부와 함께 2년 동안 고생하는 편. 간부가 할 일을 병사가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국직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공군 대우를 거의 모두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정기휴가 일수 추가, 격오지수당으로도 보상받는다! 부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은 [[덤]]. 다만 일병 때 주문한 [[팬티]]가 군수사령부의 처리 지연으로 [[병장]] 때가 돼서야 오거나, [[축구]] 등의 체련활동을 육군과 같이 한 팀이 되어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공군방공관제사령부]],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인원들은 산 아래 육군부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제설량+산꼭대기 위치+상황발동 쓰리콤보로 인해 강원도 배치 시 "죽었구나!"를 복창한다(...).[* 하지만 사령부 차원에서 이들 포대와 관제대에 병사복지 차원에서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 시설개선사업에 최우선적으로 예산이 투입되고, 사회문화체험 다녀올 기회도 종종 있다. 그러나 특유의 복무환경 때문에 강원도 내 격오지 방공포대와 레이더사이트 근무자들은 육군파견병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휴가와 격오지수당으로 보상받는다. 그리고 간부는 장기복무 지원 시 이 포대+레이더사이트를 비롯한 격오지근무 경력이 곧 '''[[치트키]]'''가 되며, 복무성과 측정에서 가산점 메리트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올림픽을 개최해 이득을 본 나라가 많지 않은 만큼 향후 강원도가 올림픽 효과를 보려면 사후관리가 중요할 듯. 당장 올림픽유치를 통해서 막대한 이득을 본다기보다는, 올림픽 유치를 통해 따라오는 각종 혜택과 예를 들자면 제2영동고속도로와 복선 같은 중앙정부 지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김상조 . . . . 6회 일치
         시작부터 강렬한 취임사로 화제가 되었다. 취임하면서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갑질근절'과 함께 재벌그룹의 경쟁력 집중 억제 및 편법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재벌개혁을 핵심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543302|전문]]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국무총리 청문회에 이은, 사실상 2번째로 청문회를 겪은 인물이기 때문에 야당의 집중공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마치 김상조가 '논란이 무척 많은'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상조 임명을 강행하고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83%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민여론은 오히려 김상조 임명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김상조가 가장 먼저 청문회에 나서서 야당의 혹독한 의혹공세를 버텨냄으로써, 이후 청문회에서 실제로 무시못할 수준의 의혹을 지닌 다른 후보들의 흠결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아. 이번에도 야당이 별것도 아닌 걸로 트집잡나 보네."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넘어간 경향이 있다.
         김상조 후보자는 현재 나무위키에도 계속 표기되었던 것처럼 '케임브리지 초빙교수'를 주요 이력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문연구원 자격에 불과하고 이를 초빙교수로 기재한 것은 허위표기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92924|관련기사]]
         다만 당시를 기억하는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 보고서 공개하기 어렵거나 혹은 연구자 업적에라도 도움이 되게 해준다고 따로 논문 내도 된다고 하던 시절이었고, 그것을 조건으로 액수를 적게 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기사 내용에도 2000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5개월간 3명이 공동 연구비로 받은 비용이 700만 원으로, 월당 1인 비용으로 치면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비용이기는 하다. 자료 수집 비용조차 제대로 안 주던 시절의 이야기. 게다가 학계의 관행에 비추어 봐도 2000년 당시에는 자기표절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건의 경우 악의적인 표절이라기 보다는 한 보고서 가지고 두 번(용역보고서+연구논문) 활용했다는 것이 문제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가 흔히 용인되었다. 지금도 레퍼런스만 달면 용인해 주는 경우가 많다. 연구용역 발주기관에서 이를 용인해주지 않는다면, 미리 계약서에 연구논문 출판 불허를 명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용역비를 주던가 한다.
  • 김윤아(1974) . . . . 6회 일치
         '''특히 안정적인 중저음역대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녔다.''' 데뷔 초기인 1~2집 때는 3옥타브 도(C5) 이하의 곡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 시기 자우림 노래들은 음역대가 조금 높은 남자들도 키 전환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3옥타브 도(C5)가 있어도 한두 번 찍고 내려오는 수준. 워낙 이 시절에는 목에 힘을 빡 주고 [[벨팅]]으로 질러대는 스타일의 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애', '일탈' 등.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노래는 목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질러대는 창법을 고수하다가 목이 완전히 가버리는 가수들이 꽤 많다. [[벨팅]]항목 참조.] 이후 3집 때부터는 전면적으로 목을 상하게 하지 않는 창법, 정확히는 [[두성]] 중심의 창법으로 전환했다. 90년대에 블루 데빌스 등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던 미운오리(자우림의 이전 이름)의 팬들은 1집때보다 훨씬 더 목을 긁어대는 김윤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지만, 그 창법을 계속 고수했으면 지금까지 노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2011년 MBC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가수 [[이하늘]]은 김윤아에게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 아닌가요?" 라고 대놓고 [[디스]]를 걸기도 했다. 실제로 김윤아는 한국식 [[힙스터]]같이 적절히 쿨하며 주류를 쫓지 않는 독특한 자기 세계관과 문화취향을 갖으려는 삶의 스타일의 이미지로 본인을 설정하고 싶어하는 메인스트림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본인만의 야인성(?)을 갖고 살아온 이하늘에게는 고깝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방송인 [[김나영]]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김윤아가 한 "저도 비주류고, 제 남편도 비주류다." 라는 말에 대해 "남편 잘 만나셨잖아요. 남편은 [[치과의사]]인데 주류 아닌가요?" 라고 2번씩이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고 김윤아는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취향 얘기였는데 김나영과 이하늘이 열폭~~
         이하늘이 한 질문인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는 아니고요?"는 '취향이 비주류면 삶도 비주류여야 한다.'는 대명제로 '당신은 주류다' 라는 비판을 한 것은 아니다. 김윤아가 대표적인 주류의 인생을 살며 대중적 음악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취향에 있어서는 비쥬류 성향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본인의 예술적 감수성이 비쥬류에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어필하는 것이 과연 모순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웹상에서 두고 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충분히 논리적인 문제제기이며 상업적 음악을 하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실제로 이목구비에 아주 큰 변화는 없으나, 화장과 스타일링의 변화 때문에 갸름한 미인형 얼굴이 된 것은 사실이다.
          *가수 [[박기영]]과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썰이 있다. [[박기영]]이 과거 실제로 라디오에 나와 '자의식 과잉' 여가수 중 김윤아를 언급한 것도 있어서 [[나는 가수다]]에서 듀엣 특집으로 만날 때 폭풍이 불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별 일 없이 끝났다. 사실 김윤아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박기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박기영이 혼자서 가만히 있는 김윤아를 "여가수 중에서는 가장 허세가 심하다"는 식으로 언급하면서 괜히 오해가 생긴 것이다. ~~한 마디로 박기영의 열폭~~ ~~박기영 때문에 김윤아에겐 항상 '허세'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다.~~
  • 서유리 . . . . 6회 일치
         던파걸 시절, 다른 던파걸은 다 본명으로 활동했지만 혼자만 '''로즈나비'''라는 닉네임을 썼다. 던파걸 출신이면서 던파라디오 진행에 여귀검사 성우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던전 앤 파이터]] 내에서는 상당한 입지를 가진 인물이다. 직전 던파걸이 진행 미숙 문제로 상당히 일찍 바뀌었는데, 그 전부터 활동하던 로즈나비를 끌어들인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현재는 [[포기하면 편해|본인도 포기하고]] [[http://blog.naver.com/aceman88?Redirect=Log&logNo=80195167090|자폭용]]으로도 쓰고 있다. [[SNL 코리아]] 미공개 영상에서도 이 열파참을 개그 소재로 써먹었는데, [[김구라]]가 열파참으로 로즈나비를 깠다! 게다가 자신이 진행하는 스타의 흑역사와 관련된 것을 주제로 다루는 M16에서도 열파참을 언급했다! 이젠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 2014년 10월 29일 개봉한 영화 <위층여자>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이 영화, '''청소년 관람불가'''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630036|#]] 노출신이 있다고 [[언플]]되었는데, 실제로는 모두 대역(?)이다. 여주(서유리)에게 처녀귀신이 빙의해서 남주를 덥친다는 스토리인데, 남주도 신기가 있어 본래 모습(=빙의한 귀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라 본인의 노출신은 없다.[* 트위터에서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 소속사 대표와 영화 제작자 간의 친분 때문에 억지로 출연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잠깐 나오는 뒤태노출도 대역이라고.]
         물론 패드리퍼 두 명의 잘못이 서유리의 SNS에 파묻혀 전혀 이들의 잘못이 고려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서유리의 실수는 평화로운 해결 방법인 차단을 하지 않고 패드리퍼와 말싸움을 이어간 점, SNS에 섣부르게 하소연을 한 점, 사건이 구설수에 올랐을 때 처음 대처를 어설프게 한 점 등이 있다.[* 서유리는 평소에도 SNS를 통해 팀 탓, 남 탓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줘서 전형적인 실론즈 멘탈이라고 욕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욕을 하는 팀원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도지삽니다|나 서유리인데]]" 식으로 대응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나, 이 부분은 "본명으로 욕을 하면 고소가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에 기인한 행동으로 보인다.[* 소문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이다. 정확히는, 일반인들이 서유리의 롤 ID만 보고서 서유리임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는 '''고소 접수 자체가 안 된다.''' 모욕죄 및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특정성'이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 해당성에 해당하기 때문.]
         서유리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머릿결이 휘날리는 사진과 함께 "사기꾼들 나쁜놈들 전부 대머리가 될지어다 ㅋㅋㅋㅋㅋ 탈모되라 탈모탈모 깔깔깔" 이라는 글을 올렸고 누군가 문제 삼자, 곧바로 서유리는 자신의 인스타에 "'사기꾼 나쁜놈들 대머리 되라' 라는 저의 경솔한 글에 불쾌하신 분들께 사과말씀 드립니다. 탈모를 가진 분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제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사과문을 올렸다. 분명 잘못된 발언이지만, 대머리라는 놀림 거리 자체가 워낙 흔하게 있기에[* 예로부터 어르신들이 흔히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고 하신다. 우리나라에서는 속담처럼 자리잡은 말인데, 최근 들어서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비로소 문제가 된 것이다. 한편 유명스트리머나 BJ,크리에이터가 방송을 진행하면서 탈모를 가지고 있는것이 콘텐츠화되어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고, 탈모를 주제로한 콘텐츠들이 난무하다보니 사실상 탈모라는 매우 고통스러운 불치병이 탈모를 앓고있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단순히 희화화의 대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여진 감이 없잖아 있다.] 심각성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빠르게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여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이에 대한 업보인지 최근에 서유리도 m자 탈모가 왔다고 한다.--
          * [[붕괴학원 2]] - [[키아나 카스라나]], [[라이덴 메이]][* 실제로 홍보 보도사진에서 메이의 코스프레를 한적이 있었다.] (한국어)
  • 손승락 . . . . 6회 일치
         온몸을 던지는 다이나믹한 투구폼과 등판 시 울려퍼지는 [[퀸(밴드)|Queen]]의 명곡, [[News of the World|We will Rock you]]가 트레이드 마크. 별명이 많은 편인데 사실 좋은 쪽으로의 별명은 적다. 그나마 좋은 별명이 손승'''LOCK'''[* 스펠링이 다르다. 손승Lock이라고 한건 Lock이 '잠그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We Will Rock You는 그냥 발음이 같아서(...)로 추정된다.], [[락앤락]][* 실제로 최훈은 손승락을 대체로 [[락앤락]]으로 그린다(...). 간혹 블론세이브 등 좋지 못한 경기를 펼쳤을때에는 '내용물 유출' 드립이 터지기도.]정도이며 나쁜 쪽으로는 손든락[* 201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블론 세이브 때 타구가 중견수 플라이가 될 줄 알고 손을 치켜올려든 모습에서 유래.], 손트니코바[*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금메달 획득 실패를 패러디해 골든글러브 수상을 비꼬는 별명이다. ~~그래도 [[임태훈(야구선수)|임태운]]보다는 훨씬 낫다~~], 손퇴물[* 사실 손퇴물이라는 별명은 손승락이 10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타팀으로 트레이드 될까봐 걱정하던 혀갤러들이 팔리지 말라는 뜻에서 지어준 별명으로서 좀만 못해도 장난스럽게 던지는 별명에 가까웠는데 14시즌에 별명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 별명은 잘 지어야 된다. [[유한준|우타거포 분유신]]이 좋은 예.~~ 15시즌에는 더욱 더 심각한 퇴물로 거듭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FA 협상을 위한 눈속임일 뿐~~ ], 승락극장[* 엄밀히 말하면 이 별명은 [[타카츠 신고|이 선수]]의 별명에서 유래, 즉 깔끔한 세이브를 하지 못하고 주자를 내보낸 채로 세이브를 거둔다는 것에서 나온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된 말이다. 다만 2017년 현재는 어느 롯데 팬이 '''해피엔딩 전문 상영관'''이라는 배너를 들고 오면서 아예 하나의 별명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 SUN승NOT[* 투구폼을 바꾼 이후로 유독 일요일에 실점이 많고 블론세이브가 자주 벌어지자 붙여진 별명이다],족발극장 등이 있다. ~~[[키비]]닮았다.~~
         14시즌부터는 부상이 우려돼 점프를 잘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퇴물됐다~~ 실제로 투구폼을 바꾼 이후로 BABIP과 피안타율 피홈런율이 폭증했는데, 이에 대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h&no=5523578|분석글]]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그런데 15년 이후로도 가끔씩 극장을 개봉하면 저 투구폼으로 돌아간다. 일례로 2016년 롯데가 NC상대로 유일하게 이긴 경기를 보면 만루를 만들고 나서부터 그런 모습이 잘 나와있다.
         실제로 트레이드 제의가 들어왔는데 스폰서 측에서 거절하고 있다는 듯했으나 2010년 12월 트레이드 관련 기사가 났다. 그것도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20601032133008002|6일 트레이드설은 타 구단의 언론 플레이라고 발언했는데]] [[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012080100058110003668&ServiceDate=20101207|7일 트레이드 논의가 드러났다.]] LG 구단에 대해 2009년 말에 트레이드했던 [[이택근]]과 비슷한 현금[* 25억 원.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돈을 포함하면 5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과 1명의 주전급 야수를 요구했다고. 이에 대해 LG는 해당 선수를 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내가 형의 승리를 지켰어!'''[* 참고로 [[심수창]]과 교체하면서 심수창에게 한 말은 "반드시 내 손으로 형의 승리를 따낼 테니 지켜봐."였다. ~~[[동남 방언|대구 사투리]]를 쓰니까 실제로는 아마 "반드시 내가 히야 승 따오께 지켜봐래이"라고 했을 듯~~ 실제로 대화해봤는데 사투리안쓰고 거의 서울말쓴다고한다.]
          * 손승락의 인터뷰. 그의 안습한 목소리와 [[현대 유니콘스|현대]] 시절의 투구폼을 실제로 볼수있다.
  • 이민아 (축구선수) . . . . 6회 일치
         |클럽 = {{국기그림|대한민국}}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WFC|인천 현대제철]] <br /> {{국기그림|일본}} [[아이낙 고베 레오네사|아이낙 고베]]
         |rowspan="7" align=center valign=center|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WFC|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분류: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의 축구 선수]][[분류:WK리그의 축구 선수]]
  • 장세용 . . . . 6회 일치
         '''보수의 중심에서 [[더불어민주당|푸른 깃발]]을 휘날리다[* 실제로 당시 [[북유게]]에선 [[베를린 전투]]의 깃발 꽂는 사진을 패러디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드립을 쳤다(...)][* [[대경권]] 전체로 보면 [[수성구 갑]]에 민주당 깃발을 꽂은 [[김부겸]] 의원에 이어 두번째이다.].'''
         상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남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시장에 당선은 성공했으나 도지사, 국회의원 2명, 시의회의장 · 부의장 · 상임위원장 모두 자한당 소속으로 홀로 더민주당인 장시장으로 대립시 시정에 많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장-기초의회의장 소속이 [[수성구|어디]]하고 대비된다.-- [[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07|야당 의원에게 포위된 장세용 구미시장 고민 깊어지나]]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459|구미시의회, 8대 원구성 한국당 일당체제로 완료]]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 조성모(가수) . . . . 6회 일치
         ||<table width=100%><-7><tablebordercolor=#ff2000><#FF2000><:> {{{+1 [[문화방송|[[파일:mbc.png|width=50]]]] ''' [[MBC 가요대제전|{{{#ffffff 가요대상}}}]] ''' {{{#ffffff ''' 대상 ''' }}} }}} ||
         '''대한민국 최후의 음반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반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태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붐을 처음으로 그리고 완벽히 일으켜준 가수로서, 'To Heaven'을 시작으로 4집 타이틀곡 '잘 가요 내 사랑'까지,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 붐'''을 일으켰다. 조성모가 가수로서 성숙기에 접어들 때인 4집까지의 뮤직비디오들은 조성모를 통해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세훈]] 감독이 전담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발매된 앨범의 곡 'Never'의 뮤직비디오 연출은 [[차은택]]이 맡았다. 그 차은택 맞다.] 하지만 일부 뮤직비디오는 수위가 좀 있는데, 조폭들을 주제로 하여 주인공이 배신당하거나 결말이 좋지 않게 끝나는 새드앤딩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 [[http://youtu.be/7BttP5wx3Cw|다음 사람에게는 (3집)]][* 조성모의 3집 후속곡 뮤직비디오가 맞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던 2000년 말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미연을 모델로 내세운 발라드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戀歌)'의 홍보 뮤직비디오의 성격이 더 강했다.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이미연의 보증수표 이미지에 조성모 뮤직비디오의 날개를 달은 덕분에 홍보효과는 백점 만점인데다, 컴필레이션 구성 또한 심심하게 옛날 발라드 명곡들만 넣은게 아니라,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비롯해 2000년 당시 최신 인기 발라드 곡들까지도 과감히 비중있게 수록한 4CD의 알찬 구성 덕분에 최초라는 수식과 더불어 최다 음반 판매라는 수식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다르게 '연가'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조성모의 곡이 아닌 원곡인 정재욱의 곡이 담겨 있다.] : [[이미연(배우)|이미연]], [[류시원]], [[김세아]], [[김채연]], ~~[[황인성]]~~
         사실 밑의 기록도 엄청난 기록이지만 각종 가요시상식의 수상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한 편이다. 일단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지상파 3사와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2대 언론사 시상식 대상도 석권하였다. 거기에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의 대상에 해당하는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하였다. 이루지 못한 수상 기록이라면 한 해 방송사 3사 대상 그랜드슬램과 한 해 모든 가요시상식 대상 석권, [[멜론 뮤직 어워드]] 대상 수상뿐이다.
  • 창작:티겔 왕국 . . . . 6회 일치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밀려난 거인족들은 대부분 다이잔 강 인근에 정착했고, 곧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있던 사냥꾼들과 충돌하게 된다. 갈등의 원인은 사료가 제각각이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각집단의 젊은이들이 사냥감의 소유권문제로 다툰것이 시작인건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이 갈등은 점차 종족들간의 갈등과 충돌, 혐오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갈등의 시작이었던 '물소사건'의 일원이었던 '라가트렁'를 중심으로 집합한 거인족들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된다.
  • 하현우 . . . . 6회 일치
         그러나 무작정 약 빤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표현의 문학성이 상당한 데다가 팬들 사이에서 가사 해석의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나온 다면적인 해석들이 또 설득력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 국카스텐의 모든 곡, 특히 2집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에 대한 하현우의 설명(해석이 아님)을 보고 나면 소재를 따온 방식, 담고 있는 의미, 뛰어난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주로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사물의 이미지나 신체 기관에 자아를 투영하거나(1집), 자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상황을 성찰하는 것(2집)이 큰 테마를 이루는데, 어휘 선택과 연출에서 한때 시인을 꿈꿨던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실제로 여러 장에 걸쳐서 메모한 노트를 줄이고 줄인 결과가 한 곡의 가사라고 하니까, 무의미한 단어의 연결이 아니라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이 의미의 모호함이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캘리그라피, 일러스트, 문학 등)을 양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2집부터는 가사 난이도가 하향 조정되고 전체적인 색깔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평도 있다.
          *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본격적으로 노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좀 웃픈데,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여자친구와 관련되어 있다. 여자친구가 인천 남자와 바람이 났을 때 자기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친구를 뺏겼을까 싶어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선, 매일 노래방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목에 피가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해피투게더 3 방송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 목에서 피가 3번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함부로 따라하면 절대 안 된다. 잘못하다간 평생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 고음을 내고 싶으면 보컬학원에 가서 보컬 트레이닝 받는 것을 추천한다.]
          * 소신 있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가창력이 딸리는 아이돌들을 디스하는데 [[http://cfile23.uf.tistory.com/original/233DE14156AE7262074BBB|이 짤방이]] 쓰인다. 바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는 것. 다만,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등의 프로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는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재발굴되어 까임거리도 되었다가 찬양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일단 저 발언 자체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들이 공장에서 물건이 찍혀나오듯 밀려나오며 아이돌에 대한 여론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한 발언이고, 해당 인터뷰를 요청했던 프로그램 자체가 기획사에서 양산되는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 발언이있고 얼마안되서 김기범과 함께 라디오에 출연해 좋아하는 아이돌로 미쓰에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미쓰에이는 멤버전원이 메인보컬급 이었음을 생각하면 하현우가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알수 있다.] 게다가 해당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국카스텐은 엠카운트다운에서 [[카라(아이돌)|모 아이돌]]과 협연 명목 하에 사실상 백밴드 노릇을 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해당 그룹이 노래를 너무나 엉망으로 했고, 이후 인터넷에서도 이 그룹들은 비판을 받았다. 짤방은 바로 그 일을 겪은 직후의 시기에 한 발언이었다. f(x)와의 합동무대에선 노래를 잘한다고 호평했다[[http://dc.news-ade.com/?c=news&m=newsview&idx=3623]]
          * 20대 시절 세상이 무섭구나라는 걸 깨닫고서 나쁜 것들을 피해가고자 관상, 손금을 연구하기도 했단다... 실제로 예능 방송에 출연하여 몇 번 시범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라디오 스타, 복면가왕(연예인 판정단 출연 시), 그리고 해피투게더에도 나와서 여러 사람들의 관상이나 손금을 봐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별명 '''하 도사''' 획득.
          * 군 시절 괴상한 선임이었던 듯하다. 라디오 스타 방송에 따르면 부대 안에서 연이은 도난 사건으로 모든 중대원이 내무반에 모인 최악의 분위기에서 옆에 있던 새파란 후임에게 뺨 때리기 가위바위보를 요청하고, 후임이 이겨서 우물쭈물하고 있자 후임 손을 잡고 직접 자기 뺨을 강제로 때리고 엄청 좋아했다든가,[* 후임과 빨리 친해지려고 그랬다고 한다.] 배식 받을 때 전원이 식판에 받은 밥을 하트 모양으로 만든 걸 확인하기 전까지 식사를 못하게 했다든가, 어느날은 후임에게 故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라고 시켜서 부르는데 '집 떠나와 열차 타고' 라는 구절에서 하현우 왈 "너 여기 입대할 때 열차 탔어? 자동차 탔을 거 아냐~"라고 하자, 후임 왈 "레조 탔습니다", 하현우 왈 "''''집 떠나와 [[GM대우 레조|레조]] 타고'''' 라고 불러야지!"라고 다그쳤다든가, 당직사관이 없는 점호 시간에 '''본인을 포함해''' 꼭 한 명씩 춤을 시킨다든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0623_192/sen0209_1466669953537k4IHB_GIF/89.gif?type=w420|군대에서 췄다는 춤]] 보초 서다가 밖에서 힙합을 사랑하다 왔다는 후임에게 [[비트박스]]를 해줄 테니 군 생활에 대한 프리스타일 랩을 하라고 시킨다든가[* 와중에 "그지같은 군생활 UH 이상한 선임을 만났네"라고 디스 먹었다고 한다.] 하는 일화를 보면 얌전하게 군 생활을 한 것은 아닌 거 같다. 본인도 설명한 기행들을 순순히 인정했다.
          * '라젠카 세이브 어스'로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신해철]]의 노래를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해철을 매우 존경한다. 또한 신해철도 본인 생전에 국카스텐을 고평가해준 적도 있다. 사실 생전에 신해철은 국카스텐을 고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칭찬해줬으며, 좀 속되게 표현하면 엄청나게 빨아줬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은 '예전에는 안 뜨는 인디 밴드들을 보면 이런 점이 좀 아쉽네, 했었는데 지금은 대중들이 문제인 거 같다. 국카스텐의 외모, 연주, 노래를 보면 (국카스텐이 뜨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아니 그럼 이 이상 뭘 더 해야 되냐?' 라는 생각이 든다. 국카스텐은 다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밴드이고 이미 200~300만장 음반이 팔렸어야 하는 밴드' 라는 극찬을 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지면 인터뷰에서는 '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 구멍을 뚫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까 빨리좀 앨범좀 내라 이새끼들아. 너희가 멈춰있으면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같은 발언도 했었다. 이렇듯 생전의 신해철은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 완전히 반했었다. 그런데 정작 신해철과 하현우는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자신들의 음악을 고평가한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하현우는 2집 음반을 갖고 신해철을 찾아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신해철은 의료사고로 인해 만날 수 없게 되었다.
  • 한명회 . . . . 6회 일치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어머니: [[예문관]]대제학 [[이척]](藝文館大提學 李逖)의 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驪州李氏)
         *** 손자: 한경기(韓景琦<ref>자칭 죽림칠현이라 하며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공신의 자손이라 하여 강제로 돈녕부도정에 임명되었다.</ref>)
         행정권력이 지방과 산골까지 미치지 못하는 점을 이용,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주민들의 자치 조직인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창시하였다. 그런데 한명회의 오가작통법은 면과 리 라고 하는 행정구역을 만들었고, 이는 20세기 이후의 면리제로 이어졌다.
         [[조선 단종|단종]] 복위를 꾀한 성삼문, 박팽년을 변호하여 세조가 직접 신문할 때에 “일찍이 성삼문.박팽년 등을 정인군자(正人君子)라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말을 하였다.”라고 하여 환열(轘裂)을 명하였다가, 세조는 [[정보 (조선)|정보]]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손자임을 감안하여 정상을 참작, 죄질을 한 등급 감하여 감형, 연일(延日)에 유배시켰다.<ref name="정보1"/>
  • 허목 . . . . 6회 일치
         그의 활동 중 뺄 수 없는 것이 예론(禮論)으로서 사실상 당시의 예송(禮訟)은 국헌(國憲)에 관한 문제로 정권과도 관계되는 임금의 체통(體統)에 관한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당대 예이론(禮理論)의 일인자로서 [[서인]] [[노론]](老論)측의 예론과 대립하기도 했다. 또한 예론을 통해 그는 권력을 장악한 소수 명문 거족의 세력을 꺾으려고도 하였다. 승리를 거둠으로써 왕권의 강화를 통한 왕조질서(王朝秩序)의 확립과 소수 명문 벌열세력(閥閱勢力)의 억제를 통한 일반 사대부(士大夫)의 기회 균등을 찾으려는 운동에 연결 되었는데 이로 인해 당화(黨禍)를 입어 시련을 겪었다.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고 [[서인]]에서 [[윤선도]]를 탐욕스럽고 음험한 인물로 몰고 가자, 허목은 송시열이 역심을 품고 종통과 적통을 부인한다며 [[송시열]]을 공격하였다.
         경연장에서 윤휴는 체부 설치를 극력 주장했고, [[윤휴]]의 체부 설치 주장에 대신들은 "저 사람들(彼人, 청나라 사람들)이 의심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허목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편 [[조선 숙종|숙종]]은 체찰사부 설치를 결정하고 [[의정부]][[영의정]] [[허적]]에게 도체찰사를 겸임시켰다.<ref name="chechals">[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3717146 오직 왕권을 위해 남인,북벌론 버렸다] 중앙선데이 2009.08.09</ref> [[허적]]은 부체찰사 후보로 김석주, 윤휴, 이원정을 천거하자 [[조선 숙종|숙종]]은 김석주를 낙점했다. 도체찰사를 남인 허적이 차지했으니 [[부체찰사]]는 [[서인]] [[김석주]]에게 맡겨 견제하게 한 것인데, 부체찰사로서 체부를 북벌 총지휘부로 꾸리려던 윤휴의 계획은 제동이 걸린 셈이었다.<ref name="chechals"/> 그는 [[서인]]이 병권 문제로 남인을 일망타진하리라고 예견하였다. [[김석주]]가 [[부체찰사]]가 되자 허목은 [[서인]]에 대해 더욱 경계한다.
         [[1676년]] [[1월]] 허목은 [[조선 숙종|숙종]]에게 ‘잠명(箴銘)’을 올리면서 ‘지금 신이 감히 고문체로 써서 올립니다. 이는 삼대시절의 글이고 교훈이며 법도이니 전하께서 언제나 살펴 잊지 마시고 준수하소서’라 하였다.<ref name="seo014"/> [[1678년]] [[서인]]의 영수 [[송시열]]의 처벌 문제로 미수와 한 집안인 영상 [[허적]]과 대립하게 되었다.<ref name="young200702"/> 허목은 [[송시열]]이 예를 오판한 것을 바로잡았음을 [[종묘]]에 고하자는 주장(고묘)을 하였으나 [[허적]]의 반대<ref name="young200702"/>로 무산되었다. 이때 [[경상남도]] [[장기현]]에 유배중인 [[송시열]]에 대한 처벌 문제가 부각되자, 그는 온건파인 허적의 탁남에 맞서 [[윤휴]]와 함께 [[송시열]]의 처형을 주장하며 강경파인 청남을 이끌었다. [[1678년]] [[3월]]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의정부]][[우의정]]직 사직을 청하여 윤허하였고, 바로 행[[판충추부사]](行判忠樞府事)에 임명되었다.
         <!--서인의 영수송시열과 남인의 형수 허목이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조선사에서 유명한 예송논쟁입니다. 자의대비는 조선의 제 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이며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입니다. 1635년 인조의 정비 인렬왕후가 죽자, 3년 뒤인 1638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당시 44세였던 인조와 가례를 올리게 됩니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가 1612년생, 차남 봉림대군이 1619년생, 3남인 인평대군이 1622년 생, 훗날의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가 1618년 생이니, 세자 보다는 12살, 차남 보다는 5살, 며느리 보다는 6살 어린 어머니 였습니다. 1649년 제16대 왕 인조가 재위 26년 만에 죽자 대비가 되었고, 1659년 제 17대 왕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죽자, 대왕대비가 됩니다. 이 해에 그녀가 입어야 할 상복이 정치 쟁점화 되었습니다. 조선 사회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근거한 예론에서는 자식이 부모에 앞서 죽었을 때, 그 부모는 그 자식이 적장자인 경우는 3년상을, 그 이하 차자일 경우에는 1년상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적장자의 배우자가 앞서 죽었을 경우에는 1년상복을 그 이하 차자의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에는 9개월 상복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서인의 영수 송 시열은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의 상중에, 장남의 예로서 3년복을 이미 치뤘는바, 효종은 차남이므로 상복을 1년만 착복하면 된다는 기년설을 주장하였고 남인의 영수 허 목은 효종이 비록 차자이기는 하나 왕위를 계승한 헛은 장자의 권위를 계승한 것이기에 장자의 예를 따라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즉 1차 예송은 예론상으로 종통문제를 변별하는 것이 핵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논쟁이 점 점 커지면서 서인들은 모두 기년설, 남인들은 모두 3년설을 주장할 뿐 아니라, 전국의 유생들도 서인과 남인의 색을 뚜렷이 하면서 조정이 더욱 시끄럽게 되자, 슬픔에 빠져 있던 효종의 아들인 제18대 왕 현종은 예송논쟁이 정치 쟁점화(현종 즉위초 서인과 남인의 정치 쟁점으로 인해 많은 유생들이 희생되었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의 의견을 받아 들여 기년설을 채택하게 됩니다. 허목은 이 논쟁의 책임을 지고, 당시로는 모두 부임을 꺼려하는 척박한 고장, 삼척 부사로 옮겨가게 되나 2년 뒤 관직을 사퇴하고 향리 연천으로 돌아 갑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의 예론이 승리를 거두고 서인은 현종때도 계속 집권세력이 됩니다. 그러나 종법질서에 있어서 효종의 위상에 대한 논란은 결론을 보지 못 한 채 불씨를 안고 남아 있었는데, 이 불씨가 1674년 2차 갑인예송으로 살아 났습니다. 2차 예송논쟁은 효종의 비 인선 왕후가 죽자 자의대비(제 16대 왕 인조의 계비, 대왕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이 또 다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집권세력인 서인은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둘째 아들의 비 이므로 둘째 아들 비의 예에따라 상복을 9개월만 입으면 된다는 논리를 펴게 됩니다. 그러나, 남인은 다시 한 번 인선왕후가 왕통을 계승한 제 17대왕 효종의 비이기에 효종을 장자로 보고, 인선왕후를 장자 비의 예에 따라 1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현종은 이 예송논쟁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 재 검토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남인의 의견을 받아 들여 서인들을 조정에서 물리 칩니다. 즉 현종의 입장에서는 왕위를 계승한 아버지 효종이 적장자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효종 자신을 위시하여 앞으로 왕위를 계승하는 모든 사람들이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적장자 대우를 받지 못 하는 것이 되기때문입니다 왕통에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마이 뉴스에서 인용한 내용 "...상복문제로 피 터지는 [예송논쟁] 벌여 주도권 싸움을 벌인 것은 예학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성리학]이란 학문을 내세워 기득권 싸움을 했다는 증명밖에 되지 못한다." 는 예송논쟁의 본질을 외면한 표면적인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송시열]]과 허목이 자의대비의 복상을 1년상을 입느냐, 3년상을 입느냐는 상복문제로 피 터지는 [[예송논쟁]] 벌여 주도권 싸움을 벌인 것은 예학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성리학]]이란 학문을 내세워 기득권 싸움을 했다는 증명밖에 되지 못한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5532 왕보다 화려한 왕비 능, 숙종비 인경왕후의 익릉] 오마이뉴스 2005년 03월 29일</ref>는 비판도 있다.
  • 김을동 . . . . 5회 일치
         [[친무|친무계]]로 분류되며 실제로 [[김무성]]과 같이 2016년 말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다가 2017년 11월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14년 9월 27일 거여근린공원에서 열린 거여골 주민 한마당 축제에서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난 뒤 아들 송일국이 선거 유세를 도와주게 된 일화를 이야기 했는데 그에 따르면 처음에는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거절을 했지만 거듭 부탁을 하자 마지못해 도와주기로 하면서 대신에 김을동에게 내걸은 조건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은 옳은 일만 해왔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 한데, 실제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어떤 옳은 일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거기다 당시에 노래를 부르고 일화를 이야기하던 때는 주택밀집지역 인근의 토요일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민원과 신고가 많이 들어가서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2016년 4월 5일 선관위가 주최한 토론회에 불참하고 본인의 선거 유세를 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불참 사유를 "수도권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어 다른 후보들 지원 일정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토론회가 있던 시간에 유세 차량을 타고 본인의 유세를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https://youtu.be/o2WkF6NWR1M|영상]]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을동은 DNA검사를 거부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이 머리카락 하나만 뽑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하였다. 중앙일보의 보도 이후 논란을 일으킨 위연홍은 잠적했으며,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도올 [[김용옥]] 측은 중앙일보 측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11104101042092|김을동측 입장]]] 실제로 위연홍은 보훈처에서 김좌진 장군후손을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귀국한것으로 알려져있다.
         2. 김좌진은 여러명의 부인을 두었고 김두한 말고도 자손이 많다. 그들이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서 방해되는 게 없다. 위연홍이 실제로 김좌진의 후손이라고 한들 후손이 한명 더 늘어나는것뿐인데 김을동이 손해 볼 것도 없다.유전자 검사해 달라고 하면 바쁘다고 아는 다른 후손 연락처 찾아주면 되는 일이다. 김을동이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해도 그걸 이용해서 위연홍을 몰아낼 이유는 없다.
  • 김태우(god) . . . . 5회 일치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실제로 2009년에 출연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스티비 원더며 세상에서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세계 최고 보컬 TOP 10에 자신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 예능에서 직접 세상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선 그마저도 철회. [[문희준]]과 [[은지원]]이 그 발언을 가지고 놀리자, 그때는 자기가 군대에서 나온지 얼마 안돼서 군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라는 말을 했다.
         이때에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성격 안 좋은 동료나 학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방법과 똑같다. 그냥 뒤에서 욕을 하거나, 생까고 같이 놀지 말거나.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거라면 모를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군대식으로 집합시켜서 군기 잡을 권리는 선배가 아니라 할애비라고 해도 없다. 그리고 김태우 같은 중간의 위치에 있는 가수가 저렇게 나선다면 밑에 있는 후배 가수는 정말 부담 백배로 선배를 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저렇게 후배들에게 반 강제로 인사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 되면 이런 인사를 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답이 없다. [* 다만, 김태우 본인의 말로는 오고가는 길에 마주쳤을 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간단한 인사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종서의 기분은 어땠을까?'라는 점이다. 김종서가 했던 이야기는 ''''너밖에 인사를 안 했어''''인데, 그 말의 뜻은 '인사를 와 줘서 반갑다'이지 '후배들이 인사 안 했으니 혼내줘'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태우는 김종서의 입장을 고려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과잉충성|선배를 위한답시고 후배들을 집합시켜 군기를 잡고 반강제로 인사시켰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게,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김종서를 엿먹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박석민 . . . . 5회 일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태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백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한화 이글스|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KIA 타이거즈|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아들 사랑이 꽤나 지극한 편. 홈런을 치면 주는 [[블레오]] 인형 대신 손목보호대를 던진다. 인형이 아니라 더 비싼 손목보호대를 던지는 이유는 아들 준현이가 인형을 더 좋아해서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1213455&page=1&bbs=|집에 갖다주려고.]] 홈경기 때는 샤워도 안하고 바로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목욕한다고 한다. 아들이 실제로 대구 홈경기 때 박석민의 손을 잡고 대구구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는 '''박석민의 18번'''이었고 이름에는 '''박석민 Jr.'''이라 적혀 있었다.
  • 상디 . . . . 5회 일치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 캬로 - 싸우다 도망쳤는데 잡혀서 강제로 [[오카마]]가 되었다.
          * 애니판이 KBS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아이들 정서상 부적절하다는 태클 때문에 '''담배가 츄파츕스로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근데 케이블 심의가 강화되어서 극장판을 제외한 TVA판 한정으로 [[투니버스]]에서도 츄파츕스로 바뀌었다.[* 항상 오렌지맛 사탕인 듯? 1기 오프닝과 초반부의 장면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사탕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계속 오렌지맛 사탕으로 고정. 그런데 의외로 사탕이 오리지널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많은 듯하다. 원작을 보고서야 담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디가 무인도 표류 이후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탕을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도 있다(...)] KBS판에서는 주석에서도 달려있듯이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 등에서 부싯돌 튕기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 반면에 이후에 방영된 투니버스판에서는 음향쪽도 완벽히 수정하여 완벽하게 사탕으로 만들었다. 북미판의 경우 [4kids] 더빙판에서는 무자비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4kids답게 KBS판과 같은 츄파츕스로 만들어버렸다. 다행이게도 이후에 [퍼니메이션]에서 재발매한 DVD판의 경우 무삭제로 나왔다. 대원판은 영상 수정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 처리로 때운다. 때문에 상디의 입이나 손은 항상 모자이크로 나온다. 음향쪽에서는 라이터 소리가 나는등 옥의 티가 있었지만 최소한 사탕으로 수정을 하려고 했던 KBS만큼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는 대원판 원피스의 무성의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동강동강 열매]도 변역기돌려서 뿔뿔이 열매로 만든 놈들이니까~~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토리코와의 콜라보편에서는 화면을 수정하여 '''아예 삭제됐다.''' 덕분에 손가락 모양은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지만 정작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있지 않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5회 일치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어퍼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플어퍼
  • 신혜진 . . . . 5회 일치
         그리고 이는 [[데뷔]] 후 1년이 지난 [[2016년]]에 '''실제로 안 좋은 일로 이어졌으며''', 1년이 더 지난 [[2017년]]에 '''갈 길이 갈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마이걸]]의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5px #7bdefb;color:#000000"> 러블리}}}''' [[보컬]] ,,[[진이]]입니다!`,,[* 실제로는 말끝이 흐려지는 게 [[함정]].]
         물론 진이 역시 활동을 거듭하며 [[데뷔]]곡 '[[OH MY GIRL#s-2.2|CUPID]]'보다 괄목할 정도의 파트를 분배받고 있으며 [[보컬]] 역량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실제로 [[데뷔]]곡 '[[OH MY GIRL#s-2.2|CUPID]]'의 [[비중]]과 [[2016년]] '[[내 얘길 들어봐]]'의 [[비중]]을 비교해보자. 확연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리드보컬]]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중]]이 비슷해졌고 중간중간 높은 음들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사실 후렴구 뒷소절을 모두 부르게 된 [[지호]] 때문에 [[유아(오마이걸)|유아]]와 진이의 [[비중]]이 비슷해진 거다~~
         이외에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안무]] 등 퍼포먼스적인 면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돋보이는 멤버는 아니지만, 자상한 [[성격]]을 가진 '''팀의 둘째로서 팀을 융화하고 지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오마이걸]]의 멤버였다.'''[* 실제로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쉬는 기간에도 [[오마이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으로 [[콘셉트|컨셉]]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큰 [[역할]]을 했던 멤버는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인 [[오마이걸]] 멤버 진이 양은 건강상의 문제로 지난 1년 여 간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 이하영(강사) . . . . 5회 일치
         그 이외에도 연계교재 문제나, 수능 기출문제의 문제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수능 기출도 최근 3개년만 정도를 권하는 등 학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학영역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출제되어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이 더 맞아들어가고 있다.[* 다만 현장강의나 정모 등에서 온 수강생들을 보면 1등급보다는 2, 3등급 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 그 이전에는 4~6등급 등 수포 직전까지 갔던 학생들이 이하영 선생님 강의로 성적을 올린 경우이기에 저평가할 수는 절대 없다.][* 다만, EBSi 수학 자체의 문제로, 강사 능력과 별개로 연계교재 위주의 공부로는 신유형이나 등급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에 대한 대처는 부족한 건 사실이다.]
         영어영역 [[이아영]] 강사와 공통점이 많다. 두분 다 미인 강사로 유명한데다 이름부터가...[* 실제로 이름을 크게 말하지 않으면 둘이 헷갈린다고 과거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해당 영역의 중하위권 학생에 포커스를 두고 친절하게 풀어가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라는 과거 강의에서의 언급도 있다.~~그런데 이'아'영 선생님 항목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하'영 선생님 항목은 2016년에야...~~
         수강생 정모의 경우 2013년 [[수능 끝난 고3]] 대상으로 한번 한 적이 있다. 이 정모 참가자 중 몇몇 학생들의 인터뷰를 찍어 2014 수능특강에 영상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출산+육아 등 개인적 문제로 하시지 않는 듯.
         ebsi의 사회탐구 영역 담당의 모 피디[* 진리 피디라고 불린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실제로 지리과의 [[강봉균(강사)|강봉균]] 선생님 라이브 클래스에 둘이 같이 나온 적이 있다!!! 단 2013년 라클이라 지금은 아쉽게도 지워져 볼 수 없다. 강봉균 강사와 상당히 친하다.
  • 정인숙 (1945년) . . . . 5회 일치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떠돌았다.<ref>윤재걸, 《청와대 밀명: 윤재걸 르포집》(한겨레, 1987년) 14쪽.</ref> 한편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2010년]] [[3월 20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는 20일 오후 11시10분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 -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라는 주제로 오래전 정인숙 사건의 실체를 다시 추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15&nid=78947 정인숙·정일권 누구?…40년 전 미궁의 살인사건, 경과부터 의혹까지] SSTV 2010-03-21</ref>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당시 정치 주요인사 수십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지도층의 부도덕성은 여론과 시민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세간에는 '육박전' 이란 화두가 나돌았다. 정인숙 문제 때문에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실여부를 추궁했고, 이것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박정희는 육영수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이것이 얼굴에 맞았고, 얼마 뒤 육영수의 눈에 푸른 멍이 든 것을 각료들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목격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을 회화화되어 육박전이라는 풍자용어가 확산되었다. 사건 확산과 자신이 동침한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점 등 여러가지 문제로 박정희의 호출에 무릎을 꿇은 정일권은 자신은 정인숙과 사귀긴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창원시 . . . . 5회 일치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 만날제 :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예곡리를 잇는 고개인 만날재에 전해지는 민담을 주제로 20세기 후반에 재구성한 축제. 구 마산시의 마스코트인 '만남이'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http://festival.changwon.go.kr/mannal/mannal.jsp|#창원시 홈페이지 참조.]]
          * '''[[진해 군항제]]''' : 창원시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행사. 일년에 딱 한 번 이 때만큼은 '''진해구 전체가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한때 통합 후 제1회 창원 군항제로 변경하여 진행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원래대로 바꾸었다.
         그 다음으로 개발된 상업지구는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이다. 상남동은 창원 중앙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안되고 빈 땅으로 남아있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개발이 시작되었다. 현재 상남동 상업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원래 꽤나 큰 시장이 들어서던 곳이었는데, 시장을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상업건물을 지어버렸다. 과거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들어서고 있어, 장날이 되면 네온사인으로 도배된 번쩍번쩍한 건물 앞에서 시장장인이 쪼그리고 앉아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기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상남동 상업지구는 유흥가 그 자체이다. [[노래방]]과 술집이 극도로 밀집해 있어 한강 이남 최대의 유흥지역이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10대~30대의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이 곳에는 학원도 군데군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낮이 되면 중고등학생들의 건전한 교육의 장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실제로, 12시에 학원 마치고 나오면 좌우앞뒤 모두 네온사인이 있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블랙리스트 . . . . 5회 일치
          1인 자경단. 어린 나이에 물건을 훔친 이후 오랫동안 BBB 갱단원으로서 활동하며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가, 감방에서 책을 읽고 회개하여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이후 그 가르침을 예전의 자신같은 젊은 갱스터들에게 설파하지만, 말로 안 되자 폭력으로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빈민지구 교회에서 남녀노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념'을 알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미계 마약 카르텔의 경호원 겸 킬러. 서글서글한 인상과 민머리가 인상적이며 고용주든 부하든 가리지 않고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메이커. 그래서 오히려 총잡이보다 외교관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는 모양. 실제로 운반책을 겸하고 있다.
          모든 아가씨들의 남자를 자처하는 한국계 제비족 청년. 어학연수나 여행 때문에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다가, 이런저런 함정에 몰아넣고는 돈만 먹고 튄다. 그리고 그 돈은 다른 아가씨들과의 파티에 날려버리는 악질. 반대로 미국에 너무 오래 머무르거나 이런저런 문제로 곤란해하는 한국인들에게 마약을 팔아먹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인면수심의 짓거리를 하고선, 자기 이름을 단 어학원을 경영하여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겁쟁이이기도 하다.
          친절한 거구의 나이트클럽 경비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장난으로, 실제로는 미국 남부에 있는 여러 나이트클럽을 소유한 경영자이다. 나이트클럽을 거쳐가는 대다수의 거래와 음모 등등을 꿰고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본인도 매춘과 인신매매 사업에 어느 정도 발을 담그고 있다. 그래놓고 집에 돌아가면 아내와 아이들을 챙기는 위선자.
  • 청도군 . . . . 5회 일치
         1906년(광무 10) 대구군 각북면, 현내면, 각이동면, 각초면을 편입하였다. 1912년에는 외서면(지금의 [[밀양시]] 청도면[* 실제로 밀양시 청도면과 청도군은 한자가 같은데(淸道), 외서면의 밀양군 편입 당시 원래 소속 고을인 '청도'를 따 면명을 개칭한 것.])이 밀양군으로 편입되고, 밀양군에 속했던 사지동(지금의 청도읍 사촌리)이 편입되었다. 1916년 군청이 화양면에서 대성면으로 이전하고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는 청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4년에는 청도읍 유호출장소, 화양면 남성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군청을 청도읍에서 화양면 범곡리로 이전하면서 화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경산시와 밀양시에 가려져 '청도'라고 하면 일단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 있으나, '''[[소싸움]]'''하면 대부분 청도 소싸움대회를 떠올릴 정도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고장이다. 한창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인 1999년에 개최되어 매년 3월 말쯤에 이서면 서원천 옆에 가설 경기장을 지어놓고 개최되어 지금은 문화관광부가 10대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할 정도의 네임드로 성장했다.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의 민주적 의식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사례로써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해당 사건들의 배경으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가 판치는 시기를 겪었던 노인층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실제로 금품을 살포한 후보자 및 선거본부가 제일 나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선거라고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런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에게 '''뭔가 없냐'''고 채근하고, 금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선거에 왜 나왔느냐'''고 힐문하기까지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책임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송전탑 건설 문제로 반대측 주민이 마을회관을 이용하지 못하여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에게 호소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49073|홈페이지]]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4회 일치
          >이념의 십자군은 자신을 헌신적인 지지자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극단주의자일 뿐이다. 만약 그가 파시스트라면 그는 파시스트가 아닌 사람 전부를 나약하고 퇴폐적이라고 여길 것이다. 만약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비민주주의자의 요구에 따르느니 전쟁에서 지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만약 그가 공산주의자라면 민주주의자들을 사악한 자본주의자들로, 파시스트들을 사악한 가짜 자본주의자들로 여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해답을 찾았기에, 사상적 문제로 그와 논쟁을 벌이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혼합경제는 정부와 민간분야 둘 다 경제를 관리하는 경제 체제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둘 다 지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다수의 혼합경제는 강한 규제력을 지닌 감시가 동반된 시장 경제로 묘사되며, 여기에 정부가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점이 추가된다.
          >이 참모총장[* 실제로 Chief of Staff라고 되어있다. 복붙 하다가 실수 한 듯.]은 자율성 교리를 믿는다. 작전 사령관들에게 지휘의 자유를 주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요소라는 것이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4회 일치
         그는 노르망디의 소귀족인 오트빌가의 탕크레드의 12아들중 6째로 그가 후처 프레센다 사이에 낳은 6아들중에서는 첫째다. 당시 할일없고 영지를 상속받을 가망도 없는 노르만 귀족들이 으레 그랬듯이 '용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남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내에서 '용병'이란 '용병대'가 아니라 영지를 봉급으로 외부의 기사들을 복무시켜 비잔티움 편제로 훈련시키는걸 말한다.] 그리고 그곳의 노르만 용병들이 그의 셋째 형인 '강철팔'기욤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킬때, 기스카르는 형을 따라 종군하면서 비잔티움에 맞써 싸운다.
         실제로 그는 당시 소렌토의 공작으로써 살레르노 공작과 대립중이던 그의 동생인 기욤[* 앞에서 설명된 '강철팔' 기욤과는 다른 인물이다.]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태주는 대신, 살레르노 공작의 땅을 잠식하는데 성공한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가지 불행이 있었는데, 항해를 할때마다 폭풍이나 기타 연유로 제대로 함대를 유지시키기 힘들었으며, 후계권 문제로 그가 죽은 이후 남이탈리아가 개판이 되버린것이다.(...) 최종적으로 이후 남이탈리아는 그의 자손이 아닌, 그의 동생인 로제르의 아들인 시칠리아 공작 로제르가 시칠리아 왕 루지에로[* 로제르의 이탈리아식 인명]로 즉위하면서 통일되게 된다.
  • 박수홍(코미디언) . . . . 4회 일치
         [[동안]]인 얼굴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동기인 [[남희석]]보다 1년 형이고 [[강호동]], [[김구라]], [[전한길]], [[김혜수]], [[한준희]], [[설민석]], [[이병헌]], [[고창석]], [[박명수]] 등과 동갑이다.'''[* 즉 2018년 기준 48세라는 얘기이다.] [* 또한 [[불타는 청춘]]에 출연중인 [[박선영(1970)|박선영]],[[최성국]],[[이연수]],[[곽진영]]과도 동갑이다.] 실제로 박수홍과 남희석이 같은 방송에 출연하면 형인 박수홍이 동생인 남희석에게 반말 하는데 얼굴만 보면 박수홍이 무지하게 버릇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그러나 두 사람은 실제로 오래된 형동생 사이로 위에 서술된 대로 단순히 개그맨 공채 동기일 뿐만 아니라 처음 개그맨 시험을 볼 때도 바로 앞뒤 순서였다고 한다. 당시 남희석은 [[자니 윤]]쇼에 출연한 경력이 있어서 이미 개그맨 지망생 사이에서 유명인이었는데, 개그맨 시험 전날에도 술을 먹고 시험을 보러 와서 지친 표정으로 대기하면서 자기 앞에서 시험보는 사람 중 한 명의 실패한 개그를 보고 힌트를 얻어서 그걸 그대로 살짝 바꿔 썼는데 심사위원들에게 대박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합격. 당시 대기하면서 남희석이 박수홍에게 가지고 있던 물을 달라고 말을 걸었다고 하는데, 박수홍은 잘 보이고 싶어서 물을 줬고 그 이후 남희석의 개그를 보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참고로 박수홍은 당시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이던 유명한 방송작가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자기가 그 사람의 아는 후배인 척하는 연기로 웃음을 줘서 합격했다고 한다. 그 심사위원은 얼굴을 모르는 청년이 자기한테 "형님, 저 차에 가서 있겠습니다."라고 해서 엄청나게 당황했다고 한다.--저 새X 뭐야?-- 그 후로 박수홍은 형들이었던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등과 많이 어울렸고, 남희석은 자기가 계파의 수장이 되었던 수준이라 단짝까지는 아니었지만 쭉 괜찮은 형동생 사이로 지냈고 함께 방송 진행도 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사이였다.
          * 위의 일화와 관련하여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된 일화가 있다. 박수홍은 동기였던 최승경과 사이가 나빴는데, 어느 날은 방송국 스튜디오 뒷문 쪽 계단있는 곳에서 최승경이 먼저 공격하고 박수홍이 반격하여 싸운 것. 박수홍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 자신이 준비하던 코너에 한 명을 더 넣어야 할 상황이 생겨서 최승경을 넣으려다가 그가 이미 다른 코너를 하고 있어서 김수용을 넣게 되었는데, 피디가 최승경에게 "수홍이가 승경이 니가 그 코너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던데"라는 말을 해서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박수홍은 자신은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마 프로그램 피디가 잘못 알고 오해가 생긴것으로 추정. 이에 최승경 본인이 원래 박수홍과 함께 개그맨 된 직후부터 계속 박수홍에게 말을 안 놓는 등 신경전[* 최승경 말로는 그 말 안 놓는게 동기 중에 둘 사이에서만 길어지자 신경전이 생긴거라고 한다. 어느 날은 방송 끝나고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할때 본인이 평소대로 "수홍씨 수고하셨어요"라고 하자 박수홍이 어이없다는듯 "수홍씨?"라고 하며 본인을 응시한 적이 있어 불쾌한 적이 있었다고.]을 했고 싸우기 전에 자신이 먼저 남희석에게 "나 KBS 본관에서 박수홍 깔 거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남희석]]은 덩치가 컸고, 어릴 때 유도도 했던 최승경이 상대이기에 박수홍이 선빵을 맞으면 일방적으로 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박수홍이 맞은 뒤에도 반격을 하면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난 그냥 수홍이형이 승경이한테 한대 맞고 나면 '에구'하고 쓰러져서 그냥 바로 질 줄 알았어. 근데 수홍이형도 몸이 날래더라고. 맞자마자 투다닥 파박 하면서 바로 반격하고 싸우는데 진짜 놀랐어."라고 증언했다.] 동료 개그맨들이 말린 뒤에 보니 결국 --선빵의 영향으로-- 박수홍의 얼굴이 찢어져 출혈이 심해 병원까지 가서 4바늘을 꿰맸다고 한다. 당시 그런 박수홍을 급하게 방송국에서 병원까지 이송한 사람이 [[유재석]].[* 그런데 유재석은 둘이 싸운 거라던가 다친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동기의 새 차를 자신이 처음으로 운전하게 된 것을 즐거워 했다고 한다.--어??--] 그리고 이 사건으로 최승경은 KBS에서 거의 제명당하다시피 했다.
          * 박경림과 박고테 프로젝트를 할때 박수홍 본인이 쓴 '착각의 늪' 랩가사에 노래 내용과 관계없는 '가난이 싫었어'라는 구절을 넣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개인사 토크를 중심으로 대중 설문조사 순위를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던 [[야심만만]]에서 은근히 가정사(특히 아버지) 얘기를 했는데 학창시절 때 아버지 사업이 몇번 망하면서 집안이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잠시 삐뚤어질뻔도 했었다고. 박수홍이 30대에 큰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어서 사업을 충분히 시작할만한 조건을 갖췄을 때에도 하지 않은 걸 보면 실제로 어릴때의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결혼 관련 사업도 40대가 되어 시작한 것으로 꽤 오랜 기간의 고민과 숙고 끝에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그때의 나쁜 기억 때문에 박수홍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그의 친형제들도 커서 서로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하는 분위기였고[* 이것도 그냥 누군가에게 질문받은 것없이 야심만만에서 진행을 하다가 관련주제가 나왔을때 갑자기 본인 스스로 자연스레 "저희 집은 어렸을때 사업에 관련된 힘든 기억때문에 지금도 형제들 모두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얘기했다.] 심지어 평소 가정에서 말수가 적은 편이라는 그의 아버지조차 '수홍아 더 이상 방송에서 가난했다는 얘기는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여 관계가 어색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스스로 한 언급에서 아버지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거나 이런 일은 없었지만, 가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한 아버지의 이야기조차 그대로 방송에서 언급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꽤 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어릴때 가난을 안겨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성인이 되어 성공한 뒤에도 꽤 크게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가 사업을 하려고만 마음먹었으면 최소한 톱엠씨로 금전과 인맥이 충분했었을 30대 중반에는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인데 40 넘을때까지 안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된다.
  • 박철우(배구) . . . . 4회 일치
         국내 날개공격수중에서는 탑클래스인 199cm의 장신에 높은 타점을 이용한 공격이 특기인 거포형 스파이커. 위 짤방에도 나와있고 [[https://www.google.co.kr/search?q=%EB%B0%95%EC%B2%A0%EC%9A%B0&newwindow=1&source=lnms&tbm=isch&sa=X&ei=DtQfVY3jDcHe8AXk8oCQAw&ved=0CAcQ_AUoAQ&biw=1325&bih=614#newwindow=1&tbm=isch&q=%EB%B0%95%EC%B2%A0%EC%9A%B0+%EA%B3%B5%EA%B2%A9|박철우의 경기중 스파이크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스파이크때 항시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팔이 최대한 높은쪽으로 가는 극단적으로 위로 뻗는 타법임을 알 수 있다. 거의 투수 [[김광현]]을 보는 듯한 [[오버핸드 스로|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이런 스파이크 스타일때문에 높은볼 처리능력이 좋다. 다른 선수면 타점을 맞추지 못해서 강제로 스파이크가 밀리면서 홈런볼이 될 토스를 억지로 코트 안으로 내려꽂을 수 있다는 것. 이때문에 토스가 높은 편이었던 현캐시절 송병일과 호흡이 꽤 좋았던 편으로 송병일과 호흡을 맞춘 삼성화재전에서 신들린 강타로 역전승을 일구어낸 적도 있다.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 중요한 순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 성재기 (활동가) . . . . 4회 일치
         성재기에 의하면 직업에 귀천은 없는데도 일부 여성 지식인들은 비뚤어진 자기들만의 도덕관념에 입각, [[성매매]]를 천한 직업으로, [[성노동자]]들을 천한 인간으로 매도한다고 지적했다. 성재기 [[남성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여가부의 [[성매매]]여성 보호정책은 [[성매매]]여성 여부를 정확히 가릴수 없음에도 추진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공론화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11월 28일]]과 [[11월 29일]], [[11월 30일]]의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41만원을 지급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며 여성부 정책의 패러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생각해보자는 공론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ref name="hangbit">[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2703539 남성연대 "성매매 안하면 41만원 입금" 알고보니] 머니투데이 2011.11.29</ref>"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2011년]] [[5월]]부터는 게임 [[셧다운 제도]]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고, 방송 토론과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게임 셧다운제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과 게임 셧다운제를 한다 하여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서 게임을 한다, 성인인데도 생일이 빠른 만 18세, 만 19세는 엄연히 성인인데 게임에서 강제로 퇴장당한다는 점 등의 폐단을 지적하였다.
         [[2012년]] [[1월]]에는 [[법원]]에 게임 셧다운제가 게임 이용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과, 셧다운제로 게임 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성재기는 여성들 앞에서 무조건 착한 남성이어야 된다는 [[강박 장애|강박관념]]을 가진 남자들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를 남자들의 얄팍한 [[자존심]]이며, 가진 것도 없는 놈들이 허세를 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2년]] [[11월]]에는 착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남성들은 계속 여성의 노예, [[노리개]]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3월 14일]] 각종 데이에 받기만 하는 여자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는 무조건 착한 남성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 받고 [[화이트 데이]] 때 명품백 등 고가의 선물로 '보답'해야만 교제가 가능한 여자와 데이트 중입니까?"라며 "그런 여자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거라면 당신은 병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 해방론을 거듭 주장, 남자들이 더 이상 [[결혼]]과 [[연애]]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했다. 또, 정 결혼을 하고 싶다면 [[국제결혼]] 쪽으로도 눈을 돌려보라고 강조했다. 외국 여성과 결혼한다고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며, 다만 그 사람이 한국에 정말 살려고 오는지, 돈만 받고 가출할 여자인지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f name="suns">[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031416334793718&outlink=1 성재기 "화이트데이에 명품백 받겠다는 X녀들" 독설] 머니투데이 2013.03.14</ref>
  • 양준혁 . . . . 4회 일치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 라이온즈]]가 [[김태한]]을 1차 지명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에 입대하였다.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검사 당시 상근 예비역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1년 간의 현역 생활 이후 방위병으로 전환해 복무를 마치게 되었다. 방위 복무 전환 이후 [[1993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 이 시기부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 첫 해에 타율 0.341로 [[한국 프로 야구 수위 타자|타격왕]]에 오르고, [[이종범]]과의 경쟁 끝에 신인왕에도 올랐으며, [[KBO 리그]] 사상 신인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다. 그해 130안타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을 달성했고, [[1996년]](151안타)과 [[1998년]](156안타)에는 최다 안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해“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ref>2001년, 양준혁이 9년 연속 3할을 치자 팬들과 여러 야구 선수들 사이에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양준혁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장효조]]도 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ref>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ref>1994년 양준혁의 타율은 2할 9푼 9리 7모로, 모 단위를 사사오입하여 3할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3할 타율을 넘지 못하였다.</ref>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양준혁을 회유하여 팀에 입단하게 한 삼성의 행위를 문제 삼기 위해 구단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시 양준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해태는 '양준혁의 삼성 입단은 명백한 규약 위반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KBO는 삼성에 [[1993년]] 양준혁의 입단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ref name="가나다라">{{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477&page=74&type=&values= |제목=양준혁 파동 재트레이드 없다 |확인날짜=2009년 2월 13일 |날짜=1998년 12월 27일 |출판사=일간스포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477&page=74&type=&values= }}</ref><ref name="가나다라마">{{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475&page=74&type=&values= |제목=KBO "93년 양준혁 입단경위서 제출하라" |확인날짜=2009년 2월 13일 |날짜=1998년 12월 30일 |출판사=스포츠조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475&page=74&type=&values= }}</ref>
         }}</ref> 당시 여러 전문가들은 양준혁, [[김성래]], [[강기웅]], [[이종두]]가 있는 삼성의 중심 타선을 문제로 지적하고, 약체로 취급하게 하였으나<ref name="경향신문"/> 신인 양준혁의 대활약과 부상에서 돌아온 4번 타자 김성래 및 이종두의 활약으로 팀은 준우승까지 하였다.<ref name="obbest" />
         양준혁은 선수협 파동 이후 얼마 가지 않아 [[LG 트윈스|LG]]로 선수협 여파로 인해 다시 한 번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소속 팀이었던 [[KIA 타이거즈|해태]]의 감독 [[김응용]]이 양준혁을 "선수 + 현금" 방식으로 트레이드 하겠다는 뜻을 말하자, 직접 [[LG 트윈스|LG]] [[권혁철]] 사장이 "적당한 선이라면 얼마든지 트레이드할 의사가 있다" 라고 영입 의사를 밝혔고, 또 당시 신생 팀이었던 [[SK 와이번스|SK]]가 양준혁을 사겠다고 선언했다.<ref name="가나다라양준혁2">{{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3&page=64&type=&values= |제목=LG, `양준혁 사겠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25일 |날짜=2000년 3월 23일 |출판사=스포츠투데이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3&page=64&type=&values= }}</ref><ref name="양18">{{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3&page=64&type=&values= |제목=김응룡 감독 "양준혁 팔겠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2일 |날짜=2000년 3월 23일 |출판사=일간스포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3&page=64&type=&values= }}</ref><ref name="양19">{{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0&page=64&type=&values= |제목=LG, `양준혁 사겠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2일 |날짜=2000년 3월 23일 |출판사=스포츠 투데이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60&page=64&type=&values= }}</ref> [[현대 유니콘스|현대]]도 여러 문제로 인해 양준혁을 사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선수협이 걸림돌로 작용하여 양준혁 영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해태 타이거즈|해태]]가 '10승 투수를 내주어야 트레이드하겠다' 는 말에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로 난색을 표했고, 결국엔 [[LG 트윈스|LG]]가 전년도에 10승을 거두었던 [[투수]] [[손혁]]에 현금 5억 원을 얹어 현금 트레이드하여 양준혁을 영입하게 되었다. 당시 [[LG 트윈스|LG]]와 함께 양준혁 영입 쟁탈전을 벌이던 [[SK 와이번스|SK]]는 [[LG 트윈스|LG]]와 달리 [[KIA 타이거즈|해태]]와의 트레이드 협상이 [[LG 트윈스|LG]]처럼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트레이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뒤처지게 되었다.<ref name="양20">{{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8&page=63&type=&values= |제목=양준혁 쟁탈전 불붙었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3일 |날짜=2000년 3월 23일 |출판사=스포츠 조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8&page=63&type=&values= }}</ref><ref name="양21">{{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5&page=63&type=&values= |제목=`양준혁 트레이드` 다른팀 반응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4일 |날짜=2000년 3월 23일 |출판사=스포츠 서울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5&page=63&type=&values= }}</ref><ref name="양22">{{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0&page=63&type=&values= |제목=줌업 양준혁-손혁 빅딜의 배경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4일 |날짜=2000년 3월 24일 |출판사=일간 스포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50&page=63&type=&values= }}</ref> 그는 이전에 있었던, 삼성이 해태로 자신을 트레이드한 사건과 달리 [[LG 트윈스|LG]]로 가는 이 트레이드에 불만이 전혀 없음을 밝혔다.<ref name="양23">{{웹 인용 |1=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47&page=63&type=&values= |제목="이번 트레이드 절대 불만 없다"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4일 |날짜=2000년 3월 24일 |출판사=스포츠 조선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1247&page=63&type=&values= }}</ref>
  • 우규민 . . . . 4회 일치
         2013시즌에 FIP 1위를 달성하였는데, 이 때문에 세이버까들이 FIP를 까는 주요한 근거(…)로 사용되는 선수가 되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FIP에 대해서 설명하면 지나가던 세이버 까가 "그래서 우규민이 2013 최고의 선수였다는 거니?"라고 묻는 구도.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닝이터가 아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LG 국내 선발진 에이스였던 것은 사실이다. 류제국은 본인 성적에 비해 승운이 따르던 편이었고, 실제로 LG팬들 사이에서는 우규민 선발일 때가 가장 안정적이었다는 평이 많다.] 우규민이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 덕에 피홈런의 영향이 큰 FIP에서 이득을 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즉 FIP 1위=최고의 투수라는 세이버까들의 전제 자체도 일정 부분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몰이해일 수 있다. 물론 이를 파크팩터나 홈런파크팩터 등으로 보정해서 산출한 ~~궁극의 스탯~~WAR조차 논란이 있는 만큼, 세이버메트릭스가 완벽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근데 우규민은 fWAR도 리즈 다음으로 리그 2위인데?--
         시즌 총평은 먹튀인듯 먹튀아닌 먹튀였던 시즌. 4년 65억이라는 가격에 비해 성적은 5점대 평균자책점에 FIP로는 4점대 후반인, 평범한 5선발 정도의 성적을 내 주었다. 45만불로 싸구려 몸값다운 싸구려 활약을 해준 [[페트릭]]과 대충 비스무리한 성적을 기록해 주었고, 실제로 WAR도 둘이 사이좋게 0.22, 0.33으로 나란히 대체선수급 활약을 해 주었는데, [[윤성환]]을 받쳐줄 솔리드한 2~3선발급을 기대하고 사온 것에 비하면 한창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
         결국 우규민의 문제는 허리부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고, 아직까지는 이 허리부상을 감안해 고액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던 LG트윈스의 판단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삼성도 이를 알고는 있었고, 실제로 건강할 때의 우규민은 WAR를 3점대 후반, 4점대까지 찍어주는 오히려 최전성기엔 윤성환보다도 WAR가 높았던, 4년 65억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부상 때문에 저평가되어 있을 때 낮은 가격에 구입해 STC의 재활시스템으로 고쳐서 쓸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일각에서는 괜히 친정팀이 안 잡았겠느냐며 생각 이상으로 허리 부상이 심각한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3일 실제로 1이닝 1실점하며 홀드를 챙겼다. 그런데 ERA는 5.40. ~~의외로 낮은데?~~
  • 울진군 . . . . 4회 일치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소와 사택을 제외하면 두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냥 평범한 동해안의 [[어촌]]. 울진까지 나가봐야 별 다를 게 없으니 교통을 떠나 무지 심심할 수 밖에 없다.
          근남면 구산리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는 약 870 m. 내부는 12개의 광장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중 관람이 가능한 부분은 10광장까지이다. 11, 12 광장은 동굴 보호 문제로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동굴 앞에 왕피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왕피천 물이 성류굴로 흘러들어온다. 이 때문에 물에 잠겨있는 지역이 많고, 이런 곳은 탐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계속 새로운 지역이 발견되고 있다. 2007년만 해도 5광장과 12광장쪽에 물에 잠겨있는 부분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특산물로는 [[대게]]와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등록된 울진 [[송이]]가 있으며 [[2005년]]과[[2009년]]엔 친환경 농업 [[엑스포]]가 개최 되었다. 이웃한 [[영덕군]]과는 대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그것도 원조 분쟁이었는데 한국산 대게의 원조 분쟁을 놓고 [[영덕군]]과 대립중이며 대게 생산에 있어서도 [[영덕군]]과 경쟁중이다.
  • 이서진(배우) . . . . 4회 일치
         || LG유플러스 || LG유플러스 제로클럽 & tv G || 이동통신 ||
         특히 tvN 이적 후 나영석 PD가 최초로 시도한 포맷의 프로그램은 거의 전부 다 이서진이 출연했고, 반응이 좋아서 이후 후속작들이 나오게 된지라 사실상 tvN표 나PD 예능의 상징 혹은 대표로 여겨진다.[* 실제로 나PD와 함께 tvN 대표 공무원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tvN 시상식에서도 이서진에게 예능 대상을 수여했다.] 본인은 나영석의 페르소나라는 말에 대해 그런 건 해외 거장 영화감독들이 쓰는 용어 아니냐고 어이없어 했지만 어서옵SHOW에 나갈 당시 신서유기2와 동시간대라 나PD가 섭섭해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영석은 내가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 걸 보면 본인도 나 PD도 확고하게 나영석 사단이라 생각하고 있는듯.
         나영석 PD와 엮이면서 연기에만 전념하던 커리어의 방향이 바뀌어 예능 쪽에서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영석 PD가 tvN에 온 뒤 내놓은 첫 작품인 배낭여행 시리즈부터 다음 작품인 삼시세끼 시리즈까지 성공하며 둘은 예능계에서 때놓을수 없는 조합이 되었다. 이 덕에 "나영석의 페르소나"로 불리는데 실제로 KBS 퇴사 이후의 나영석과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같이 한 연예인도 이서진이고, 나영석과 함께한 모든 예능 출연자들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곯려진다.[* 나영석 PD 본인의 컨셉상 모든 출연자들에게 깐족대거나 괴로운 미션을 주지만 이서진 같은 경우는 그냥 대놓고 놀리거나 시비를 걸어 투덜이 기질을 끌어내고 있다. 실제로 사적으로도 친하다고 하는데, 방송에서도 투닥투닥 할 때가 많은 편.] 나영석 본인은 이서진이 개인적으로 가장 웃기다고 평하면서 "어떤 음식을 다음부턴 절대 먹지 않을 거라고 해도 생각날 때가 있는데, 이서진이 딱 그렇다. 나쁜 짓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게 이서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이라고 평했다.
  • 이철희(1964) . . . . 4회 일치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실제로 번듯한 정치 연구소 소장이라기보다는 전화 받고 사무실 지키는 직원 하나 둔 개인 사무실에 간판 하나 달아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썰전]]에 출연하기 시작한 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연구소에 부소장도 생겼다. [[서양호]] 씨인데 2011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당인 출신이다. 이철희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장직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서양호 소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중구청장으로 당선.
         이걸 OOO 개인의 문제로만 봐야 하느냐?
          * [[맥심(잡지)|맥심]] 2016년 2월호에 (뒤)표지모델로 나왔다. [[http://i63.tinypic.com/2evdy07.png|사진 참조]] 그 후 맥심 2016년 2월호가 완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이건 이철희 사진이 멋있게 잘 나와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순전히 [[시노자키 아이|(앞)표지모델로 나온 사람]]덕분이었다는 게 정설이다.[[http://i67.tinypic.com/24yp6qg.jpg|사진 참조]] ~~의문의 완판남~~
  • 정형돈 . . . . 4회 일치
         * [[MBC]] 《MBC 가요대제전 (12월 31일) : MC》
         * [[MBC]] 《가요대제전 (12월 31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바이러스 제로
         * 공기제균기 탐구생활 바이러스 제로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4회 일치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반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태황태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아무튼, 술탄 무라트 2세도 콘스탄티노스를 새황제로 인정했고 그렇게 동유럽에선 나름대로 평화가 유지된듯 보였다.... '''야심가 한 명이 새로 즉위하기전까진 말이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재상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남는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 판타스틱 포 . . . . 4회 일치
         557호에서 휴먼 토치가 사망하고 2월 23일[* 이 날짜는 이슈 558의 발표일. 실제로 발매된 건 4월이다.] 588호로 시리즈가 마감되고 후속작인 FF(퓨처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으로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였다가, 휴먼 토치가 다시 복귀하고 2013년 마블 나우부터 다시 판타스픽 포 시리즈의 연재가 시작됬다.
         때에 따라 구성원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4명의 후천적 초인-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 수전 스톰([[인비저블 우먼]], 후에 리드와 결혼하여 수전 리처즈가 된다.), 조니 스톰([[휴먼 토치]] II),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4명의 인물들의 인간 군상과 가족 드라마를 주제로 한다.
         또한 판타스틱 포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코스튬도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으며 자경단보다는 [[자원봉사]]단에 가깝다[* 실제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서 스파이더맨에게 "우린 자원봉사야"라고 얘기한다].
          *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성공할지 회의적이었기에 [[스탠 리]]는 [[잭 커비]]에게 부탁해서 판타스틱 포를 슈퍼히어로물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판타스틱 포 1, 2화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들은 다 평상복을 입고 있으며 표지의 중심은 괴물들이기에 슈퍼 히어로보단 호러/괴수물처럼 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3화쯤 돼서 판타스틱 포가 인기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서야 코스튬을 입히게 된다.
  • 풍운 . . . . 4회 일치
         동영 제일의 무사 절무신과의 대결. 절무신의 아들 절심을 가짜 황제로 둔갑시켜, 절무신은 중원의 제위를 얻으려고 한다. 보경운과 섭풍, 무명은 단지 사적인 원한이 아니라 우국충정으로 동영 무사 일당과 싸우게 된다.
         보경운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소에는' 착한 인물로 보이며, 실제로 이 만화에서 독보적인 인성갑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살육충동이 있어서 빙심결을 사용하여 억제하고 있다는 설정도 있으며 1부 막판에는 마도에 빠져서 거하게 폭주하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캐릭터. 선풍퇴를 통하여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부각되어 후반부에는 '바람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을 하여 음모를 꾸미는 것이 특기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갈수록 절심 패턴에 익숙해져서 중반을 넘어가면 '이새끼 절심이네'라고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너무 사기라서 그런지 오랫동안 묻혀 있었으나, 이후 소검성이 성령검법을 습득하여 검이십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노검성의 검이십삼과는 뭔가 다르다고 하고, 실제로 노검성 만한 포스는 나지 않는다.
  • 피우진 . . . . 4회 일치
         1956년 8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직업군인의 딸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위로 언니 2명, 아래로 여동생 1명과 남동생 1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도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다. [[청주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야간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당시는 돈이나 뒷배경으로 교직을 얻는 교사들이 많았으나, 피우진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단호하게 반대하여, 피우진은 일반 중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군]] [[사관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직업군인]]을 결심했다고 한다.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 헌터X헌터/369화 . . . . 4회 일치
          * 구로너 바퀴벌레는 4왕자 처소에 도달해보지도 못한 채, 통풍구 안에서 체리드니히의 넨수에게 잡아먹히고 리틀 아이는 강제로 해제된다.
          * 그의 사과는 "사후승인"을 받게 된 것에 대한 것. 그가 왕비에게 넨능력을 빌려준 부작용으로 왕비의 잠들어 있던 넨소질이 강제로 깨어나 버렷기 때문이다.
          왕비는 왜냐고 되물었지만, 어느 정도 짐작했던 것 같다. 역시 마이너스가 더 큰 거냐고 물은 걸 보면. 하지만 크라피카가 사죄한 이유는 그런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였다. 완전히 정반대. "사후승인"이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스틸체인은 반강제적으로 넨능력을 부여하는 특수한 넨이다. 따라서 거기엔 일정한 부작용이 따르는데, 비능력자에게 사용했을 경우는 "잠자는 능력을 강제로 깨우는" 것이 된다. 오이토 왕비는 그 의미를 금방 깨달았다. 단지 확인만 구했을 뿐이다.
          * 장레이가 파견한 "텐후토리"는 장레이의 사설병이다. 주먹코에 안경이라는 볼품없는 행색. 그도 실제로 명령받은건 정찰과 감시였다. 목표는 크라피카. 그에게 접촉을 시도하는 인물들이었다. 장레이는 크라피카가 앞으로 키맨 노릇을 할거라 내다봤다. 텐후토리가 보기엔 제 1왕자, 4왕자, 5왕자가 요주의다.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4회 일치
         1집 녹음 당시 회사와 주변의 권유에 따라 일부러 목소리를 얇게 내었다. 실제로는 데뷔 전부터 굵고 낮은 목소리에 가까웠다. 목소리를 얇게 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유영진(작곡가)|유영진]], [[강타]], [[신혜성]]같은 SM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더니 돌아온 건 "'''강타 + 환희 = 환타'''"냐는 비아냥 뿐.(...) 그 때부터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앨범마다 목소리가 진화한다. 실제로 플라이투더스카이 1집을 듣고 "'''환희 목소리가 좋아서 계속 찾아 들었는데, 멤버가 바뀐거냐'''?(...)"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을 진행했다.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은 비자문제로 중도하차하여 환희 단독 DJ라고 봐야되지만 이름은 일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이다. [[김연우(가수)|김연우]], [[린(가수)|린]], [[김범수]], [[김현성]], [[서영은(가수)|서영은]] 등등 실력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와 같이 노래부르던 삼색떡볶이라는 코너가 유명했다. 노래만 편집해서 [[MP3]] 파일로 인기리에 떠돌아다녔을 정도.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3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사실 허수로 부풀린 관객수로 투자를 받아 봤자 투자자는 관객수에 비해서 수익이 적다는걸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된다. 차후에 실제로 관중이 발표한 만큼 늘어나도 축구=수익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에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 부풀린 데이터를 제시하는건 일종의 '투자 사기'이며,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투자에 필요한 신뢰를 얻는데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 That 70's show . . . . 3회 일치
         에릭의 [[누나]]. 섹시하지만 사생활이 매우 문란한 [[빗치]](…). 에릭과는 반대로 키티와는 사이가 나쁘고, 레드에게는 귀여움 받는 딸이다. 에릭과는 견원지간으로 사이가 나쁘다. 시즌 초반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중간에 뭔가 문제로(…) 대학에서 짤리게 된다. 재키와 사귀던 켈소를 유혹하여 켈소와 관계를 맺고 삼각관계가 됐다가, 재키와 켈소 사이를 파탄내기도 했다. 5시즌에서는 페즈와 캠핑장에서 관계를 했다가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페즈를 구해주려고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레드는 심장마비 발작을 일으켰다.
         리사 로빈 켈리는 알콜중독 등 사생활 문제로 5시즌에서 하차. 6시즌 부터는 배우가 크리스티나 무어로 바뀌면서 뭔가 위화감 넘치게 된다. 8시즌에서는 [[캐나다]]로 갔다는 언급만 남기고 그나마 나오지도 않는다.
         6시즌 31에피소드 '밴스탁(Vanstock)'에서 잠깐 언급되지만, 드라마 패러디에서 나레이션으로 언급되는 것이므로 실제로 등장한다기보다는 농담에 가깝다.
  • 강동우 . . . . 3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이후 꾸준히 제몫을 해냈으나 허리 미세통증으로 인해 6월 26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회복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복귀. 한화는 강동우가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 등을 1번 타자 자리에 기용하였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실제로 강동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한화는 2승 7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에는 '''[[장성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1군으로 올라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8월 2일 이후로 다시 2군행. 다행히 1번 구멍은 [[오선진]]이 각성하면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 강석경 . . . . 3회 일치
         * [[1986년]] 제10회 <[[오늘의 작가상]]>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1986년 제6회 녹원문학상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1974년 제1회 문학사상 신인상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김갑수(배우) . . . . 3회 일치
         의외로 2004년에 [[영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영]]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9년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KBS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주진모와 연인 사이로 나오기도 했다.[* 키스신도 있었다!] 극중 자고있는 주진모의 등(그것도 헐벗은 상황)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다 한다.~~[[감비노]]도 궁금해 하더라고 [[등짝을 보자]]~~ 무릎팍 도사와의 대화중, '쌍화점에서 주진모와 조인성이 동성간의 사랑을 연기했는데 봤느냐?'라는 질문에 '''[[오유가또|진모가 또]]?'''라는 발언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 그라운드 제로 || 김천수 || 조연 || ||
  • 김만수(정치인) . . . . 3회 일치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반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김상중(배우) . . . . 3회 일치
         배우로서도 유명하지만 가장 유명한 쪽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유명하다. 이전 진행자였던 [[문성근]]의 경우도 그랬지만 김상중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그것이 알고싶다'가 먼저 생각나게 된 경우이다. 아이콘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진행 스타일이 프로그램에 잘 녹여 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란 프로그램을 한정해서 보자면 이상적이겠지만, 배우로서 그의 이미지가 정형화된 것을 보자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2015년]]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밝힌 바로는, 그알싶이 욕먹을지도 모르니 악역도 적당한 수준(냉철한 면모)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코믹 연기는 아예 엄두도 못 낸다고. 다만 본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꾸준히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전문가적이고 신뢰가는 얼굴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전국인구주택총조사에 모델로 발탁된 것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 그의 정돈된 몸짓, 절도 있고 완급 조절에 능한 진행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클로징 멘트에서 그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보여서(일례로 세월호 특집 때 클로징 멘트 중에 눈물을 보였다.) 그간 시사프로그램이 딱딱하다 무겁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청자에게 좋은 영향으로 어필하고 있다. 덕분에 무난히 10년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으로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X8MMNItNQGc|수상 장면]] 김상중은 수상소감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나이에 공로상을 받기엔 이른 것 아닙니까? [[아재개그|상중의 상중소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대상후보를 대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패러디한 그들을 알고싶다라는 코너도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만만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다. 실제로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 출연섭외 요청도 있었으며 팬들도 예능출연을 원하는 분위기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위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77982|관련 기사]] ][* 그알싶을 맡기 이전에는 [[상상플러스]], [[일요일이 좋다]]-엑스맨, [[여걸 식스]] 등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영화홍보 등을 위해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었다. 외모만 보면 [[엄진근]]스러울것 같은데 막상 토크나 게임에선 부드러운데 어딘가 허당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추적자 종영 후 추적자 외전으로 런닝맨에 장신영과 출연했다. 당연히 컨셉은 극 중 강동윤 캐릭터.
          * [[취미]]는 온로드 바이크 운전인데,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바이크 마니아로 통한다. 젊은 시절엔 레플리카 바이크를 다수 [[소유]]했을 만큼 푹 빠졌고, [[현재]]는 방송 활동 등의 이유 덕에 자주 타지는 못하지만 꽤나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도 [[영화]] [[투사부일체]]에서도 [[스턴트맨]]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이크]]를 몰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2014년 중순부터 [[XTM]]에서 론칭한 바이크 관련 프로그램인 [[슈퍼바이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에서 밝힌 일화로, 바이크를 타던 도중 불량 고교생으로 보이는 무리를 만나서 헬멧도 안쓰고 위험하다며 훈계했는데, 하필 그 때 조작 실수로 바이크의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 김승대 . . . . 3회 일치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반신반의 하던 상황이었다.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활동량이 많고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만큼 포항이 제로톱을 가동할 때 가짜 9번 위치에는 무조건 김승대가 뛴다. 2014 시즌에 포처 원톱으로도 효율성이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경기 중에도 변칙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안 그래도 공격수 부족에 시달리던 포항으로서는 매력적인 카드가 되었다.
  • 김영환(1955) . . . . 3회 일치
         3파전 속에서 [[홍장표(정치인)|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영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당선된 건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철민(정치인)|김철민]] 전 안산시장으로, 당선인과 김영환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 차이(...)'''.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3회 일치
          * 동방 변경주 : 제국의 동북방에 위치한 변경주로 제국의 최전선 중 한 곳. 북동쪽에 웅거한 30만 명에 달하는 야만족을 1개 군단 5천 명(실제로는 전사자 등으로 인해 4천 명 수준)만으로 막아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높다. 이 때문에 주의 주요 인물들도 중앙에서 좌천된 인물이거나 사고뭉치, 혹은 출신이 확실치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사이파카르 : 주인공. 6황자. 바보같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야심가이면서도 신중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황제에게 경계심을 사서 변경으로 쫓겨간다. 주변의 여성 가신들에게 하나같이 사랑받고 있는 게 특징.
          * 레프라프티 : 수군사령관. 실제로는 내륙 지역인 변경주엔 수군이 없지만, 변경주로 좌천된 신분이라 임시로 달게 된 직함.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3회 일치
         867년부터 886까지 비잔티움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마케도니아 왕조]]를 열어 비잔티움의 본격적인 중흥기를 마련한 군주중 한명이다. 아르메니아인 촌뜨기 마구간지기로 시작해, 제국의 중흥기를 마련한 황제기도 하나, 한편으론 자신의 야망을 위해 황제의 외삼촌과 황제를 살해한 인물.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상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 바키도/133화 . . . . 3회 일치
          * 무사시는 깨어나 패배를 인정하는데 모토베는 이것은 "생환"을 전제로한 "연습시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평한다.
          * 모토베가 이번엔 "그럼 손대중 한걸 말한 참이냐"고 말한다. 자신이 적일 수는 있어도 "강적"이진 않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무사시의 검은 모토베의 방어구를 아득히 능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게다가 피클에게 한 것처럼 "귀퉁이"를 베어내는 방법도 쓸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손대중을 하며 상대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이다. 대답이 없는 무사시에게 모토베가 "다 들켰다"고 지적한다.
          * 모토베는 무사시의 오륜서에 나오는 "천일의 수행을 단, 만일의 수행을 련이라 한다"는 문구를 인용한다. 무사시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린다. 모토베는 그 인용대로 무사시는 언제나 단련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지금 이 시합, 아니 "연습시합" 중에도 줄곧. 이 승부는 어디까지나 "생환"을 전제로 했던 것. 결코 목숨을 건 진검승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모토베는 그 "단련"에 편승해 간신히 이긴 거라고, 자학적이기까지 한 발언을 한다.
  • 박재정(배우) . . . . 3회 일치
         실제로는 웹상에서 상당히 까이는 배우. '''[[발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시걸]]처럼 배역의 폭이 좁은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는데 외모 탓인지, 아니면 원래 연기를 그렇게 못하는 것인지 표현력이 매우 부족하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라서 실제로는 사투리가 굉장히 심한 편이라 한다. 그 때문에 발음에 신경 쓰느라 연기력이 떨어진다고 본인이 밝혔다. 하지만 본인이 밝힌 바와는 달리 정작 연기와 발음 양쪽 모두 코믹함을 안겨주고 있다.[* 발음에 신경이 쏠려서 연기가 안된다는 것 치고는 발음도 안 좋고 후에 자신의 생활언어인 사투리 캐릭터로 나왔을 때조차 연기가 안 좋았다. ~~배우 맞냐~~]
         2009년 7월 인기리에 방영했던 [[선덕여왕(드라마)]]에 미실의 어릴 적 연인 화랑 [[사다함(선덕여왕)|사다함]]으로 캐스팅되었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정작 출연 분량은 '''초단위'''이다. 그 이후엔 목소리만으로 마지막을 장식(...). 더군다나 이 편지 나레이션마저 국어책의 저주가 내린 듯. 상대역으로 출연한 [[애프터스쿨]]의 [[유이(배우)|유이]]는 연기 데뷔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컷 나온 것에 비하면...[* 게다가 방영 전 기사에는 서로 사랑과 이별의 연기로 호흡을 맞추었다는 둥 난리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둘은 실제로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 박주영 . . . . 3회 일치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은 몸싸움. FC서울 시절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반기 시즌뿐으로,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들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왔고 실제로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837061|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드립|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박진성(시인) . . . . 3회 일치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반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위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진성 시인이 [[미투 운동]]을 반대하고 [[무고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와전되어 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다른 문인들의 성범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박 시인은 [[탁수정]]이나 [[위근우]]처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비판할 뿐, 미투 운동을 지지함은 물론 '''[[고은(시인)|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등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故 [[성재기]]를 비상식적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성재기는 [[성재기/평가|'박근혜 지지=남성연대지지'라며 박근혜 지지철회자들에게 "병신"이라며 "조금만 좋으면 학학대고 조금만 싫으면 획 바뀌는 인스턴트인생들,너희들이 하찮다.굿이나보고 떡이나 처먹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를 밀어줬고 박근혜 측도 "준비된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사용했는데도 그는 계속 '박근혜 지지=남성연대 지지'라고 주장해서 제대로 된 남성인권단체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아래는 박진성 시인의 평가다.
  • 배영수 . . . . 3회 일치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그 사건 이후 제가 야구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예, 참교육 맞습니다 ㅋㅋ~~[* 배영수가 나중에 참교육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하면서 실제로 했던 말이다.]
  • 송주훈 . . . . 3회 일치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3회 일치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 에이잔은 그같은 설명을 헛소리로 일축하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장면들 뿐이다. 가령 자재창고에서 마주쳤을 때, 타쿠미가 노려보고 있다, 복수심을 불사르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그를 면밀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3rd ABOUT이 시작된 내내 계속됐다. 그는 타쿠미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기 요리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타쿠미는 에이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신의 유도에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 신화용 . . . . 3회 일치
         김지혁이 상무 입대를 하고 상주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영구제명 상황까지 가게된 현재 부동의 주전 골키퍼. 다만, 2010 시즌에는 실점이 꽤 많은 편이고 팀 성적도 좋지않아 여전히 좋은 평가를 못받았다. [* 실제로 2009 플레이오프 성남전에서는 몰리나에게 통한의 프리킥골을 내주며 팀이 결승 진출 실패.]~~[[호세 마누엘 레이나|레이나]]?~~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K리그 클래식 주전 골키퍼 중에서도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특히 수비 리딩은 정상급이다.[* 덕분에 2017시즌의 수원 수비가 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반사신경, 상황판단력등이 모두 평균이상이라 안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과감히 수비라인을 전진시키며 전진압박을 유도하는 과감성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신화용이 골리였을 때인 2017년과,정성룡,양형모,노동건이 골키퍼였을때의 수비 라인 유동성이 크게 다르다.] 경기 중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를 통해 작전이 쉽게 전달되지만 상대 공격진에게 간파당할수 있는 위험성 역시 갖추고 있다. 거기에 골리치고는 단신에 속하는 신장인지라 공중볼 처리에 약점이 있으며, 역시 프리킥 상황에서도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은 몸 탓인지 날렵한 편이라 반사신경과 더불어 슈퍼세이브를 많이 만들어내는 골리이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3회 일치
         잘 울지 않는 성격이며,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도 본인 감정을 잘 컨트롤한다. 음악방송 등에서 멤버들이 울 때 항상 멤버들을 진정시켜준다. 이런 행동에서 보아, 이끌어 나가는 것 보다도 다른 멤버들과 소통을 자주하는 리더로,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는 대신 최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공유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지만 멤버들이 혼란을 겪고 있거나 중구난방한 상황이 되는 경우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편이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맥주]]를 싫어한다고.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같다고 말할 정도. 본인이 [[소주(술)|소주]]파라고 밝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대신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면서 푼다고 한다.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레드벨벳]] 멤버들 중 술이 가장 세다고 한다. 실제로 레벨업프로젝트2에서 남해독일마을에서 예리를 제외한 맴버들이 독일 맥주를 마실때 아이린만 마시지않았다.
  • 영덕군 . . . . 3회 일치
         그런데 대게 생산지로 알려진 주변지역인 [[울진군]]과는 대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산 대게의 원조가 영덕이냐, 울진이냐를 놓고 두 지역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으며 지금도 두 지역 사이에서는 대게를 놓고 한 판 경쟁을 벌이는 수준. 정치적으로도 소지역주의로 약간 갈등 소지가 있으니 [[울진군]] 항목 참조.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강석호]] : 영덕군을 비롯해 [[영양군]], [[봉화군]], [[울진군]] 지역구의 국회의원이지만 실제로는 아랫동네 [[포항시]] 출신이다.
  • 유인촌 . . . . 3회 일치
         참고로 실제 성은 '[[류(성씨)|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성씨)|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이경영(1960) . . . . 3회 일치
         위 인터뷰를 보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기사들 때문에 이경영이 무죄판결을 받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경영의 말은 1/3만 진실이고, 2/3는 거짓이다.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만 무죄고, 나머지 두 번의 성관계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여자문제로 출연금지당했으나 영화로 재기한 선배 [[송영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셈.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남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영화)|26년]]》, 《[[베를린(영화)|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일본 영화인 《외사경찰》(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에서 까메오이면서 악역인 북한군 장교로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3회 일치
         ||<width=30%><:> [[이희완(배구)|이희완]][* 시즌 중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사임.] [BR] (2006~2008) ||<:> {{{+1 →}}} ||<width=30%><#2c3d47><:> '''{{{#e8581b 이성희[* 다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2007-08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8년 1월부터 위암 발병으로 자리를 비운 이희완 감독을 대신하여 팀을 이끈 상황이었다.]}}}'''[BR]'''{{{#e8581b (2008~2010)}}}''' ||<:> {{{+1 →}}} ||<width=30%><:> [[조혜정(배구인)|조혜정]] [BR] (2010~2011) ||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컵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 이유리(배우) . . . . 3회 일치
         || 2014년 12월 31일 || [[MBC 가요대제전]] || ||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드라마 《[[슈퍼대디 열]]》 과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각각 폭탄주와 소맥을 제조하는 장면의 생활 연기가 주목받았다. 실제로 이유리는 주당이었으나 술을 끊었다고 한다. 이유는 깨작깨작 마시기 싫어서.
  • 이준(배우) . . . . 3회 일치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백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백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반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식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 이지아(배우) . . . . 3회 일치
         [[디아블로 3]] 공식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http://kr.battle.net/d3/ko/blog/1468860/회상_디아블로를_추억하며-2012_05_03#blog/|"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디아블로]]였다--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 산하의 최고급 스포츠 승용차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이지아 때문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지아는 [[마세라티]]의 플래그쉽 [[FR(자동차)|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5세대의 오너(사실은 리스차량)인데, [[2013년]] 4월의 어느 날에 음주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이동하다가 논현동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현대 쏘나타|쏘나타]]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마세라티]]가 더 알려졌다.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실제로 [[마세라티]]/[[페라리]] 수입사인 FMK 측에서는 이지아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접촉사고 때문에 [[마세라티]]의 인지도 상승에 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본의아닌 노이즈가 있고 난 후 출시되었던 [[마세라티 기블리|기블리]],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판매량이 늘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이지아~~
  • 이채영(fromis_9) . . . . 3회 일치
         ||<bgcolor=#BBB3D8> '''{{{#white 별명}}}''' ||<(><bgcolor=#ffffff> 챙람쥐, 엘리자베스, 이천재[* 평소 말할 때 과장이 심하다고 멤버들이 붙여준 별명], 빅스쿼럴[* 실제로 친언니가 부르는 별명이다.] ||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SHOW CHAMPION|쇼 챔피언 비하인드]] 80회에서 실시한 쇼챔올림픽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245cm[* 실제로는 195cm에 보너스 기록 50cm가 추가된 기록이다. 2003년 고3 여학생들의 평균 기록이 165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사실 245cm면 거의 모든 대학의 체대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ㅡ~~]를 기록하며 은메달[* 금메달은 [[모모랜드]]의 [[데이지(모모랜드)|데이지.]] ]을 차지했다. 추가로 중학교 때도 멀리뛰기로 1등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챙람쥐 인증--
  • 임수정(탤런트) . . . . 3회 일치
         학창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앞에서는 아니고 뒤에서 놀았다(?)고 한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불량한 친구들과도 사귀었다고 한다.] 공부에 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데 그래서인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녀의 모교인 [[명덕여자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임수정에 대하여 "공부는 못하는데 아주 예뻤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예쁘지 않은 너희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동창생의 증언도 '''좀 놀 줄 알고 예쁘장한 애'''라는 것으로 선생님들의 말과 대동소이하다. 문제아는 아니고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보는 좀 노는 애 정도였던 듯.
         드라마 종영 후 [[안양시]]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팬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결국에는 안전 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무튼 2004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네티즌상,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2004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장화, 홍련》이 연기자 임수정을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대중적 스타인 임수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 임효성 . . . . 3회 일치
         상무에서 활동하던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유진를 만나게 된 후 가을부터 관계가 급격히 진전되었다고 하며, 실제로 임효성은 [[S.E.S]]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러니 관계가 안 좋을래야 안 좋아질 수가 없지....~~ 실제로 슈가 상무 경기가 있을 때 [[슈|유수영]]과 함께 임효성을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전종환 . . . . 3회 일치
         '''전종환'''([[1980년]] [[6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자 전(前) 기자이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를 졸업했으며, 2005년에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특히 MBC에선 대학 재학 중에 입사한 최초의 인물이다. 초창기에는 《[[불만제로]]》, 《[[우리말 나들이]]》같은 류의 TV방송에만 출연하였으나, 2009년 4월 13일부터 《[[뮤직스트리트 (MBC)|뮤직스트리트]]》의 진행자로 발탁되는 등, 라디오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2011년 5월 9일까지 진행을 맡고 하차했다.
         * 《[[불만제로]]》 (제로맨)
  • 전혜빈 . . . . 3회 일치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호감가는 모습으로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되며 2000년대 후반 긴 암흑기를 보내던 전혜빈에게 '''제2의 전성기'''가 열린 셈. 실제로 2013년에는 [[KBS 2TV]]에서 방영하는 미니시리즈 [[직장의 신]]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 중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인 [[금빛나]]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금)]] 역할을 맡아 빙썅연기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1화에서 박도경을 찾아가는 씬에서는 [[오해영(금)]]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능력의 결여, 애정결핍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뛰어난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해영 연기에 전혜빈이 영혼을 갈아넣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이 늘어나는 중.[* 그런데 극중 라이벌인 전혜빈과 [[서현진(배우)|서현진]]은 실제로 꽤 친한 사이다.]
  • 정인욱 . . . . 3회 일치
         그런데 시즌 후 허리 문제로 수술을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애초에 투수 전향이 늦었고, 삼성에서도 시즌 소화 이닝을 관리받던 차에 갑자기 늘어난 이닝을 버텨 내지 못한 것. 결국 고민 끝에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한다.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는 어깨도 안 좋았다고 한다.
         5월 8일 선발로 내정돼 1군에 올라왔으나[* 실제로는 며칠 전 1군에 합류한 상태였다.] 4이닝 6피안타 5실점을 기록하고 교체됐다. 1회부터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해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안타와 희생플라이 2개로 4점을 내줬다. 그나마 타선의 도움으로 패전투수는 면했는데, 1군에 올라오기 전인 5월 1일 상무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으로 그리 인상적인 투구 내용은 보여주지 못했던지라 애초에 이 날 경기에서도 호투할 가능성이 낮았다.
          * [[대구광역시|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에 오렌지 막창이라는 막창집이 있는데, 정인욱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막창집이다. 그래서 삼갤에서는 정인욱이 못할 때, 효도하게 가업이나 물러받아라, 막창이나 구우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정인욱 등판날 가게에 간 갤러가 정인욱이 여지없이 털리는 걸보고 [[아버지|사장님]]이 한숨 쉬는 걸 보았다는 증언도 들려온다. ~~[[백상원|모 선수]]를 엄청 욕했다는 증언도 들렸다.~~ ~~아버지는 2018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잘하자.(해가 바뀔 때마다 18이 19로 19가 20으로 바뀌겠지...)~~
  • 조응천 . . . . 3회 일치
         '''그리고 1년 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은 [[박근혜 게이트|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로 기소를 당했던 조응천 의원 본인도 나중에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인터넷상에서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대한민국 검찰청]]과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근무했던 50대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 [[https://www.facebook.com/chopros|페이스북]]과 [[https://twitter.com/chopros|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유머]]에 인증을 했는데 닉네임이 무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278460#memoWrapper75166001|뽀오통령]]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나온 출연 모습에서 [[뽀로로]]를 닮았다는 평이 꽤 올라왔고, 이게 본인에게도 마음에 들어서 정한 닉네임인 듯. 그리고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실제로 뽀로로 탈인형이 줄곧 등장했다. 그래서 나무위키에 '''뽀응천'''을 쳐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그렇다고 의정활동 안 하시고 노는 것만 제일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https://m.facebook.com/chopros/posts/pcb.1688422898123332/?photo_id=1688422108123411&mds=%2Fphotos%2Fviewer%2F%3Fphotoset_token%3Dpcb.1688422898123332%26photo%3D1688422108123411%26profileid%3D100007381444694%26source%3D48%26refid%3D28%26_ft_%3Dqid.6394930683270115473%253Amf_story_key.-4909687308524448939%253Atop_level_post_id.1688422898123332%26cached_data%3Dfalse%26ftid%3Du_9_3&mdf=1|이제 손녀까지 보셨단다(...)]] 실제로는 손녀가 아니라 아기[[고양이]]를 입양한 것이다.
  • 주현미 . . . . 3회 일치
         ||<table width=100%><-5><tablebordercolor=#ff2000><#FF2000><:> {{{+1 [[문화방송|[[파일:mbc.png|width=50]]]] ''' [[MBC 가요대제전|{{{#ffffff 가요대상}}}]] ''' {{{#ffffff ''' 대상 ''' }}} }}} ||
         그럼에도 역대급 보컬리스트를 논할 때 발라드나 알앤비 위주의, 소위 디바 스타일 가수들보다 비교적 언급이 적을 수도 있었는데 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낮은 시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현미는 락밴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클래식, 락, 알앤비,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저 트로트의 여왕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넘사벽급의 실력과 표현력을 가진 가수.'''
          * 의외로, 하현우와 친분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국카스텐을 추천한 이후, 그들의 매력에 빠졋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리더인 하현우는 따로 주현미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고 한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3회 일치
          크루거의 아버지는 대륙에 잔류한 왕가의 잔당이었다. 그들은 혁명군을 구성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마레 당국에 의해 암살되었다. 아버지가 혁명군에 속했던 크루거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한 군데서 불살라질 때, 어린 그는 찬장 속에 숨어 문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무서워하면서. 집이 거의 다 탔을 때 아버지의 동료가 구하러 왔고, 크루거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레에 대한 복수와 엘디아의 복권을 맹세했다. 그런 그가 실제로 하게 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동포의 손가락을 자르고 가죽을 벗기며 이곳에서 떨어뜨려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걸 철저히 수행한 결과 오늘날까지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적국을 위해 강제로 아이를 낳는 삶이 나았을까?
          >실제로 사람을 먹는 괴물로 변하는 것 중 무엇이 낫냐고 디아나에게 물어본 건 아니다만.
  • 차르 . . . . 3회 일치
          슬라브인들의 자신들의 [[제왕]]을 부를때 칭하는 말. 보통 황제로 번역된다. 짜르라고도 부른다.
         이 칭호는 드물게 외국의 군주에도 수여되었으며, 슬라브어를 따라서 '차르'라고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시메온 대제가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해당 칭호를 받은게 그 시초다. 이후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해당 칭호를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대공이 해당 칭호를 썼다.[* 그리고 이게 가장 유명하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군주의 칭호를 그냥 서구식의 황제칭호인 임페라토르로 바꿨지만[* 여성의 경우엔 임페라트리자] 전부 그냥 차르라 불렀다(...).
  • 최재성(배우) . . . . 3회 일치
         [[박중훈]]보다는 2살이 많은데 최재성이 그냥 쿨하게 친구로 지냈다. 그렇게 박중훈과 평생 친구로 계속 가게 되자 박중훈은 자기보다 최재성의 나이가 더 많은데도 40살이 넘어가도록 친구로 대해줘서 그걸 엄청나게 고마워했다.[* 박중훈이 실제로 66년 3월 생이나 생일과 나이를 올려 빠른 65년 생으로 속여 친구로 지낸 것인데 사실이 탄로났지만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기에 이왕 이리된 거 그냥 쿨하게 무시하고 친구로 계속 지내자고 했던 것.]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남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절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참고로 연예계에서 몇 안되는 전주고등학교 출신 인물이다. 다녔던 강남사회복지대(현 [[강남대학교]])는 전혀 이름이 없다가 최재성 덕에 유명해져서, 교정에 최재성 동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거 없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3회 일치
          * 라케이드는 덤비는 유키노에게 강제로 쾌락을 주입해서 제압하는데 그때 카구라가 나타나 유키노를 구한다.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영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백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그럼 결국 동정 캐릭터가 하드 카운터가 아니냐는 설이 나오지만 유키노처럼 강제로 쾌락을 느끼게 해서 발동하면 되므로 거의 무적이나 다름 없는 마법--사실상 동인계 제패를 위한 마시마의 포석--
  • 페어리 테일/516화 . . . . 3회 일치
          * 엘자는 자신이 편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외치고 웬디에게 신호를 준다. 웬디는 신체 강화마법 "데우스 에퀘스"로 엘자의 힘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인챈트라면 아이린의 전문분야다. 아이린은 곧 데우스 제로로 데우스 에퀘스의 효과를 상쇄하는데 웬디도 지지 않고 같은 데우스 제로로 아이린이 건 데우스 제로를 제거한다. 아이린은 웬디가 그정도로 고도의 인챈트 마법을 사용하는걸 보고 내심 놀란다. 하지만 그때 엘자의 공격이 덮쳐온다. 그걸 보고도 히죽 웃는 아이린.
  • 허드슨 대학교 . . . . 3회 일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대학'''. 미국 창작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왠지 실제로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 현아 . . . . 3회 일치
         '''현아'''({{본명|김현아}}, 金泫雅<ref>[http://tw.weibo.com/5729740541 현아 웨이보]</ref>, [[1992년]] [[6월 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9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재학 중 [[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되었고 약 4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의 싱글 〈[[The Wonder Begins]]〉로 데뷔했다. 그러나 같은 해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탈퇴를 했다.<ref name="as"/>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 황교안 . . . . 3회 일치
         이석기 사건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違憲)정당해산심판’ 청구에서도 황교안 장관은 정부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은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40129/60468708/1 '통진당 해산심판 첫 변론“대한민국 파괴"vs"민주주의 후퇴“ 장관 - 당 대표 맞붙다]《동아일보》2014년 1월 29일 최예나 기자</ref> 황교안 장관은 2014년 11월 25일에 있었던 최종변론에도 직접 출석하여 "통진당의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 역시 용공 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는것"이라며 정당해산을 거듭 촉구했다.<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26421&cloc=olink|article|default 황교안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 무너뜨린다]《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박민제·이유정 기자</ref><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23857&cloc=olink|article|default 통진당 해산심판 최종변론 - 황교안 법무부장관]《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심서현 기자</ref>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결정을 하였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121901070121079001 통진당, 북한식 공산주의 추종”…‘헌정 초유’ 해산 선고. 헌재, 8대1로…소속 5명 모두 의원직 박탈]《문화일보》2014년 12월 19일 김병채·김동하 기자</ref>
         2018년 8월, 자신의 수필집인 <황교안의 답>을 출판했다. 부제는 '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8211628001|제목=황교안에게 ‘참된 보수’란···수필집 ‘황교안의 답’ 출간|성=|이름=|날짜=2018-08-21|뉴스=|출판사=}}</ref> 9월에는 서울 양재동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박근혜 정부 당시 관료들 여러 명이 참석하였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개혁지향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며 "민생 지향과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두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정부의 모든 노력이 소위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쓸려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도 말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61204.html|제목=황교안 ‘보수 지지 1위’라는 질문에 “많은 의견 듣고 있다”|날짜=2018-09-07}}</ref>
         2013년 2월 28일 장관청문회 당시 황교안은 "후보자가 보관하고 있던 업무자료나 기억 등을 토대로 검토하여 본바 법무법인 재직기간 중에 팀 소속 변호사를 총괄 지휘하면서 변론계획 수립, 법리 검토, 의견서 작성 제출 등으로 담당한 사건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사건 54건, 민사, 상사, 가사, 행정사건 47건, 합계 101건, 그 외에도 수시로 법률자문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라는 서면 답변 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기억에 의존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답변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Crusader Kings 2/DLC . . . . 2회 일치
         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었던 카롤루스 대제를 중심으로 한 DLC.
         769년 시작하는 시나리오인 "샤를마뉴"가 추가되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카롤루스 대제로 시작하면 특수한 스토리 이벤트가 제공된다. 또한 플레이어가 자체적으로 제국을 만들 수 있는 기능 역시 추가되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2회 일치
          독일의 철광석 수입줄을 막기 위해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디시전.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보급품 300을 소모하며 미국과 소련에게 큰 어그로를 끌게된다. 간섭주의로 슬라이더가 한칸 이동하며 국민들의 거부감으로 불만도가 10% 증가한다. 이 디시전을 발동시킨 후 나르비크, 베르겐, 트론헤임을 점령할 경우 노르웨이를 강제로 아군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이런 이유로 팬들에게 강등은 우승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전은 한시적으로나마 [[슈퍼매치]]를 뛰어넘는 라이벌전이 탄생하게 된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2회 일치
         2015시즌 양 팀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영광은 전후반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사건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의견으로 사건 자체가 여혐사건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사건 자체는 여혐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이 여혐적인 사회인가, 혹은 여성범죄에 취약한 사회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일부 통계에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이라는 결과도 있는 반면, 통계를 왜곡했고 실질적으로는 의미있는 성차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 강영식 . . . . 2회 일치
         6월에 이르도록 불안불안한 투구내용을 이어갔는데, 팬들은 3억 연봉을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나눠주라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6월 중순이 넘어가자 불안하긴 해도 꾸역꾸역 막는 쪽으로 상태가 좋아졌다.6월 SK전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 [[용덕한]][* 박기혁, 강영식, 용덕한은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다. 이날 경기 전 강영식은 용덕한에게 '내 공을 받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잘 던져 용덕한이 경기 후 공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아져 놀랐다고 대답했다.] 과 호흡을 맞추어 2이닝동안 깔끔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이 오기는 온 모양.
         뱀발로 롯갤에서는 강영식이 부산저축은행에 연봉을 저축했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다면 [[예금자 보호|연봉 3억이 아닌 연봉 5천만 원을 받고 뛴 것이 된다.]] 물론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 고소영 . . . . 2회 일치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반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순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 톱스타 미남미녀배우끼리의 결혼과 도도한 미녀 페이스가 [[비비안 리]]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등장인물 스칼렛 오하라의 스타일을 그대로 연출한 컨셉의 화보도 찍은 적 있다.
  • 권혁 . . . . 2회 일치
         덕분에 실제로도 [[선동열]] 감독도 2010 포스트시즌에 그런 그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 마운드에 [[김성근]] 감독이 올라갈 때 유독 스킨십이 잦은 투수. 감독의 말에 따르면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18367|투구를 한 후 '''더그아웃에 있는 감독을 자주 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중계 화면을 자세히 보면 다른 투수들보다 자주 더그아웃 쪽을 힐끔거리며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2회 일치
         통상적으로 [[코러스]]라고 불리는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실제 앨범에는 "백그라운드 보컬"이라고 표기된다.] 실제로 [[http://www.fkmp.kr/|한국실연자협회]]에 금조가 참여한 곡을 검색하면 실연정보에 '''<부실연 : 금조 [BACKGROUND VOCAL]>''' 이라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참여해온 활동인데 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중. --참여한 곡들만 모아도 이미 정규앨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영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영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상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상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태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영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영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영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김강민 . . . . 2회 일치
         || '''응원가''' || 등장곡: 러브홀릭스 - Butterfly [br] 타격시: ~~[[더 킬러스]] - Spaceman[* 와!이!번스 김강민 안타! 날려라 날려버려라~x4]~~ [br] ~~[[EXO]] -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김!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강!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민! 야!수!강!민!x2]~~[* Spaceman과 으르렁 둘 다 저작권 문제로 2017시즌부터 사용하지 못한다] [br] [[O Sole Mio]][*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안타 김강민~ 오오오오~ 김강민~ 오오오오~ 짐승 강민~ 오 김강민~] ||
         하지만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은 타자인데다 도루 갯수도 10개 언저리에서 형성되곤 하는 타자이고 장타력을 생각한다면 1번 타자보다는 6번 타자가 낫지 않냐는 의견도 많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2014년 오프시즌 연습경기를 보면 거의 1번 타자로 출전하고 있어 시즌 중에도 1번 타자 보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연습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고 있기도 하고.
  • 김동명(가수) . . . . 2회 일치
         누리꾼들에게 가왕급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그가 예선전에서 가면을 벗게 되자 당시 누리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http://www.mbcplus.com/mpluszine/RetrieveNewsInfo.aspx?newsType=1&newsID=285774 |2016.02.21MBCplus]], 김동명의 상대가 다음 회차(48회) 복면가왕에서 실제로 '[[She's Gone]]'을 부른 대한민국 한정 레전드급 [[과묵한 번개맨|팝가수]]와 그의 언어인 팝으로 대결했다는 것 자체가 공평하지 않았다고 이슈가 되었고, 김동명의 '비의 랩소디'는 주요 음원 차트에서 순위권에 있었다.
         실제로 시원한 호감과 귀염성이 공존하는 상남자 스타일로, 조용하고 귀여운 말투와 달리 무대 위 노래할 땐 카리스마로 반전하는데 선배가수 김창렬씨가 진행하는 '김창렬의 올드스쿨(2016.1.29)'에서 [[https://youtu.be/iM-lwEC_jB0 | '사랑할수록']]을 들은 후 '김동명씨 얼굴은 많이 귀엽게 생겼는데, 노래 부를 땐 짐승같다'고 반전스러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 김동한(가수) . . . . 2회 일치
          * 댄스팀 시절 안무 커버를 위해 영상을 찾아보며 남자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데 아직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2017멜론뮤직어워드에서 드디어 이루어졌다.[* 댄스팀 시절 커버 영상을 찾아보면 방탄소년단 곡의 비중이 많다. ] Fantasy 활동 중 [[태민]] 선배님을 실제로 보게 되어서 좋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김미숙(1959) . . . . 2회 일치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 김민희(1982) . . . . 2회 일치
         물론, 가요계를 포함한 대중문화계 전체에서는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수들에 의해 이미 96년에 아이돌 문화가 시작된 상태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이돌 문화를 주도한 것은 가요계였지만, 당시 이들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이 혼재된 형태였으며 시기적으로도 엄연한 1990년대라 이후 등장한 (비가요계의) 아이돌과 세부적으로는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팬층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배우나 모델들처럼 10~20대를 상대로 어필을 하던 아이돌로 봐도 부족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의 [[간통]]은 영화계에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고, [[홍상수]] 감독의 지인들이나 다른 [[영화 감독]]들이나 영화 [[제작자]]들과 [[배우]]들까지, 여러 연예업계 종사자들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http://me2.do/5VnEezht|#]] 영화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내용이었지만 기사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http://me2.do/GsSnT8ET|홍상수 김민희 불륜설 비하인드 (뉴스엔 윤가이 기자)]]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가 [[칸 영화제]]로 진출할 때까지, 해당 영화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암암리에 아는 기자들에게 "영화에 흠이 되지 않게끔,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실명을 언급하지 않은 기사가 6월 1일자로 보도된 바 있다.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065#074z|#]] ~~실명 대신 제목으로..~~
  • 김영인(탤런트) . . . . 2회 일치
         여담으로 일본의 배우 나카다 히로히사(中田博久)[* [[초전자 바이오맨]]의 [[메이슨(초전자 바이오맨)|메이슨]]과 [[가면라이더 아마존]]의 [[제로 대제]]를 연기함.]와 비슷하게 생기셨다. [[https://www.google.co.jp/search?q=%E4%B8%AD%E7%94%B0%E5%8D%9A%E4%B9%85&newwindow=1&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jCoaa4wL7ZAhUM5rwKHSmsCbwQ_AUICigB&biw=1267&bih=947|#]]
  • 김재박 . . . . 2회 일치
          * 1998년 8월 26일,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가 치열하게 홈런경쟁을 펼칠 때[*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 현대가 삼성에 크게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걸렀고 경기장에는 빈병이 날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에서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 1루주자였던 [[양준혁]]이 도루를 성공하자 보복성으로 고의사구를 던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2800329126008&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28&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524&publishType=00010|<스포츠 기자석> 팬들을 죽이는 프로야구]]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2580212|[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 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당시 [[허구연]]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90200209126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9-02&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976&publishType=00010|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1998년 5월 14일 해태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이미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는데 11타자 연속 삼진 막는다고 얻을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 김처선 . . . . 2회 일치
         연산군은 이로 인하여 화를 내곤 했지만 김처선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언제나 쉽게 용서해주곤 하였다. 실제로 실록에 김처선이 죄를 지어 연산군의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하루 만에 그를 복직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연산군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었던 모양.
         [[SBS]]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보를 다룬 1화 광풍에 등장한다. 월산 대군의 처 박씨와 강제로 동침한 연산군을 보고 연산군을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직언 하다 가슴에 화살을 맞는다. 칼을 빼든 연산군이 남자 구실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다며 분노하자 소인 남자 구실 못하는거 생각말고 임금 구실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 김충섭 . . . . 2회 일치
         공직을 퇴직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김천시장에 출마하게된다. 김천시장직은 박보생 시장이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TK지역 여당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바라며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 여러 문제로 공천 잡음 들이 생겨나게된다. 이러한 문제 들로 인해 이에 불복한 [[최대원|시장 후보 중 한명]]은 아예 탈당하고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 공천 문제로 분열된 자유한국당은 원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더불어 민주당|친여 세력]]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진보층 세력까지 흡수한 김충섭 후보에게 시장직을 내주고 [[이철우(1955)|전직 의원]]이 경북도지사 후보로 영전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격인 [[송언석]] 후보는 최대원 후보에게 1%정도 차이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보이며 국회의원직도 겨우 당선되는 등 옆동네인 구미와 함께 자유한국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 김혜옥 . . . . 2회 일치
         * [[2007년]] [[MBC]] 2부작드라마 《[[그라운드 제로 (드라마)|그라운드 제로]]》 ... 유진 모 역
  • 까마귀 . . . . 2회 일치
         검은 [[비둘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둘기]]보다 몸집이 크다. 실제로 보면 상당히 위협적.
         서양 문화에서는 왠지 [[죽음]]의 상징 같은 취급,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실제로 약간 무섭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2회 일치
          게다가 말로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 능력으로 사물을 통과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가령 벽을 통과한다고 하면 한쪽 발을 제외한 전신에 개성을 발동해서 벽을 통과하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간 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개성을 유지하면서 마저 빠져나온다. 세세한 컨트롤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엔 매우 까다롭다. [[카미나리 덴키]]는 자신도 실전에선 자꾸 실수를 한다고 공감하고 [[미네타 미노루]]는 아무 것도 못 느끼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얘기지만, 대련을 거치고 나서 들어보니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미도리야는 그가 알려준 교훈을 무겁게 생각한다. 실전에서 응용하게 어려운 디메리트가 있더라도 "갖고 있는 힘을 살린다"는 원칙. 그리고 그걸 경험과 예측으로 실제로 바꾼다. 미도리야는 설명을 마치고 떠나는 밀리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강한 사람이 톱을 따는게 아니라 "노력하는 자"가 톱을 딴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2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매우 엄격하고 사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기운과 유머가 없는 세계엔 미래가 없다"고 여기는, 유머 애호가.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히어로 인턴 제도"에 1학년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회의 결과를 알려준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교장 [[네즈]]부터가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애초에 완전 기숙사제로 전환한 이유 자체가 "히어로 학생들을 육성기간 동안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인턴제도에 투입하는건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2회 일치
          * 그러더니 쿠로기리의 개성을 "강제로 발동"시킨다.
          * 개성을 빼앗는다는건 짐작되던 부분이지만, 합성하고 강제로 발동시키는 등, 개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등장했다.
  • 대한민국 FA컵 . . . . 2회 일치
         본선부터는 32강체제로 가게되며, 32강부터는 최상위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 속한 팀들이 참여한다. 이 때문에 본선은 32강을 짤 때, 1부리그에 속한 팀이 몇개냐에 따라서 한동안 예선 라운드가 제법 복잡했던 역사가 있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2회 일치
         기본적인 조작은 4버튼+1버튼. 공격(A), 점프(J), 선택(S), 사용(U)에다가 3~4인플레이시 장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스타트버튼까지 필요하다. 간혹 일부 오락실에서는 기기의 문제로 4버튼밖에 없는 경우엔 점프나 선택버튼을 스타트버튼과 같이 연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커맨드 입력기술이 [[천지를 먹다]]와 마찬가지로 캡콤 커맨드로 바뀌었다. TOD에서는 돌진기의 경우 ↓J, A+J를 해야 하는 등 조작성이 과거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게임보다 복잡할 뿐더러 빠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돌진기는 ↓↘→A, 대공커맨드는 ↓↑A 등으로 상당부분 변경점이 있었다. 또한 발악기(A+J)가 도입되었으며, 아무런 아이템이 없을 때 사용하던 효율성 제로로 평가받은 기술들은 삭제되었다.
  • 떠있는 섬 . . . . 2회 일치
         현실에서 물 위에 떠있는 섬은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이 뭉쳐서 떠다니는 것이다. 위에 풀이 자라서 언듯 보기에는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지반이 연약하여 땅과는 다르다.
  • 리그컵(K리그) . . . . 2회 일치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백룡은 자신의 황제로서 힘을 누님 홍옥에게 넘겼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은 패배한 황제지만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재건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실제로 백룡은 현실에서도 홍옥에게 황제자리를 넘기고 홍옥은 그 힘을 바탕으로 황제국을 되살렸으니 그다운 선택이다.
  • 마기/349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가 내놓은 해결책에 누구보다 감탄한 것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였다. 그가 이곳에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비롯한 네 사람을 부른건 진정으로 신에 어울리는 자가 누구인지 가리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이기는 것이 "운명"에 선택 받은 존재일 거라는 전제로.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가 생각도 못했던 제 3의 길을 발굴했다. 신드바드는 그걸 "어중간한 타협책"이라 부르면서도 그의 의향에 휘말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이제 성궁의 싸움은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너희는 어째서 바깥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얘기를 하는 거지?
  • 마니교 . . . . 2회 일치
         [[보고밀파]], [[카타리파]] 같은, 이원론적 성향을 가진 이단 종파 역시 마니교의 재래로 보고 탄압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종파가 실제로 마니교의 계승인지, 단순히 공통점이 있을 뿐인지는 불확실하다.
         기록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소그디니아에서 마니교가 번창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교나 불교에 비해서 유물은 많이 나오지 않아 지배 종교가 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Candy Dawn. 펀치넬로 패밀리의 매춘부. 고객과의 행위를 비밀리에 찍어 최고입찰자에게 파는걸 부업삼아 하고있다. 실제로 캔디 돈 방의 옷장을 열면 카메라가 숨겨진 방이 나온다. 바에서 무에르테에게 펠라치오를 해주던 중, 바에 들어온 맥스를 보고 맞서 싸우지만 맥스에게 죽는다. 맥스가 들어오기 전 무에르테의 살인 자랑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네임드인지라 체력이 높은 편. 주 무장은 듀얼 베레타.
          Michelle Payne. 맥스 페인의 아내.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집에 쳐들어 온 발키리 중독자들에 의해 사망. 나중에 니콜 혼이 중독자들을 고의적으로 풀어놓았음이 밝혀진다.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발키리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것.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2회 일치
         청소부는 맥스를 데리고 가 셔터를 올려 주지만, 맥스가 셔터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동료와 함께 공격해온다. 맥스는 이들을 처리하고 청소부들을 죽이면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는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라는 자가 차를 대기해놓고 있으니 모든 증거를 처리해야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총기 작업장 입구에 있는 총기 보관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난 전에도 이렇게 된 적이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
  • 무라하치부 . . . . 2회 일치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영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반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 문근영 . . . . 2회 일치
         [[바람의 화원]]을 시작할 때 즈음 갑자기 심하게 야윈 모습을 보여서 [[거식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에반게리온]] 수준으로 말라서 뼈만 보이는 등, 대충 보기에도 심각한 저체중이라는 것이 보일 정도. 게다가 아랫턱 침샘부위가 유독 심하게 부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거식증]] 환자들이 폭식한 다음에 손가락을 입에 넣어 죄다 토해내는 행위를 하다보면 침샘이 심하게 부어서 이중턱이 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이 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 2015년 1박 2일 여자사람친구 특집에서 김주혁의 지인으로 출연했다. 실제로 둘이 같은 소속사이다. 원조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와는 달리 털털한 모습과 승부욕으로 분량 확보.
  • 문창진 . . . . 2회 일치
         다만 올대에서의 활약과 달리 포항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편인데 일단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해버리고, 5월까지 조수철이 복귀하지 못하다 보니 사실상 공미자원은 문창진 혼자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무리 문창진이 지난 시즌보다 실력이 좋아지고 올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험하기로 소문난(...) 포항의 중원을 손준호와 같은 믿을만한 미드필더의 지원없이 혼자 맡기는 건 무리였고, 실제로도 최진철이 그나마 남은 포항의 다른 미드필더 자원들을 가지고 조합을 해보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최진철이 전술 자체라 3-4-3으로 바꾸면서 기존의 4-2-3-1 스타일에 맞춰져 있던 문창진의 자리가 붕 떠버린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포항에서의 출전 기회마저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이런 와중에도 중간중간 불려나가는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2016 리우 올림픽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냥 포함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문창진이 없으면 올림픽 팀 중원 자체가 안 돌아갈 정도로(...) 핵심 자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진철도 3-4-3에서 해법을 찾아내었는데 그냥 '''원래''' 자리였던 측면 2선자원으로 문창진을 돌려버리면서 중원을 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양동현, 심동운과 호흡을 맞춰가며 다시 공격력이 살아나는가 했으나...리우 올림픽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점들을 모두 드러내며 아시아를 벗어난 세계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지지 못했고, 포항 복귀 이후에도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이후 부상과 [[피지컬]] 문제로 고생하다가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각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8월 동아시아 대회에 젊은선수들과 올림픽 대표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선발이 유력해 보였지만, 부상 때문에[* 올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갈비뼈 부상을 입고 귀국했다.] 예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원 소년가장 [[권창훈|빵훈이]]가 슈틸리케호에서 날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김승대|소속팀]] [[신화용|선배들처럼]] [[손준호|벌써부터]] [[이명주|국대 운이 안 좋다.]]
  • 박경림(MC) . . . . 2회 일치
          * 박수홍이랑 너무 친해서 저 둘 사귀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스캔들도 났었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2005년에 KBS <좋은사람 소개시켜줘>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도 그럴듯이 현재 KBS예능 CP인 당시 한경천PD도 출연자와 결혼을 했다.
          *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민방위 훈련으로 인해 [[두시의 데이트]]가 14시 20분에 시작하자 오프닝에서 "민방위 훈련 때문에 늦어진 20분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느냐"라는 발언을 해 뭇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오프닝 멘트 후 청취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취자와 20분 늦게 만나는 마음이 아쉬워서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까 하다가 많은 분을 속상하게 한 것 같다. 오프닝에서 표현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나 지금도 희생하고 있으신 분들을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해 드린 것 같아 생방송 중 사과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드리겠다” 며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된 경솔했던 발언에 대해 즉시 방송에서 사과했다.[* 아버지 역시 상이군경임을 밝혀 불손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었단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 위원회는 해당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695&yy=2014#axzz3Ba6cD9TR|기사]] 게다가 하필이면 "남성만 병역 합헌"문제로 넷상에서 군대관련 문제가 좀 예민할 때라...--안 될지도--
  • 박녹주 . . . . 2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 박화요비 . . . . 2회 일치
         그녀의 연이은 예능 출연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변화시켰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실제로 (박)'화요비'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웃기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늘은 것을 보면 예능의 파급력, 나아가 미디어의 영향력은 방기할 수준이 아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팝을 잘 소화하는 가수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고 팝 표현력과 완창 능력이 출중해 가끔은 본인 노래 라이브보다 팝을 더 잘 소화하기도. 어느 팝을 불러도 기본 중박은 한다.
  • 보에몽 1세 . . . . 2회 일치
         물론 그가 아버지가 못다한걸 이루겠다는 야심을 버린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행동은 원정을 요청했던 알렉시오스에게 인정을 받아 십자군의 '종교적' 지도자였던 아데마르 주교와 배치되는 '세속적'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시오스에게 제국의 아나톨리아군 총사령관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2회 일치
         [[2016년]] [[2월 15일]], [[하테나 익명 다이어리]]에 올라온 익명의 게시물에 대하여 [[일본]] 사회에서 보육문제로 논란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2016년 3월 전후의 게시물에 '일본 죽어!'라는 글이 보이면 대체로 이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월 29일에는 일본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桜里) 민주당 의원이 이 블로그에 대해서 거론했으나, [[아베 신조]] 총리는 "익명인 이상 실제로 진실인지, 내가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의원석에서는 "누가 (블로그에) 쓴거야", "(질문자는) 제대로 (쓴) 본인을 내놔."라는 야유가 날아왔다고 한다.
  • 북두삼형제 . . . . 2회 일치
         [[류우켄]]의 제자이자 양자로서, 주인공 [[켄시로]]와 그 형제들. [[북두신권]]을 쓰며 북두신권의 전승자 후보로 올랐던 [[토키(북두의 권)|토키]]와 [[라오우]]를 뜻하는 말이다. 분명히 또 다른 형제로서 '''[[쟈기]]가 있는데 무시당한다.'''
         여담으로 사실 원작에서는 켄시로, 토키, 라오우가 셋이서 모여서 등장하는 장면은 라오우와의 첫 대결에서 사우저 편, 토키의 최후편에 걸쳐서 비교적 길게 있고 명장면도 많지만, 쟈기는 [[아미바]] 전 이전에 나왔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작에서 3명이 모인 적은 있어도 쟈기까지 합쳐서 4명이 모인 적은 없다. 회상씬에서도 쟈기와 켄시로, 쟈기와 토키, 라오우가 만나는 장면은 있지만 4명이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쟈기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구TV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회상씬, 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유리아 전, 외전 코믹스인 쟈기 외전이나 류우켄 외전에 있다.
  • 북유럽 신화 . . . . 2회 일치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영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순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 궁그닐 : 오딘이 쓰는 [[창]].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오딘이 이 창을 던지면서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수수께끼의 무기. 거의 실적도 없는 주제에 창 계통이 무기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대중문화에서 최강의 창으로 우대받는 불합리를 보여준다.
  • . . . . 2회 일치
          * --심청환드세요. (청심환드세요)--[* 네이버 브이앱을 통해 방송된 김태형의 고민 상담소에서 나온 말인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44405&cid=51000&categoryId=51000|심청환]]이라는 한약이 실제로 있다. 효능도 비슷하다. 결론은 태태어가 아님.]
          * [[방탄소년단]]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공개되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데뷔를 한참 앞두고 공개가 되었었는데 혼자만 데뷔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았었다. 어린 나이 + 잘생긴 얼굴 + 좋은 목소리를 가진 탓에, 타 연예 기획사에서 채갈까 봐두려워 마지막까지 공개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생긴 별명이 '뷔밀병기'이다.] 이게 어지간히 답답하고 서러웠는지 첫 로그에서 본인이 계속 방탄소년단과 함께 해왔음을 어필했다. [[크리스마스]] 때도, [[RM]]의 졸업식 때도, 심지어 단체 로그찍을 때도 같이 있었다고.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의 [[중학교]] 졸업식 때는 숙소에서 잤다고 한다. 그리고 혼자 “2013년 몇 월 며칠, 오늘은 뭐했다, 이거 공개 안되겠지? 슬프다.”는 식으로 로그를 찍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로그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안습]]-- 마침내 자신이 방탄소년단 멤버로 공개됐을 때 팬으로부터 편지를 딱 한 통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새벽 4시까지 안 자고 열다섯 번 정도 읽으면서 멤버들에게 자랑을 --좀 많이-- 했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2회 일치
          * 젤은 실제로 죽은 파나와 증오의 파나가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튕겨낸 샐러맨더의 마법탄이 [[라드로스]]에게 클린 히트. 너덜너덜해진 라드로스느 숲으로 추락한다. [[판젤 크루거]]는 그의 마력이 사라지는걸 느낀다. 아스타는 어리둥절해하며 무슨 일이냐고 소리친다. 젤은 설명보다도 아스타가 전보다 강해졌다고 칭찬을 한다. 아스타는 잠시 우쭐하지만 곧 화제로 돌아와 옆에 있는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적인데 왜 같이 있냐고 따진다.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2회 일치
          정신 능력, 에너지, 방어력 등. 거구의 남성 모습이자 실제로는 젊은 여성이다. JLA #26 (February 1, 1999)에 첫등장.
          * 해머슈트 제로-X(Hammersuit Zero-X)
  • 산킨고타이 . . . . 2회 일치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상 단순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서거정 . . . . 2회 일치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고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이 되었으며 [[1466년]] 발영시에 또 장원,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등을 두루 거쳐서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달성군(達城郡)에 봉해졌다.
  • 스트라테고스 . . . . 2회 일치
         결국 제국 말기에는 마기스테르 밀리툼과 황제의 권력관계가 역전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리키메르는 거꾸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마음대로 죽이고 폐위를 반복하며 농락하였다. 서로마 최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훈 족]]의 [[왕]] [[아틸라]]를 따르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로서, 그는 자신을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임명한 [[율리우스 네포스]] 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삼았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여 사망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서로마 제국은 소멸한다. 이로서 서로마의 마기스테르 밀레툼 역시 사라지게 된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지방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지방 방위에 필수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가장 큰 위협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야심만만했던 스트라테고스들이 황위찬탈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적이 잦았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왜 이런 시기에 "연어"를 과제로 했을지 의문시한다.
          * 쿠로키바도 겨울철엔 연어의 질이 떨어지는 시기인데 굳이 과제로 삼은 점은 이상하다고 의심한다.
  • 식극의 소마/219화 . . . . 2회 일치
          * 쿠가와 츠카사의 대결 주제는 "녹차". 찻잎을 이용한 요리다. 찻잎을 주제로 한 요리는 낯선 주제로 특히 쿠가와 츠카사의 전공 분야와는 아주 무관하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2회 일치
          * 반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 에이잔이 그렇게 장담한 이유는 자신의 크림소스 때문이다. 에이잔은 모든 공정을 끝낸 뒤, 방금 전 시점에 한 가지 재료를 추가했다. 아티초크. 특별할건 없는 재료다. 여기에 에이잔이 설명을 더한다. 그가 노린 것은 아티초크에 들어있는 "시나린". 쓴맛을 내는 성분인데 사람의 미각을 저하해 맛을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초크를 먹은 뒤에 다른 음식을 먹으면 정상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관중들 중에선 정말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키리 아리스]]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아티초크를 디저트 전에 내서 디저트의 단맛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2회 일치
         이 단어는 제도정치권의 보수 정당들과, 재야 정치단체의 차별화를 노리고 나타났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들은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과 타협하고 투쟁정신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이들을 '웰빙 보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아스팔트 우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제도권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우파'를 자칭하는 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조직되고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안에 따라서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시위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정계의 압박에 따라서 [[전경련]] 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이면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지원과 지시를 받고 있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656.html (참조)]]
  • 안기효 . . . . 2회 일치
         현재 배틀그라운드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1부 2부로 나누어 방송하고 있으며 석궁만으로 2등을 하고 불과 4일차 만에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며 싸움을 회피하는 메이웨더 아웃복싱같은 게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무분별한 전투 배그보다 실제로 저 상황에 떨어져 있을때 나올법한 두려움과 신중함(실제로 온갖 화기로 중무장한 생면부지의 아흔몇명의 사람들과 외딴섬에 떨어져 한사람만 생존 가능하다고 할때 생존하기 위해 가질 당연한 소심함)으로 숨을 죽이는 멘트와 함께 시청자들의 큰 호응과 공감을 얻는 듯 보인다.
  • 앙주 제국 . . . . 2회 일치
         앙주 제국은 잉글랜드 왕령과 프랑스 내의 여러 공작령, 백작령이 상속과 혼인을 통하여 [[동군연합]]을 이룬 것으로서, 각 지역의 통치체계는 상당히 달랐고 한 명의 군주 아래 동군연합일 뿐, 실제로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고 '제국'이기는 커녕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앙주 제국은 한 명의 군주 아래에서 통치되었으나, 각 영토의 정치나 행정은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양상은 지방에 따라서 여러모로 다르게 나타났다. 군주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높고 대표적인 지위는 '잉글랜드 왕'이었지만, 실제로 왕실에는 문화적으로 영국화된 측면은 거의 없어 여러모로 '잉글랜드 왕'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귀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앙주 제국의 군주들은 왕실 용어로서 [[프랑스어]]를 썻으며, 통치시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프랑스]]에 주로 머물렀고, [[영국]]을 방문한 기간은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 에스쿱스 . . . . 2회 일치
         당시 '만세''는 [[학원물]] 컨셉으로 방향을 잡아 기획한 곡으로 멤버 전원이 [[가쿠란]]이나 한국식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소년 같은 모습의 멤버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성인 남자다운 매력을 발산하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후일 프로듀서 [[BUMZU]]의 인터뷰에서 '만세''를 작업할 때 실제로 [[에스쿱스]]의 이미지를 많이 참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 만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실제로 중압감을 버티지 못한 [[에스쿱스]]가 어느 날 멤버들 앞에서 모든 걸 털어 놓으며 눈물을 흘려 멤버들이 그를 다독였다는 일화도 있으며 이 일이 있은 후로는 본인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이 어느 정도인지 깨우쳐 가고 있는 듯 하다. [[세븐틴(아이돌)/퍼포먼스팀|퍼포먼스팀]] 리더 [[호시(세븐틴)|호시]]는 [[2017년]]에 개최된 첫 번째 팬미팅에서 [[에스쿱스]]의 롤링페이퍼에 [[https://youtu.be/umM5r03ACWs?t=16m10s|"흔들리면 잡아줄게.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적어 강한 신뢰감과 동지애를 표현하기도 했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2회 일치
         문제는 애초에 이것이 창작설정이라는 점에 있다. 만일 비슷한 체계가 실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게 창작설정과 100%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지금 이 현실의 체계가 100% 공산주의 체계가 맞는가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인증'해줄 카를 마르크스가 죽어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히 비슷한 사회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때 쯤에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 요시다 세이지 . . . . 2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으며, 1977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1983년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의 마을 등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1982년 9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900년대 아시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 '요시다 증언'에는 의혹도 뒤따르게 되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태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 원피스/859화 . . . . 2회 일치
          * [[카포네 갱 벳지]]는 어떤 조건 하에서 단 5초만 있으면 빅맘을 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승산은 제로".
          [[쵸파]]가 겨우 5초냐며 놀란다. 괴총 비트물론 물론 그 5초를 만들기가 힘들고 장성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저지당할 거라고 부연한다. 하지만 벳지는 그렇게 되면 전투 뿐이고 승산은 "제로"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웃는걸 보면 그 5초를 정말 만들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 원피스/871화 . . . . 2회 일치
          * 루 펠드를 저격한 것은 환락가의 여왕 스튜시. 그녀의 진짜 정체는 스튜시의 진짜 정체는 세계정부의 첩보기관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 옥갑을 빼돌리려고 했던 루 펠드는 난감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성 밑으로 옥갑을 떨어뜨려 버린 것. 다행히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옥상 바로 밑의 넓은 지붕 부분. 그 처마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다. 루 펠드는 저걸 어찌해야 좋을까 고민한다. 뛰어내려야 좋을까? 그 고민은 환락가의 여왕 스튜시가 해결해준다. 그녀가 불쑥 튀어나오자 당황한 루 펠드가 중심을 잃고 난간 너머로 떨어진다. 그도 마침 지붕 부분으로, 딱 옥갑 앞에 떨어진다. 루 펠드가 잘 됐다치고 옥갑을 열어보려 하는데, 어디선가 저격이 날아온다. 탄환없는 총, "지건"이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스튜시. 그녀가 범인이다. 환락가의 여왕은 표면 상의 얼굴. 진짜 정체는 세계정부 첩보기관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날으는 지건"이란 기술로 루 펠드를 조용히 처리했다. 그녀의 목적, 아니 세계정부의 목적도 옥갑이었다. 그녀는 옥갑을 빼돌리고 그 죄를 루펠드에게 뒤집어 씌울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 원피스/879화 . . . . 2회 일치
          지난 회에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자폭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 무사히 견디진 못했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사탕으로 대체 중. 자신은 팔 정도는 사탕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뜨거운 홍차를 마실 때마다 손이 찐득하게 녹아내리는걸 봐야 한다"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 분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젠 웨딩 케이크고 뭐고 그냥 밀집모자 일당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추격하는 거라고 단언. 빅맘의 모자 나폴레옹에 타고 있는데 나폴레옹 상대로 "평생 페드로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정상 결전이래 오랜만에 상하관계 드립이 나왔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가 루피의 고무고무 열매의 상위호환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루피가 쓰는 기술은 대부분 카타쿠리가 쓸 수 있었다. 심지어 루피의 무장색 패기 기술도 똑같이 구사하는데 카타쿠리는 견문색만이 아니라 무장색 또한 루피 이상으로 구사하는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 유승옥 . . . . 2회 일치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반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상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2월경 소속사 고소 문제로 인기가 땅에 떨어진 이전의 섹시 심볼이었던 배우 ]의 뒤를 이어 2015년 초에 인터넷상에서 차세대 섹시 심볼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딸의 유명세가 단지 몸매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는 상황 때문에, 유승옥의 아버지는 심적으로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 유키히라 소마 . . . . 2회 일치
         주로 요리하는 건 정식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식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식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식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얕다. 조식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식집 요리 특성상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 윤길현 . . . . 2회 일치
         2016년 7월 29일 수원 kt 원정 당시 연패중이던 팀 분위기를 무시하고 [[손승락]]과 새벽까지 나가 논게 같은 숙소에 자리잡은 팬이 보았고, 심지어 그 팬과 배달 음식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수가 시킨 음식(족발세트)과 팬이 시킨 음식(통삼겹살과 냉면) 둘다 1층 로비에 있었는데 손승락과 윤길현이 팬의 음식을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알고 들고갔고, 팬이 이를 알리자 "알아서 환불하라", "바꾸려면 우리 방 쪽으로 오라"[* 그나마 알아들은게 이 정도지, 실제로는 통화를 여러 차례하며 꽤 얘기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는데 술 취한 느낌의 경상도 사투리로 계속 횡설수설해서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주정부린건데--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라는 적반하장식의 반응을 보였던 데다 이후 내려와서도[* 처음에는 팬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층은 9층이라 그 층의 카드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 구조가 못 가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가란 말이야-- 그러자 호텔 직원에게 중재하여 그들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호텔 직원이 부르자 그제서야 나온 듯. 그리고 팬은 그게 손승락과 윤길현인 것도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통화로는 그냥 경상도 남자들이 술에 취해 좀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것.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421&page=1&exception_mode=recommend|당시 썰]]에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썰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613&page=1&exception_mode=recommend|500원 듀오]]라고 부르며[* 팬이 시킨 음식은 4만 500원 짜리였고 자신들이 시킨 음식은 4만원 짜리였는데 자신들이 팬의 음식을 계산해서 500원 더냈다는 말을 팬에게 수차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500원 문제가 무의미한게 팬은 바뀐 음식을 건드리지 않고 돌려줬고 먼저 가져간 선수들은 이미 음식 포장을 다 뜯어놓고 나서 들고 와서 비닐 봉지 안에 음식국물(삼겹살과 함께 시킨 냉면)이 엉망으로 흘러나와 있었다고 한다. --500원어치만 흘렸나-- 실질적으로는 팬이 당연히 더 손해. ~~그리고 억대연봉 받는 분들이 치사하게 500원 가지고 뭐라 그러는 것부터가...~~] 매우 큰 실망을 하고 있다.
  • 윤상현(배우) . . . . 2회 일치
         한국의 남성 배우. 본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최종학력 고졸이다, 과거 허위사실 기재로 학력논란이 있었다(...)] 분식집, 옷장사 등의 다른 일을 하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촉활동으로 최고가 되고 싶단 바램을 피력한 바 있었다.] 살던 중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픽업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수가 될 예정이었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실제로 4인조 남성그룹의 멤버가 되기도 했으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드라마 작가와 감독들에게 캐스팅이 들어왔고 배우로 전향하게 되었다.
         || SBS || [[정글의 법칙]] in 얍 || 게스트(20기)[* 《인간의 조건》에 함께 출연한 [[은지원]]의 --실제로는 호텔에서 잔다는-- 꼬드김에 넘어가서(...) 함께 출연하게 된 것이라 한다.] ||
  • 윤철종 . . . . 2회 일치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 윤흔 . . . . 2회 일치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상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 은혼/628화 . . . . 2회 일치
          * 백화의 리더 [[츠쿠요]]도 일단은 신중론파. 그녀는 사실 이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더이상의 싸움을 막기 위해 싸운 것. 그런데 그 싸움을 다시 확전시키고 피해를 키운다면 해방군이 하는 짓과 다를게 뭐냐고 지적한다.
          * 헤바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지만 왠지 다들 옆 사람은 아는 것 같아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헤바 파일럿이 헤바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세계는 해방군과 별개의 문제로 약 7번 정도 망할 뻔 했고 최종적으론 그 원흉이 헤바가 되는 것으로 어떻게든 됐다. 헤도로 안에 있는 악한 인격 "헤도라"가 그것인데, 헤선한 인격 "헤도로"가 그걸 막고는 있지만 긴토키는 그저 막기 보단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발상을 바꿨다.
  • 이민호(1987) . . . . 2회 일치
         [[우주소녀]]의 [[성소]]가 [[아는 형님]]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에게 이민호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성소]]는 이민호의 팬이며,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이상형도 이민호라고 밝힐 정도여서 이민호 닮은꼴에 대해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이상무(만화가) . . . . 2회 일치
         이현세 만화의 마동탁에 해당하는 악역 주인공은 김준 또는 옥기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형제로 나올 땐 독고 준, 일본을 무대로 했을 경우에는 악역은 십중팔구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 이름을 쓴다. 안경을 쓰고 나올 때도 많아서 캐릭터 이미지가 마동탁과 매우 비슷하다. 다만 성격은 원래 나쁜 놈으로 나올 때가 많은 마동탁과 달리 처음엔 주인공 독고탁과 친했지만 재일 한국인 차별이나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열해진 인간일 때가 많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골프]] 전문 만화를 많이 그리면서 [[박세리]]를 만화로 그린 바 있다. 실제로도 골프광이았다고 한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2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35년]] [[10월 10일]][* 주민등록상으로는 1935년 10월 10일생인데 실제로는 저 생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던 당시나 현재 [[http://rokps.or.kr/profile/profile_view.asp?idx=169&page=1|대한민국헌정회에서는 1935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2018년자 뭅뭅 인터뷰에서는 (세는나이) 84세로 본인을 소개하였다.]([age(1934-11-16)]세)[* 1934년생일 때 기준.][br][[일본령 조선]] [[전라북도]] [[전주시|덕진구]] ||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2회 일치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2010년대 초반 고려대학교 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가 누구였냐는 문제로 농갤이 시끌벅적해지는 때가 많다. 2013~17년 드래프트까지 [[박재현|지명된]] [[김지후(농구선수)|가드]] [[이동엽|선수들이]] [[믿고 거르는 고대가드|프로에서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종현마저도 대학교에서 4년간 뭘 배웠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함께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실 고대왕조의 핵심은 이승현이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79&aid=0002923366|평소 스파링 상대를 해왔던 김준일의 증언]]~~
  • 이인민 . . . . 2회 일치
         '''이인민'''(李仁敏, [[1330년]] ~ [[1393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모은(慕隱)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다. 대제학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인복]], [[이인임]]의 동생이며 [[이숭인]]의 당숙이다. 경상북도 출신.
         공민왕 9년(1360년) 문과에 급제, 우왕 9년(1383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고 문하평리 겸 대제학(門下評理兼大提學)에 올랐다. 1388년 최영(崔瑩)ㆍ이성계(李成桂)에 의해 형 [[이인임]](李仁任)이 숙청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1388년 공양왕의 즉위 이후 석방되어 관작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공양왕 2년(1390년) 윤이(尹彛)ㆍ이초(李初)의 옥사(獄事)에 관련,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이듬해 국대비 왕씨(國大妃 王氏)의 생일에 사면령이 내려져 특사, 풀려났다. 그 뒤 경외종사관(京外從使官)이 되었다가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지냈다.
  • 이장경 . . . . 2회 일치
         생전에 상호장(上戶長)과 안일호장을 지냈고 사후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이백년은 밀직사사(密直司事), 이천년은 참지정사, 이만년은 문하시중, 이조년은 대제학을 지냈으므로 아들들의 출세로 고려조로부터는 삼중대광 문하좌시중(三重大匡 門下左侍中) 흥안부원군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도첨의정승 지전리사사 상호군(都僉議政丞 知典理司事 上濩軍)에 추증된 뒤 원나라 황제로부터는 농서군공에 추봉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2회 일치
         attachment:제로사인.jpg
          * 그는 "절기척"(제로샤인)을 써서 은밀히 접근한 뒤 메라스큐라의 목을 꺾어버린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2회 일치
          * 젤드리스에게 부여된 계금은 "경신". 마신왕의 대리로서 누구라도 등돌리는 자들을 강제로 복종시킨다.
          * 그는 마신왕의 대리로서 그에게 등돌리는 자는 "배신"으로 간주하고 강제로 복종시키는 능력이다.
  • 임신균 . . . . 2회 일치
         임신을 한 사람에게 접근하면, 자신도 임신을 하기 쉬워진다는 속설을 뜻한다. 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속설상으로는 '균'이라기보다는 '기운'에 가까운 이미지로 여겨진다.
         '메루카리'라는 인터넷 프리마켓 사이트에서 여성이 임신하기 쉬워지는 "임신균"이 붙어있다고 주장하며, '임신미(妊娠米)'를 고가에 판매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마이니치 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출품한 사람은 실제로 임신한 경험도 없으며 판매하는 임신미는 제품명에 써있는 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전문가는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을 모독하는 사기 행위"라고 단언하였다.[[https://mainichi.jp/articles/20170502/k00/00m/040/105000c (참조)]][[http://archive.is/vrWZ4 (아카이브)]]
  • 임은정(법조인) . . . . 2회 일치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상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상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남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상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 장순왕후 . . . . 2회 일치
         ** 증조부 : 대제학 증 좌찬성 문렬공 [[한상질]](大提學 贈 左贊成 文烈公 韓尙質, 1350?~1400)
         *** 조모 : [[예문관]]대제학 [[이척]](藝文館大提學 李逖)의 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贈 貞敬夫人 驪州李氏)
  • 전인범 . . . . 2회 일치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09년 11월 27사단장 취임식 때 부인 심화진이 총장으로 재임 중인 성신여자대학교의 직원들이 동원됐음이 논란이 되었다. 대법원은 그가 문재인 지지 선언 5일 뒤인 2017년 2월 9일 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성신여대 조모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조 교수의 의혹 제기가 일부 사실이라고 본 항소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선 2016년 11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은 고소인(전인범)의 사단장 취임식에 성신여대 ‘학생’이 동원된 사실이 없는 점 및 위 보도에는 ‘강제’로 직원과 학생을 동원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피고인(조 교수)은 어떻게 직원과 학생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인지 전혀 밝히고 있지 못한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이 부분 제보 내용 및 보도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였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727066 전인범 예비역 중장 명예훼손한 성신여대 교수 벌금형], 《머니투데이》, 2016년 8월 16일</ref>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피고인의 제보 내용 및 언론 보도 내용은 그 중요한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 제출 증거들만으로는 위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2025125 [단독] 전인범 '갑질' 논란, 본인 취임 행사에 부인 학교 직원 동원], 《프레시안》, 2017년 2월 9일</ref> 한편 아내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일 때 그는 자신의 SNS에 심 총장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자답해 일부 누리꾼들에게 비판 받았다. 후일 심 총장에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자 “무죄를 확신해서 경솔한 표현을 했다”며 해명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17871 전인범 "아내 무죄 확신해 경솔한 표현… 文 계속 돕는다"], 《연합뉴스》, 2017년 2월 8일</ref>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2회 일치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칠드런에게 있어서 미나모토의 존재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길리엄이 미나모토를 상대로도 모종의 조작을 걸 여지가 있고, 그럴 경우 과거 보여졌던 미래의 파국(미나모토가 카오루에게 총을 쏘는 미래)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 정재학 (1856년) . . . . 2회 일치
         임 대기자는 [[정재학]]에 대해 " 거리의 일개 건달에서 수만금의 재산가가 되고 군수라는 관직에 오르기도 했고 풍운아인데 [[대구은행]] 설립을 통해 일제의 대항 세력이 되어 지체를 높인 특이한 존재 "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의 대구은행 설립은 대구를 [[봉건시대]]에서 [[자본주의]]경제로의 이행으로 이끄는 혁명이자 국권회복을 위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재학]]이 설립했던 [[대구은행]]은 일제에 대한 커다란 저항세력으로 한국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길러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도 [[조선총독부]] 소속 개령군수로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며, [[1911년]] 도지사 자문 직책인 경북 도참사를 지냈다. 1910년 한일 병합 직후 은사금 1천 엔을 하사받고 정8위에 서위되어 일제로부터 공을 인정받았다.
  • 정종철 . . . . 2회 일치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ref>[[강연 100]](2013.8.11)방송분에서 어릴적꿈이 목사였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의 저서에도 나타나 있다.</ref><ref>[https://news.v.daum.net/v/20061031154809467?f=o 개그맨 정종철씨 간증,"볼품없는 저도 남 웃기는 능력 있잖아요"], 국민일보</ref>
         2009년 10월 11일에 방송된 [[MBC]]의 새 개그 프로그램인 [[하땅사]]에 출연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코너에서 '물을 아끼자'라는 주제로 정종철이 [[이순신#이순신과 관련된 것|이순신 동상]] 앞 분수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을 미리 촬영한 동영상이 방송되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 방송 횡포다" ,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라며 시청 후 불쾌함을 호소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하땅사' 개그맨은 웃고, 시청자는 뿔났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1/2009101100645.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박현민 기자 |날짜 = 2009-10-11 |확인날짜 = 2009-10-12}}</ref>
  • 정차온 . . . . 2회 일치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상주]][[판관]](尙州判官)에 이르렀다. [[1455년]] [[조선 단종|단종]](端宗)이 강제로 [[조선 세조|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선위하고 상왕이 되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조가 평양판관(平壤判官)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 정찬성 . . . . 2회 일치
         그리고 2011년 12월 UFC 140에서 마크 호미닉을 '''7초'''만에 초살 KO시키며 타이틀 컨텐더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히 했다. 글러브 터치 직후 초살을 노리면서 크게 휘두른 호미닉의 왼손 훅을 피하면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적중, 다운된 호미닉에 파운딩 세례를 퍼부으며 [[충격과 공포]]의 TKO승을 거뒀다. 이 기록은 UFC 102에서 있었던 [[토드 듀피]]의 UFC 최단시간 KO 타이기록이라고 한다! 리플레이를 돌려보면 레프리 스탑이 이루어진 시기는 4분 54초로 실제로는 6초라는 얘기인데, 6초로 정정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7초로 확정됐다.
         경기마다 명장면을 만들어 내는 초특급 슈퍼스타다. WEC 48의 난타전, UFN 24의 트위스터에 이어 UFC 140에는 최단시간 KO까지 만들어내는 등 그가 싸우는 곳에는 언제나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경량급에는 스타가 확실히 적은걸 보면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마치 BJ 펜이 라이트급의 서막을 열었듯이. 이미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Zuffa 페더급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 플레이어. 한국에서의 MMA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북미에서의 인기가 더 높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연이은 명경기로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지만 북미의 찌를듯한 인기에 비하면 아직은 국내인기는 약한 편이다. 실제로 코리안 좀비 티셔츠는 2010년 MMA 티셔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 조원진 . . . . 2회 일치
         19대 대선 선거송으로 유명 동요인 [[곰 세마리]]를 각색하여 쓰고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곰을 닮은 ~~닮긴 뭘 닮어...~~ 외모를 의식해서인지 19대 대선 후보중 유일하게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홍보를 했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함께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한 국회의원. 국민보다 박근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으로는 박근혜에게 인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박이라는 것 외에 딱히 정치적 자산이 없고 본인에게 특출난 능력, 우러러 볼 업적도 없기 때문에 박근혜를 놓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조원진은 태극기 집회 연설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언행을 전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현재 그가 박근혜 석방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떠올려 보면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2회 일치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절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상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상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2회 일치
          마가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마레인의 전쟁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레의 전쟁은 활자의 전쟁이었다. 마레인이 아는 전쟁은 신문 지면에서 활자 위로 묘사된 것이 전부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영토는 넓어지고 국력이 신장된다. 실제로 전쟁에 나가서 총알을 맞는 건 조련된 악마의 후예들이다. 이보다 좋은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레인들은 실제로 총알이 귓가를 스쳐가는 날이 오더라도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사 마레가 붕괴하는 날이 오더라도. 여기까지 말한 마가트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부터 덧붙일 말은 조금 위험했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2회 일치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예거 박사의 입을 통해서 그의 숙부뻘 되는 인물이 엘디아 복권파의 간부였고 그 바람에 일족 전체가 연좌제로 고생한 사실이 밝혀진다. 정황으로 보면 그 숙부가 그리샤 예거를 가담시킨 "그라이스"란 인물.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게 된 덕에 겨우 사정이 나아졌는데 반대로 현 짐승의 거인 계승자인 지크의 가족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가 된 모양이다.
  • 진창현(음악인) . . . . 2회 일치
         하지만 대학 재학 중에 [[제로센]] 설계자였던 이토카와 히데오가 대학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에 대해 음향학적으로 고찰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뒤, 현악기 제작자로 장래 희망을 바꾸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찾아간 일본 현악기 장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나가노]]의 기소후쿠시마 쵸에 있던 스즈키 바이올린 공장에서도 입사를 거절당해 근처 공사장에서 채석과 벌목 같은 거친 노동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창작:IDF . . . . 2회 일치
         IDF는 수만명의 상비군 병력을 갖추고 있는 모병제 군대이다. IDF 모병에 응하는 데 특별한 국적 제한은 없으며, 비가맹국 출신이라도 IDF의 모병에 참가할 수 있으며, 실제로 상당수의 비가맹국 출신이 IDF에서 복무하고 있다. 다만 모병 사무소는 가맹국에만 설치되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IDF는 여러 나라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IDF의 가맹으로 메겨지는 분담금은 실제로 각 국이 자국의 주도로 '쓸만한 군대'를 IDF와 같은 규모로 키우는 비용과 기간을 고려하면 IDF 가맹은 싸고 간편하게 적절한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IDF는 비교적 저렴한 군사비로 비상시에 "훈련도가 높은 군대"에게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각 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경제적인 '군사 보험'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 창작:레스터 리 . . . . 2회 일치
         20대 한국인 남성. 본명은 불명이며 일부러 얘기하지 않는다.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보다 나이가 4살 가량 어리다. 중키에 마른 체질이며 머리카락은 적당한 검은색 비대칭 머리. 존은 '사이비 종교나 사기꾼들이 사랑하게 생겼다'고 표현했다. 안경을 껴서 그런지 지적인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지적이다(아래 '내적' 참고).
         겉보기엔 무표정이라서 무뚝뚝해 보이지만 은근히 감정에 쉽게 휘말린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술가적 기질'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존은 조울증이라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존에 비해 감정의 폭이 넓은 것은 사실이기에 대부분의 교섭은 레스터가 맡는다. 실제로 레스터의 오지랖이 의뢰인들에게 보수를 얻어낼 때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범죄자를 비롯하여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으므로 그럴 때는 존이 나선다.
  • 최흥철 . . . . 2회 일치
          * 영화 [[국가대표(영화)|국가대표]]에서는 마약 복용자로 나오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스키에 관심이 있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된거지, [[군면제]]를 이유로 나가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실제로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어 군면제가 되었다.
  • 추미애 . . . . 2회 일치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남을 포기했었다.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원조교제]], [[아저씨 사냥]]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 여성을 18세 이상으로 속여서 만남을 가지게 하는 등 츠츠모타세에 이용하고,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로 [[경찰]]에 신고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부인]]에게 알려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준다." 등의 [[협박]]을 가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 법률을 위반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이 개입하지 않고, 여성 자신이 [[1인 2역]]을 하여, 남성 자신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고 인터넷 연락으로만 위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 칠곡군 . . . . 2회 일치
         1950년에는 이 지역에서 [[6.25 전쟁]]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인 [[다부동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호국의 고장'이라는 문구를 홍보에 쓰기도 하며 실제로 관련 전적지들이 군 소재지 곳곳에 상당히 많은 편. 이걸 테마로 칠곡군 군청 소재지인 왜관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부대와 같이 매년 기념 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2011년에 이 지역에 주한미군 전역자들이 미군이 몰래 과거에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매립했다고 고백해 미국과 한국이 공동수사에 들어갔고 한때 주한미군 기지 주변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기지 주변의 흙을 수거해 조사를 했으나 결론은 별 다른 문제 없음이였다.실제로 해당 고백 사건 당시 기지 주변에서 오래 살았던 거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그동안 별 탈없이 살았는 데 뭔 일 있겠어였지만 산 지 얼마 안 된 주민들은 불안해 하는 어떻게 보면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카미마치 . . . . 2회 일치
         하지만 이는 인터넷 상의 기록으로 범죄행위가 적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위장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전문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가짜 이용자가 많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2회 일치
         서기 2513년 미국 동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는 지하 주거시설을 만들고 600여년 동안 틀어박혀 지냈었다. 그 후 600여년의 세월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 없어진 지상은 자정 능력 덕분에 예전처럼 맑고 건강해져 있었다. ~~본격 인류 해충설 인증 성공~~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 보통 차를 타는 아이템이 나오면서 차를 타게 된다. 다만 차를 타고 적들을 깔아뭉게는 것을 전제로 하여 디자인이 되어 있다 보니 수많은 적들이 바글바글 튀어나오며 '''회복 아이템이 전혀 나오지를 않는다.''' 시간 배분도 캐딜락을 타고 가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냥 가면 타임오버에 걸려서 무조건 한 번 죽는다.''' 이 게임에서 [[스코어링]]의 길을 선택한 경우, 보너스 게임의 성격이 강했던 3스테이지는 [[플레이어]]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것이다.(...)
  • 킹덤/534화 . . . . 2회 일치
          후반에는 기수 본대의 역습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낙화대를 앞세워 마광군을 보호한다. 여기까지는 다 작전대로 잘됐지만 이 공습을 막아낼지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실제로 난전 중에 낙마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걸 이신이 발견한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 전에 장담한 대로 진군 좌익의 싸움의 주역이 되었다.
          중앙군에 잘 복귀한 모습으로 등장. 그러나 진군 좌익을 쓸어버린 걸 전제로 다음날 작전을 구상하다 금모의 급보로 전세가 어그러졌음을 확인한다.
  • 토리코/375화 . . . . 2회 일치
          * 적귀는 GOD와 센터를 먹어야 본 실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실제로 적귀는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먹을 때마다 강해져왔다.
          * 청귀는 지금까지 적귀와는 달리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탐내거나 먹고 강해지는 묘사가 없었는데, 어쩌면 청귀는 이미 블루 유니버스에서 그 우주의 풀코스를 먹고 강해진 상태일지 모른다. 실제로 블루 니트로를 상대로 훨씬 선전하고 있다.
  • 퇴계 이황 . . . . 2회 일치
         이황은 1545년([[명종]] 즉위시기)에 [[을사사화]]를 겪었으며, 이 때 형 이해(1495~1550)는 양주로 유배가던 도중에 사망하였다. 이황은 [[김안로]], [[이기]] 등 당대 권세가에게 위협을 받았으나, 신중한 처신으로 이 같은 사화(士禍)를 겪지 않았다. [[우찬성]], [[대제학]] 등의 고위직에 올랐다.
         이 같이 조정에서 처신한 것은 조정에 아직 훈구대신의 세력이 강하였으며, [[기묘사화]], [[을사사회]]처럼 과거 [[사림]]이 입었던 피해가 컷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조 즉위 초까지만 해도 [[윤원형]], [[이량]] 등은 이황을 ‘소기묘(小己卯, [[조광조]]의 아류)’로 부르면서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조수정실록 2년 6월 1일] 신중하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특이한 세금 . . . . 2회 일치
          * 수염세 : 1705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가 제정했다. 이는 당시 러시아 남자들이 [[수염]]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 문화를 동경하여 이를 러시아에 도입하고자 했던 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관습을 없애려고 수염에 세금을 메겼던 것이다.
  • 핀 팡 품 . . . . 2회 일치
         거대한 몸집 탓에 그냥 괴수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파충류]]형 [[외계인]]으로 종족은 Makluan/Axonn-Karr. [[노바]] 군단에도 같은 종족 출신이 있다. 그래도 마블의 괴수 캐릭터들 중 하나이긴 하다.
         드래곤 모습이나 실제로는 외계인이란 점에서 [[벤10 시리즈]]의 용형 외계인과 비슷하나 그쪽과는 목적이나 입장이 다르다.
  • 하이큐!! . . . . 2회 일치
         [[카라스노 고교]]의 모델은 이와테현 구노헤 군 가루마이마치의 현립 가루마이 고교이다. 실제로 까마득한 산골로, 하이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광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http://blogs.yahoo.co.jp/yosicosmic 블로그(일본어)] 작품의 배경은 미야기현이면서 카라스노 고교의 배경은 이와테현이 된 셈인데, 이는 작가가 미야기 출신이지만 이와테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어떤 [덕후]가 [오이카와 토오루]의 방을 실제로 재현했다. 베스트 세터 상 상패까지(...) [https://www.facebook.com/haikyuu.fans/posts/591001484368357 위대한 덕후]
  • 하이큐/216화 . . . . 2회 일치
          * 멘탈 문제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카게야마
          * 멘탈적인 문제로 컨디션 난조.
  • 하이큐/228화 . . . . 2회 일치
          * 그날 저녁. 자율연습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는 주장지시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는 니시노야 유에게 언제나처럼 서브 연습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연습을 청한거 치곤 수십분 만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헉헉 거린다. 니시노야는 서브 연습은 심박수가 높은 상태에서 하는게 이상적이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선 심박수가 높아진 상태에서 때리기 마련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 히나타가 하는 연습은 혼자하는 리시브 연습법인데 우선 높이 튕긴 공을 받아 위로 패스하고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지면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면 여러 동작을 중첩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훈련. 당연히 나츠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히나타는 능숙하게 반복한다. 여동생에게 자랑하는데 지나던 어머니는 "허무하지 않냐"고 딴죽을 걸어서 김을 빼버린다.
  • 하이큐/272화 . . . . 2회 일치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상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중간부터 설명서처럼 돼버린 설명 끝. 좌우간 빠릿빠릿해진다는 말은 틀림없었다. 실제로 카게야마는 "분위기가 짜릿짜릿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 한교원 . . . . 2회 일치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교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겉멋보다는 선수 본인의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성향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교원은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실제 성격은 착하지만 굉장히 여리고, 은근히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도 초기에 비판을 받을 때는 적응까지 좀 시간이 걸렸었고, 2015 시즌같은 경우 국가대표 승선으로 인해 과거와는 확실히 위상과 주목도가 달라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소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자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팀을 만났고,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인천 팬들도 한교원을 바로 비난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했지만, 다수는 '어쩌다가 한교원이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간 한교원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도 상극인 행위를 했기 때문.[* 지금도 한교원을 한퀴아오라면서 욕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정작 사건 당사자인 인천팬은 아연실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보여준 태도와는 상반된 행동이었기 때문. 실제로 인천팬들은 한교원 선수를 성실하고 착실한 선수로 인식해왔고, 평소 행동도 거칠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 한창수 . . . . 2회 일치
         [[한성부]] 출신이다. [[대제학]]을 지낸 [[한장석]]의 아들로 태어나 [[한윤석]]에게 입적되었다.
         한창수는 거침 없이 친일적 언행에 더하여, 이왕직 장관을 지내면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를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 보내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여 결국 정신병을 앓게 한 일로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한창수가 이왕직 장시국장 재직 중 고종이 사망했는데, [[고종 독살설]]에 [[이완용]], [[이기용]], [[윤덕영]], [[한상학]], 그리고 어의 [[안상호]]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 함대 컬렉션 . . . . 2회 일치
         한국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게임"이라며 혐오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몇몇 웹사이트에서는 칸코레에 대한 언급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매체 특성상 실제로 우익 성향을 가진 이들이 동인 활동에 많이 참여한다. 에로 동인지의 경우 심지어 '위안함'(위안부) 같은 민감한 단어도 사용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 함은정 . . . . 2회 일치
          * 2011 MBC 가요대제전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진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이에 은정은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 갑자기 계단 내려가다 발목을 접질러서 구두를 못 신었다고 트윗을 남겼다.
          * 2011년 6월 9일에 개봉하는 김곡, 김선 감독의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라는 '''한국 최초로 [[걸그룹]]을 주제로 다룬 공포영화'''의 주역을 맡게 됐다. 감독이 독립영화계와 해외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다고 한다. 영화 내에서는 '핑크돌스'라는 4인조 걸그룹의 리더 '은주'로 출연. 음악은 [[신사동호랭이]]가 담당했다고 한다. 포스터에서 하얀 얼굴로 피눈물을 흘리는 함은정의 모습이 여러모로 팬들을 [[충공깽]]에 몰아 넣은 모양이다.
  • 헌경왕후 . . . . 2회 일치
         [[1775년]](영조 51년)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홍인한은 극력 반대하였고, 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사서 정조 즉위 후 사사된다.
         *** 증조모 : 영의정 [[이경여]](令議政 李敬輿, 1585~1657)이 손녀이며 대제학 문간공 [[이민서]](大提學 文簡公 李敏敍, 1633~1688)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 홍국영 . . . . 2회 일치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영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백부인 [[홍낙순]]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 홍명희 . . . . 2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 홍영식 . . . . 2회 일치
         [[1894년]] [[갑오개혁]]으로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등의 상소로 복권되었다가 [[김홍집]]의 실각 이후 추탈되었다. 그 뒤 [[1910년]](융희 4년) 최종적으로 복권되어 [[대광보국숭록대부]] [[규장각]] [[대제학]](奎章閣大提學)에 [[추증]]되었다.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의 문인이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 [[유길준]] 등의 거듭된 상주로 신원, 복권되었으나 [[김홍집 내각]]의 실각으로 추탈되었다가, [[대한제국 순종|순종]] 때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고, 충민(忠愍)의 시호가 내려졌다.
  • 휴먼 토치 . . . . 2회 일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태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1회 일치
          * 또 하나 니카이도가 기대하는 것은 키리야마와 반대 블록에 있다는 것. 즉 둘이 대결한다면 대회 결승이다. 게다가 그가 결승까지 나갔다는건 무려 "소야 명인을 쓰러뜨린 기사"라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니카이도는 엄청 흥분해서 키리야마에게 절대 지지 말고 결승에게 붙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키리야마는 드라이한 톤으로 "왜 네가 소야 명인을 이겼다는걸 전제로 하냐"고 딴죽을 건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회 일치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 FrontPage . . . . 1회 일치
          * 개인 사용자를 주제로 한 문서를 만드는 것을 금지합니다.
  • GLA . . . . 1회 일치
          * 섀보터(제로아워 확장팩 필요)
  • K리그 챌린지 . . . . 1회 일치
         2014시즌은 상주가 승격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3개팀이 내려오면서 10개팀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다. 10개팀이 되었기 때문에 2013시즌과 같이 5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에서 4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로 운영방식이 변경되었다.
  • K리그 클래식 . . . . 1회 일치
         이후 함맘은 2009년에 '''승강제가 없는 리그는 ACL참가 불가'''라는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390028.html]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여기에 낚여 2012년까지 승강제를 마련하겠노라는 계획서를 제출하게 되고, 이 계획에 따라 진행하여 K리그는 2012년에 승강제 도입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현실이 되었다.]].[* 이런 연맹의 노력이 무색하게 2016년 현재 ACL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승강제가 없는 [[A-리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ACL에 참가하고 있는 걸로 봐선... 안습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 MC메타 . . . . 1회 일치
         가리온의 앨범이 워낙 긴 주기로 발매되는데--1집 7년, 2집 6년--, 1집 전까지 피처링 참여가 드물었던 나찰에 비해 MC 메타의 경우 여러 피처링 작업으로 입지를 다진 면이 있다. 때문에 2000년대 중반에 MC 메타의 피처링 트랙들을 모은 앨범이 그 당시의 한량사에서 추진된 적이 있으나, 각 소속사에서의 판권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실제 발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 MoniWikiOptions . . . . 1회 일치
          * 기본 언어를 설정한다. 기본값 'auto'로 브라우져 설정을 따르며, 강제로 한국어로 하고자 하면 'ko_KR'로 지정한다.
  • NTX . . . . 1회 일치
          * 자유토론 : 토론용 게시판. 원래는 일정 기간 동안 [[http://ntx.wiki/bbs/board.php?bo_table=free&wr_id=65610|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게시판]]이었다. 현재는 설문조사 게시판과 통합되었다. 싸움이 잦았다.
  • QTE . . . . 1회 일치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는 메인 스토리 중간중간에 QTE가 들어있다. 실패할 경우 위험한 경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죽음의 감각"을 강제로 발동시킨다.
  • mixi . . . . 1회 일치
          * 과거에는 [[초대제]] 서비스였으며, 18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었다.
  • 가상 메모리 . . . . 1회 일치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OS는 메인 메모리를 그대로 물리적 어드레스에 따라서 액세스(읽고 쓰기)를 지원한다.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메모리 이상의 프로그램은 절대로 돌릴 수 없다. 실제로 DOS에서 메모리가 모자라면 일단 프로그램이 안 올라간다. 게다가 이게 좀 [[복불복]]스러워서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잠깐 실행되다가 OS자체가 다운된다.
  • 강구열 . . . . 1회 일치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식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영보다는 초반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영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 강승현(모델) . . . . 1회 일치
         그 이외의 경력으로는 금호건설을 비롯한 여러 CF 출연([[http://pann.nate.com/video/202506959|금호건설 CF 보기]])[* CF를 보면 '난 포즈부터 달라'라는 대사와 함께 강승현이 몸을 구부리는 포즈를 취한 뒤에 그에 맞춰 [[아부다비 국제공항]] 관제탑이 오버랩된다. [[아부다비 국제공항]] 관제탑은 실제로 구부러진 모양으로 지어져 있으며 금호건설이 수주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무한도전]]의 '악마는 구라다를 입는다'편 출연, 글로벌 성공시대 '뉴욕을 매혹시킨 패션모델, 강승현'편 출연, 2014년 [[런닝맨]] 출연 등이 있다.
  • 강원 FC . . . . 1회 일치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 강원래 . . . . 1회 일치
         * [[DJ DOC]]의 멤버인 [[이하늘]], [[김창렬]]과는 여자문제로 인해 앙숙관계에 있다.<ref>[http://www.aha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114 "이하늘 '강원래, 내 애인과 성관계中 발각' 후폭풍 …7집 부치지못한편지, 가사 전문"] - SSTV</ref>
  • 거유 . . . . 1회 일치
         마쓰자카 키미코는 당시 공칭 110.7cm(실제로는 90cm)라는 가슴으로 [[일반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거유라는 단어가 일본 문화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1회 일치
          * 우마루는 카나우가 "게임만하는 라이트한 오덕"이라고 오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실제로 자기는 다양한 덕취미를 즐긴다고 강조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1회 일치
          * 드디어 도착한 게임. 히카리는 설명서부터 착실하게 읽으면서 시작하는데 우마루는 적당 적당 감과 경험으로 플레이하는 타입. 우마루는 전사를 택하고 히카리는 마법살를 택한다. 히카리는 그냥 설명서에 추천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로 마법사를 고르는데, 우마루는 그것을 은근히 얕본다. 실제로 마법사는 초반엔 체력이 낮아 고생하는 직업이므로 우마루는 자비를 베풀어 서포트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 게임 소설 . . . . 1회 일치
         거의 대부분의 게임 소설이 실제로 해보면 미묘할 듯한 애매한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다.
  • 고산케 . . . . 1회 일치
         고산케의 조상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절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고유민 . . . . 1회 일치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친정 초기에는 박규수 같은 통상개화파를 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한편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흔히 중전 민씨([[명성황후]])덕에 여흥 민씨가 네임드화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원군파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직접 중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때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박규수 등의 개화파를 중용해 개방을 서두른 걸 보면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듯.
  • 공주님 안기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태가 되지 않는다.
  • 공중분해 . . . . 1회 일치
         [[비행기]] 같은게 공중에서 분해되는 현상. 주로 [[여객기]]에서 나타난다. 여객기는 내부 승객을 위한 [[여압장치]]가 있는데, 이 때문에 내부 압력이 외부 압력보다 높다. 동체가 손상되어 내압이 외압에 버티지 못하게 되면, 내압이 한꺼번에 외부로 터져나오면서 공중에서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물론 타고 있던 승객도 여객기의 파편들과 함께 강제로 외부로 사출되며 대개 살아날 수 없다.
  • 곽월 . . . . 1회 일치
         [[1574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나갔다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했다. [[1576년]] 다시 [[의주]][[목사]]로 나갔다가 그 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冬至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동지사]]로 파견되었을 때 [[명나라]] 황제로부터 붉은 비단, 금안(金鞍), 쌍연(雙硯)벼루, 화병(畵屛), 시서(詩書) 등을 특별 선물로 받기도 했다.
  • 광주 FC . . . . 1회 일치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신생구단 창단은 상당히 지지부진하여 2008년 연고협약 종료시점까지 광주로 오려는 팀은 없어 창단이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고, 2009년에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울산 현대미포조선 축구단을 K리그 참가조건으로 유치하려 했으나 이 역시도 울산미포조선은 애초에 K리그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기에 2번과 4번을 혼용하는 대안 역시 폐기된다.[* 기업구단을 유치하려 했던 이유는 2001년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금액과는 달리 K리그 1년 운영비가 120억 수준이라는 것에 기겁(...)한 감이 있다. 2001년 시점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K리그 구단의 1년 운영비는 40억 수준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면 택도 없이 낮은 금액.] 또한 이 상무와의 연고협약 과정에서 광주광역시는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에 K리그 참가를 전제로 이미 회원가입비 + 축구발전금으로 40억원을 납부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팀 창단을 하지 않으면 이 40억이 공중분해되는 마술이 펼쳐질 상황'''이라 결국 시에서 직접 나서는 5번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상무와 연고협약이 연장된 2년의 유예기간 안에 창단을 안 할시에는 그대로 돈이 날아가는 조건이었다.]
  • 광해군 . . . . 1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 국가원수 . . . . 1회 일치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김일성]]이 '영원한 주석'으로서 헌법상 영구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었으므로, 일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방위원장 지위의 김정일, 국무위원장 지위의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상국에서 반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궁예 . . . . 1회 일치
         마군장군(馬軍將軍) [[환선길]]은 처음에는 왕건의 정변에 적극 가담해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아내의 권고를 받고(고려사,고려사절요,동국통감에는 아내의 권고를 받고 환선길이 그의 동생과 함께 왕건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왕건의 정변 성공 이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소외가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의 동생과 함께 왕건 즉위 직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해 그의 동생과 함께 처형되었고, 이후 궁예 정권 말기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으로써 웅주(熊州)를 쳐서 차지하고 주둔하던 [[이흔암]]은 천수 원년(918년) 6월 왕건의 즉위를 찬탈로 규정하고 정변을 일으킬 목적으로 부임지인 웅주를 무단이탈해 당시 수도인 철원으로 마음대로 돌아왔고, 이후 한찬 수의형대령(守義刑臺令)이었던 염장(閻萇) 등이 웅주를 잃은 것에 대한 처벌을 요청함과 더불어 그에게 반란을 일으킬 뜻이 있음을 탐지해 밀고했다. 이에 이흔암은 시장 바닥에 끌려나가 공개 참형을 당했고, 2개월 뒤 공주는 운주(運州) 등 10여 주현과 함께 후백제에 귀부해 버렸다. 9월에는 순군리였던 임춘길(林春吉)과 그의 일당들이 반역을 꾀하다 처형당했고 그 다음달인 10월달에는 청주의 진선과 선장 형제도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되었다. 대부분 공주, 또는 청주 지역의 옛 백제계 지역 호족들이었다.
  • 권벌 . . . . 1회 일치
         [[1539년]] [[3월]]에 [[병조]][[참판]]에 임명되고, [[6월]] [[한성부 판윤]]에 올랐다가 얼마 뒤 [[중추부]][[지사]]로 전직되었다. [[1539년]] [[7월]] [[종계변무]](宗系辨誣)에 관한 일로 종계변무 주청사(宗系辨誣 奏請使)가 되어 [[동지사]] [[임권]](任權) 등과 함께 [[연경]]에 갔다가 이듬해 [[2월]]에 [[명나라]] 황제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적은 칙서(勅書)를 받아들고 돌아왔다. 긍정적인 칙서를 얻은 일로 정헌 대부(正憲大夫)로 승진시키고 토지와 노복을 하사받았다. [[명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에 임명되어 세자우빈객을 겸하여 [[세자]] [[조선 인종|인종]]을 가르쳤다.
  • 권영해 (1888년) . . . . 1회 일치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 권재진 . . . . 1회 일치
         2011년 8월 8일 오전 청문회에서 큰아들이 경기도 포천의 국제나이론이라는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지난 2003년 8월 12일부터 2004년 12월 29일까지 포천 농협에서 이뤄진 38번의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들의 산업기능요원 근무 시기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내역은 2003년 8월부터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의혹이 증폭됐다.
  • 권해효 . . . . 1회 일치
         한양대 선배이자 동료 배우인 [[박광정]]과는 막역한 사이로, 서로 첫 대면한 자리에서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권해효), ''''저쪽도 한 코 하는데?''''(박광정)하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한 쪽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서로 첫인상이나 생각까지 비슷했던 걸 보니 역시 우린 잘 맞는다." 며 웃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깨알같은 콤비로 활약하며 함께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후 [[박광정]]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빈소를 지키며 장례를 마무리하는 의리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권희동 . . . . 1회 일치
         그 외에도 군 문제 또한 과제로 남았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을 노리기에는 아직 보여준 게 적은데다 이재학과 나성범이 팀내에서 1차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에 국대 승선보다는 상무or경찰청 입대를 노리는 것이 수월할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 그린 애로우 . . . . 1회 일치
         코스튬 컬러링은 이름에 어울리게 녹색이 주력. 무기인 활과 화살도 녹색이다. 이러한 녹색 이미지에서 유명한 궁수인 로빗 훗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과거 버전 중에는 로빗 훗과 많이 비슷하다.
  • 기간트 . . . . 1회 일치
          하지만 실제로는 레프카가 권좌에서 쫒겨난 상황이었고, 아직 자신을 따르는 얼마안되는 부하[* 애니에서 나온 부하들 수는 많아도 10명이 넘을까 말까 정말이지 수가 적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항복하여 같이 공존하자고 충고하는 부하 1명을 레프카는 군말없이 쏴죽여버렸다.]들만 이끌고 삼각탑에서 탈출하는 방식으로 출격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비나 인원보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코난 일행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장기간 기간트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일부 지역을 점령해서 레프카가 왕국을 세울수는 있겠지만...
  • 기동전사 건담 . . . . 1회 일치
         전반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태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 긴나라 . . . . 1회 일치
         왕자 수다나는 이 나라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불법을 설교하여, 마노하라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구출하고 자신의 왕궁에 데려온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히스티나푸라 왕국의 사제는 수다나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사제로서 남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계략을 꾸민다. 사제는 왕에게 왕자를 위험한 변방으로 보내서 반란을 진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언하여, 수다나 왕자는 변방으로 떠나게 되는데 [[야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 김광석 . . . . 1회 일치
         또한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5/2014060501769.html|제목=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성관 편집위원|날짜=2014-06-05}}</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5251507299539|제목='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출판사=YTN|날짜=2014-05-25}}</ref>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의 매각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절 보낸 창신동 집 팔려 |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출판사=포커스뉴스 |저자=이유정 |날짜=2016-01-25 |확인날짜=2016-05-0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508074315/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보존날짜=2016-05-08 |깨진링크=예 }}</ref>
  • 김대호(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 김대환 (법조인) . . . . 1회 일치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1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11월 17일에 투서 사건으로 54억원 상당의 재산을 강제로 국가에 헌납했던 전 [[민정당]] 대표 [[정래혁]]의 국가 상대 재산의 반환을 요구한 소송에서 "이유없다"며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89년 11월 17일자</ref>
  • 김동한 (1919년) . . . . 1회 일치
         [[1945년]] [[12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1948년]] [[8월]] [[경상북도]] [[상주시|상주군 함창읍]] 소재 함창동성당에서 본당 사제로 부임하여<ref>[http://www.catholicimage.org/comm/board/view.php?tid=church&division=&cate=&cate1=&schf=&schv=&lskin=list&idxNo=3434&refresh=true Catholic Image - Catholic Image<!-- 봇이 붙인 제목 -->]</ref> 1949년 6월까지 사목하였다.
  • 김보름 . . . . 1회 일치
         12월 29, 30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은 첫 날 500m와 3,000m에서 2위에 올랐지만 컨디션 문제로 기권했다. 박지우(한국체대)는 500m와 1,500m, 3,000m, 5,000m 네 번의 레이스에서 모두 1위를 석권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2위에는 전예진(화성시청), 3위에는 박도영(동두천시청)이 이름을 올렷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6cf24cb4dde9ed7d4d03cf9909e31476|제목='빙속황제' 이승훈, 스피드 종합선수권 종합 우승|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30}}</ref>
  • 김석형 (역사학자) . . . . 1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백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상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키 183cm인 거구이며, [[태조 왕건]]의 [[아자개]]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규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전문배우]]이다. 실제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외모,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 등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연기하였다. 키 183cm면 2018년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큰 수준이다.
  • 김성곤 . . . . 1회 일치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김시진 . . . . 1회 일치
         2014 시즌 들어 수비진의 안정화로 리그 최소 실책 부문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강민호]]와 [[전준우]]를 필두로 하는 타선의 부침과 [[송승준]]의 부진이 겹쳐 6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9구단 체제로 인한 휴식일에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권두조]]가 수석코치에서 중도 사임하였다. 이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사퇴하였다.
  • 김연수(작가) . . . . 1회 일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9)[*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world's end girlfriend]]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소설집. 실제로도 팬이라고 한다.]
  • 김원주(가수) . . . . 1회 일치
          * 프로필 상으로 키가 178cm인데 프로필 키가 176cm인 신용재보다 더 작아보인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몇몇 사진에는 신용재가 김원주보다 크다. 하지만 와이후 패밀리콘서트에 다녀온 다른 사람 말로는 민연재[* 프로필 184cm이다.]와 김원주가 제일 크다고 한다.
  • 김윤환 . . . . 1회 일치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 김이브 . . . . 1회 일치
          * 32평 20년된 아파트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거주 하다가 생활하는데 불편함을느껴 이사를 결심하게되었고. 이사문제로 몇개월동안 임시집에서 거주하다가 2017년 3월 현재 강남에 아파트형빌라에 자가로 거주하고 있는중이다.
  • 김재연 (1980년) . . . . 1회 일치
         한편 김재연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주소를 옮긴 뒤 실제로 시댁에서 출퇴근하고 있으며, 위장 전입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발표했다.
  • 김재한(축구) . . . . 1회 일치
         제일모직에 돌아갔으나 제일모직 축구팀은 김재한이 돌아온 후 2년만에 해체한다. 이에 주택은행으로 적을 옮기게 되어 주택은행이 4관왕을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5살인 1972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김재한은 [[이회택]], [[박이천]], [[차범근]], [[김진국]], [[이차만]], [[허정무]] 등과 공격수로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1979년까지 활약한다. 실제로 1972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 주어진 단 한 장의 월드컵 진출 티켓을 놓고 벌인 3번의 혈투를 벌였던 당시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과 2007년에 대면할 일이 생겼는데, 기억나는 것은 김재한과 차범근 뿐이었다고 한다.[* 립서비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35년이나 지난 후에 회고하는 것인 만큼 상당히 진솔할 수 있다. 립서비스를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부담스러웠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적당할 듯하다.]
  • 김정우(1990) . . . . 1회 일치
         [[FNC엔터테인먼트]] 오디션 1등 출신. 실제로 어느정도 연습생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다고 한다.
  • 김정재 . . . . 1회 일치
         계파로는 범 [[친박]]계로 분류된다. 실제로 탄핵 표결에서 [[전희경]]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웃찾사에 출연하지 않고 있던 2006년 11월 KBS의 신설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충전소]]에 출연하면서 KBS로 이적.''' '''대안제국''' 코너에서 조선 시대 대신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해서 다른 대신인 박성호와 함께 서로 왜 웃찾사 버리고 건너왔냐며 자학개그를 했다. 박성호는 원래 개콘에 출연하다가 소속사 문제로 웃찾사로 이적한 바 있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1회 일치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김효기 . . . . 1회 일치
         충주 중앙중학교 3학년 때 독일 유소년 프로젝트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독일 에이전트에 눈에 띄게되었고, 독일 클럽 유소년팀을 오퍼받았다. 그 당시에 고등학교 진학과 독일 진출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였지만 재차 독일에서 오퍼가 와서 독일로 진출하였다. 독일에서 [[하노버 96]], [[샬케 04]], [[바이어 레버쿠젠]] 등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으로 들어갔다. 도르트문트 유소년팀에서 7~8개월 활동하다가 사업상 문제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불가리코리아 불가리 비제로원 (주얼리)
  • 나가 . . . . 1회 일치
         철저한 모계사회이며, 남자 나가는 성인이 되기전엔 그의 가문에 머물며 성장하며, 성인이 되고 난뒤에는 가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방문해 가임기의 여성 나가들이 있는 가문에 씨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외에 미성년 남자 나가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경호역할로 외출한 남자 나가가 다른 가문으로 내빼는경우도 서술하고 있다(...)] 일부 남성 나가들은 '수호자'라 불리며 여신의 '신랑'이 되는데, 원시종교에서 여사제들이 순결을 지키는것과 비슷하게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심장을 적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제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기에 어지간한 여자 나가들도 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가 긴급하게 설명충을 자처한다. 그녀는 스마일 히어로 "Ms.조크". 개성은 "폭소". 근처의 사람들을 강제로 웃게 만들어서 사고와 행동을 둔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회 일치
         갱 오르카는 히어로 랭킹 10위. 참고로 "빌런 같이 생긴 히어로 3위".--이 위로 2명이나 있다-- 작가의 전작에서 실제로 빌런으로 나왔던 캐릭터인데 어째 그때보다 더 빌런 같은 면상으로 돌아왔다. 바쿠고 탈환전에서도 모습을 보였는데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타르타로스의 이름에 빗대서 "아무리 나라도 신에게 반역하는건 고생스럽다"고 푸념투로 말하는데 [[올마이트]]는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정해준다. 올 포 원은 그래서 뭘 원하냐고 묻는다. 이 면회가 그란토리노의 판단인지, 아니면 올마이트의 독단인지 묻고 또 왜 원 포 올을 쓰지 못하는 지금도 히어로 코스튬을 걸치고 있냐고 빈정거린다. 올마이트가 잘도 지껄인다고 쏘아붙이자 "오랜만의 대화"라며 기분이 들뜬 척 한다. 실제로 그는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 "인간"과의 대화는 오랜만인 듯 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1회 일치
          인턴제도 자체는 임시면허를 딴 걸 전제로 한 것인데, 본래 임시면허는 따기 어려워서 이번처럼 1학년들이 대거 습득한 예가 적다. 빌런 활성화 등 사회적 문제도 있기 때문에 1학년들의 인턴제도 참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여기에 대해 제도에 참가 중인 3학년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하는 식으로 많은 사전 준비 작업이 이루어질 텐데, 아무튼 어른들이 차근차근 준비해줄 거라고 설명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1회 일치
          물에 빠진 학생이 당황한 나머지 수질을 식초로 바꿔버렸는데, 무적의 올마이트로 식초에 잠수하는 바람에 눈이 따가워 눈을 묘하게 찡그렸다. 미도리야는 이때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나이트아이는 자신을 그저그런 팬인줄 아냐고 대꾸하지만 분명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걸 알고 있고 그걸 화제로 신나게 오덕 토크를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그들이 얽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한 건의 강도사고]]를 소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오버홀과 핫사이카이는 "빌런을 제압한 공로자"로 등장한다. 어떤 강도단이 트럭사고를 일으켜 민간인을 휘말려들게 했다. 그때 휘말려든게 이들. 그런데 오버홀의 "개성"으로 사상자는 제로에 강도단까지 제압할 수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1회 일치
          여전히 증거는 없다. 실제로 판매하는지 어떤지 증명할 수 없다. 총알은 현 단계에서는 매우 어중간한 성능. 하지만 이게 단지 시제품이고, 최근 사건들을 프레젠테이션 삼아 동료를 모으고 있는 거라면? 전국에서 동료를 모으고, 자금을 모으고, 총알의 완성형이 개성을 "완전히" 파괴한다면? 악행의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떠오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다 듣고 났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실제로 흘렸다. 다음날 키리시마는 새 진로희망 조사서를 받았다. 거기엔 깨끗하게 웅영고 지망을 적어넣었다. 이제는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보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정말이었다. 각오가 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회 일치
          말도 안 되는 터프한. 방패는 텐가이였지 않나? 배리어를 완충제로 썼다고 해도 상정을 한참 넘어선 강인함이다. 이제 손 쓸 방법이 없다. 지방은 다 태워버렸고 체력도 바닥. 패트껌은 정말로 어찌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는 다음에 이어지는 랏파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회 일치
          * 그리하여 "출향조"로 차출된 것이 토가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트와이스는 나이트아이 앞에 나타났다. "랏파"의 복제로 벽을 뚫으면서.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머리통은 엉망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1회 일치
          * 네모토의 개성은 "진실쟁이". 전직 사기꾼으로 그의 개성은 상대방의 본심을 강제로 끌어내며 때론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진실까지 끌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1회 일치
          * 크로노는 실제로 당했었지만 전투 중 오버홀이 몰래 크로노를 치료해놨다. 바로 눈을 뜨진 못했지만 오버홀의 외침을 듣고 깨어나 공격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보고 젊은 시절 자신을 닮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비슷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실제로는 학생 중에 있을지 모르는 "배신자"를 색출하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1회 일치
          * 키리시마는 애초에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공언하고 실제로 "남친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인테리어 2위"를 거머쥔다.
  • 난치병 모금사기 . . . . 1회 일치
          * 실제로 필요한 총액을 매우 낮게 계산하여, 모금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 남명학파 . . . . 1회 일치
         붕당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영남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이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이후 유영경등 일부 소북인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이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영경등의 탁소북이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이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 그 보답은 인조반정으로 돌아오지만....]
  • 남치근 . . . . 1회 일치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 넌센스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는 보통 '헛소리다'라는 말을 젊잖게 돌려서 할 때 사용한다. '그 말은 헛소리다'보다 ;그 말은 넌센스다'가 좀 더 젊잖고 세련되게 느껴지며 후자는 싸움이 날 가능성이 조금 적다. 물론, 실제로는 똑같은 뜻이다.
  • 농가 . . . . 1회 일치
         농가(農家) 전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농업 종사자 이외에도, 사고・행동 양식이 그렇다면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대라신선 . . . . 1회 일치
         신선이라는 만큼 일단 상당히 위대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애매한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실제로 사모아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면 상당히 고난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당시 일본은 [[GHQ]]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망명을 시도했다면 망명정부 설치 지시는 이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명 정도 규모의 망명정부는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백제 시즌 2--
  • 데드 스페이스 . . . . 1회 일치
          * 제로 G 점프: 컨트롤키
  • 도게자 . . . . 1회 일치
         본래 고대로부터 일본에서 귀인이 통행할 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인사를 했는데 여기에서 도게자가 유례하였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된 풍속이었다. [[다이카 개신]]에서 궤례를 폐지하고 중국식 입례를 도입하는 칙령을 내렸으나,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독이 든 성배 . . . . 1회 일치
          * 물론 실제로 이런 짓을 사용한다면 범죄행위. 또한 가톨릭 교리로서는 성혈을 오염시키는 행위이므로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이다.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1회 일치
          * 냉혈동물(Cold-Blooded) : 변온동물(endotherms)이라고도 한다.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없고, 대신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는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있다. 냉혈동물은 의미를 곧바로 연결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체온에 변동이 있으므로 몇몇 동물은 인간 이상으로 체온이 치솟기도 한다.
  • 디도(성우) . . . . 1회 일치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 디텍티브 침프 . . . . 1회 일치
         [[스펙터]]와 싸우기 위해 결성된 섀도팩트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으나 뛰어난 탐정기술과 천재 전술가로서의 실력을 보여주서서 블랙 앨리스와 나이트셰이드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몇몇 계획을 세웠다.
  • 딴따라 . . . . 1회 일치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반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상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식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 . . . . 1회 일치
         사람들의 인식은 더러운 것. 실제로도 더럽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1회 일치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 라오우 . . . . 1회 일치
         [[북두신권]]을 사용하는 인물로, [[켄시로]]의 사형. 동생이자 사제로 [[토키]]가 있으며, [[쌍둥이]] 형으로 [[수라국]]을 다스리는 [[카이오우]]가 있다. 후반부에는 라오우의 아들도 등장한다. 그 외의 혈연으로 여동생 [[사야카]]가 있다. 항상 타고 다니는 애마 흑왕호가 있으며, 자신의 사후에 흑왕호는 켄시로에게 물려준다.
  • 레어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상위등급인 '영웅'이나 '전설'이 있기 때문에 진짜 아무 가치도 없는 노등급 잡템보다 간신히 나은 수준이다.
  • 레이프 . . . . 1회 일치
         [[라틴어]] rapere 에서 왔다. 이 단어는 제압하다, 유괴하다, 뭔가를 강제로 끌고 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게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라틴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는 stuprare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원시 프랑스어(Old French) rapir를 거쳐서, 영국식 프랑스어(Anglo-French) raper 를 거쳐, 중세 영어에서는 rapen, rappen으로 쓰였고, 현대 영어로 rape가 된다. 노르만어, 스웨덴어, 저지 독일어 등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어 이들과의 연관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 로힝야 . . . . 1회 일치
         이러한 사건이 보도되어 타이 정부는 로힝야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이들을 이용한 불법조업 어선의 강제노동 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하고, 유럽연합은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 롬팩 . . . . 1회 일치
          * 세가 새턴 : 새턴은 구조적으로 롬팩만으로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발매된 소프트웨어는 없지만.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와 황제국의 일원들은 파르테비아 황제로부터 "허가할 수 없다"는 성의없는 답변서를 받는다.
  • 마기/315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그 말을 믿지 못하지만 백룡은 황제로 등극할 당시 신드바드에게 "언젠간 모든 국가를 없앨 테니 그때까지 황제국을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 마기/318화 . . . . 1회 일치
          * 의장인 신드바드는 뢰엠 제국의 국제동맹 가입 여부를 의제로 상정한다.
  • 마기/326화 . . . . 1회 일치
          * 듣고 있던 쥬다르는 자기는 그런 위화감 못 느꼈다고 빈정거리다 연백룡에게 "넌 마법사가 맞긴 하냐"고 디스 당한다. 알리바바는 매그노슈타르 때 같은 이변은 없다는걸 재확인하고 일단 안심한다. 그런데 연홍옥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알리바바가 말을 걸자 홍옥은 국제동맹을 이탈한 문제로 아직도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파장이 예상한 것 이상이라서 과연 잘한 짓인지, 앞으로 어찌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여러 사람과 토론해서 결정한 일이고 뢰엠과 귀왜국도 동조해준 걸 들어서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쥬다르는 그런 홍옥이 칠칠맞지 못하다며 역시 황제는 백룡이 돼야했다고 투덜거리다 나가버린다.
  • 마기/329화 . . . . 1회 일치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상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마기/332화 . . . . 1회 일치
          실제로 알라딘은 알리바바에게 "마기"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알리바바는 그 말처럼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이 노예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똑같은 인간으로 대했으며 누구든 똑같은 마음으로 포용했다.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대제국을 지키고자 거병하는 어머니까지
  • 마기/344화 . . . . 1회 일치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순식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 마로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에도 시대의 귀족 가문은 자택 내부가 사실상 치외법권인 것을 악용[* 막부 휘하의 관리들은 간섭하기 어려웠기 때문.]하여, 자택 내에 도박장 등을 영업하여 부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 각 영화와 드라마들은 슈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전제로 각각 개성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재수 없는 부자가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
  • 마블 퍼즐퀘스트 . . . . 1회 일치
          일정 이상 3성/4성 캐릭을 보유하게 되면 의외로 이들을 추가로 얻는것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특히 데드풀 일퀘로 확정적으로 특정 3성 카드를 얻을수 있게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스킬레벨을 올리고 레벨 상한선을 올려도 실제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ISO라는 게임내 화폐가 필요한데, 3성 히어로를 만렙까지 올리는데에 히어로 한명당 대략 10만 가까운 ISO가 필요하다. 각종 일퀘나 이벤트를 수행하면 하루에 3천정도는 얻을수 있으나, 이러한 획득속도보다 보유 히어로의 ISO요구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다.. 따라서 ISO를 생기는대로 투입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다가 이벤트시 버프를 받는 캐릭위주로 레벨을 올려주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소비이다.
  • 마재윤 . . . . 1회 일치
         마재윤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1년 6월부터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게임단에서는 즉각 방송을 중지하라 했지만, 마재윤은 이에 신경쓰지않고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방송을 진행하여,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시간당 돈을 받고 스타크래프트를 강의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사용자는 강제로 방송국에서 퇴출시키며, 금칙어까지 만들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2013년 2월 자신을 비방한 네티즌들을 다수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범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시청자 수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모든 금칙어와 제한을 해제하고 스스로 조작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 마철준 . . . . 1회 일치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마츠리 . . . . 1회 일치
         제(祭)는 제사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마츠리는 주로 신토 의식으로 각 지역이나 신사의 신(神)을 모시는 축제를 벌이는 형식인 경우가 많다. 현대에는 엄숙한 제사 의식이라기보다는, 마을 축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 맨불 . . . . 1회 일치
         괴력을 지닌 빌런. 원래 잡범이었는데 미스터 클라인이 특별한 혈청을 얻고, 이 혈청을 실험해볼 사람을 납치차려는 목적에 몇명의 범죄자들과 같이 고용되었으나 [[데어데블]]이 이를 저지. 결국 클라인이 그에게 강제로 혈청을 주사하면서 지금의 황소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버린 것이 데어데블 책임이라며 몇번이고 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1회 일치
         1446 년 11월, [[무라트 2세]]의 침공으로 [[헥사밀리온]]이 파괴되어, 모레아는 오스만에 유린되었다. 제국 말기에 반짝했던 모레아의 발전과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는 여기서 한계를 보이고 만다. 1448년 10월 황제 요하네스 8세 파레올로고스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로 선출되어, 1449년 1월 모레아의 수도 미스토라스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떠난다.
  • 목꺾기 . . . . 1회 일치
         실제로 하려면 팔 힘이 매우 좋아야 할 것이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1회 일치
          * 상대가 트집잡아서 해오는 요구를 액면 그대로 파악하지 말고, 상대가 실제로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파악하도록 노력한다.
  • 문무왕 . . . . 1회 일치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 문문 . . . . 1회 일치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 문연주 . . . . 1회 일치
         * [[2016년]] [[MBC가요베스트]] 대제전 인기상 수상
  • 문지애 . . . . 1회 일치
         * [[MBC]] 《[[불만제로]]》
  • 미니게임기 . . . . 1회 일치
         흔히 그 작은 게임기를 생각하겠지만, 여러 희귀종이 있었다. [[플레이 스테이션 2]] 게임을 기간제로 하게 하는 게임기라거나, 조금 큰 게임기라거나. 게임기 2개를 이어서 네명이 동시에 할 수 있게 한 버전도 있었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1회 일치
         일설에는 저자는 이슬람교도 출신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 전성기에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하게 되었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바르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의 이슬람교 박해에서, 일종의 종교적 '저항문학'으로서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1회 일치
          * [[바이오하자드 제로]] (2002)
  • 바키도/116화 . . . . 1회 일치
          * 도쿄돔 지하의 지하격투장. "지상최강을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회원제로 은밀히 운영되고 있음에도 항상 초만원을 이룬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과거의 무사도는 주군을 위해 죽는 걸로 완성됐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신과 선량한 이웃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 바키도/138화 . . . . 1회 일치
          *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에어참격" 방송이 나간지 얼마 뒤. 경시청엔 당시의 아나운서가 참고인으로 불려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그는 "베어졌다고 느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그 뒤에 실신해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는 "베인 뒤의 뒷일"은 어떻게 됐냐 질문에 조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 박경석(1933) . . . . 1회 일치
         1933년 [[연기군]] 조치원읍 본정(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원리 88번지)에서 출생 하였다. 이후 [[대전고등학교]] 31회로 졸업하고, 17세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꾸며,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이때 17세라는 나이로 인해 자격 미달이 되었지만, 같은 나이의 당시 권력자 [[원용덕]] 장군의 자제 원창희 씨의 육사 입교 압력이 육사 심사위원들에게 들어오자--완전 개꿀 금수저--, 형평성 문제로 덩달아 박경석 생도도 합격되었다. [[http://blog.daum.net/koreanmarinecorps/17321|국방일보 박정인 장군 회고록에서 발췌한 원창희, 박경석 생도 합격 비화]]
  • 박상면(배우) . . . . 1회 일치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태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남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남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 박세웅(1995) . . . . 1회 일치
          * 오랜만에 등장한 [[경북고]] 우완 에이스였던지라 눈여겨 보던 [[삼성 라이온즈|삼성]]팬들이 많았고, 그 당시부터 계속 삼성 팬들에게 인기가 유난히 좋다. 실제로 [[롯데 자이언츠|롯데]]로 트레이드 되었을 당시 삼성 팬들이 각종 게시판을 도배하며 박세웅을 달라고 했을 정도. ~~그 와중에 [[르브론 제임스|박세웅의 유니폼을 불태운]] [[kt wiz|KT]] 팬도 있었다.~~ ~~그리고 박세웅이 잘 할 때마다 [[이수민(야구선수)|이수민]]은 가루가 된다~~ 게다가 롯데 이적 초기엔 삼성 팬들의 설레발이라며 박세웅을 까던 롯데 팬들도 있었을 정도(...). 한편 삼성 팬들은 아직도 언젠가는 삼성으로 올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 박세직 . . . . 1회 일치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 박재옥 . . . . 1회 일치
         어쨋든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훨씬 덜 알려졌기 때문에, [[박근혜]]를 [[박정희]]의 장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실례로 탄핵 직후 박근혜의 인생을 재조명한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의 기사에서도 박정희의 첫딸이라고 했다. 이는 명백한 오보로, 박재옥은 혼외자식도 아닌 공식적인 결혼 관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즉 법적으로든 실제로든 박재옥이 장녀이고 박근혜가 차녀이다.
  • 박창달 . . . . 1회 일치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 박홍 (신부) . . . . 1회 일치
         1994년 대한민국은 [[우루과이라운드]] 비준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농민과 대학생등은 [[우루과이라운드]]가 통과되면 농가 몰락으로 이어진다며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과 농민들의 반대시위가 증폭되며 야당까지 반대에 가세하며 [[우루과이라운드]] 통과가 불투명해 보였다.<ref>{{뉴스 인용
  • 방실이 . . . . 1회 일치
          * 몇 년 뒤 같은 팀원이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자 서울 시스터즈는 공식 해체되었고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하였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상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과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남편은 [[일본인]]이었다고...]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 배빵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내부 장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하지 말자. 살인으로 경찰서간다.
  • 백남순 (1929년) . . . . 1회 일치
         <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80906242 북한, 내각제로 바꾸면서 부처 통폐합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 백진희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2008년이지만 영화가 2009년 개봉해 2009년부터 활동하였다..-->
  • 벼랑개 링링 . . . . 1회 일치
         마키 씨는 건강 문제로 양육을 포기하였으며, 도쿠시마 현 동물애호관리센터에서 길러지게 되었다.
  • 변성환 . . . . 1회 일치
         구상범이 건강상의 문제로 [[풍생고등학교]] 감독직에 복귀하면서 감독대행으로 [[강원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지휘하게 되었다.
  • 보나 . . . . 1회 일치
          * 상당한 달변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룹으로서 나선 인터뷰 자리에 대표로 인터뷰하거나 예능에 많이 출연한다. 방송을 보면 상당히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는데, 팬싸나 다른 데서 실제로 대화를 나눈 팬들에 의하면 말할 때마다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흡사 세일즈맨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에도 나서는 듯. [[안유진(IZ*ONE)|엑시 닮은 소속사 후배 연습생]]도 보나같이 입담이 꽤 좋은 편이다.--그런데 [[안유진(IZ*ONE)|렌즈 후배]]는 보나와 달리 [[노안]]이다--
  • 봉준호 . . . . 1회 일치
         1993년 6mm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여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상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영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1회 일치
          * 노엘도 아무 생각없이 공격조를 자원한건 아닌데, 그녀가 치고나가면 반드시 솔리드가 쫓아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1회 일치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반칙"이라며 반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반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순식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검은 폭우단에 감사를 표하면서 대사제로서 소원을 이뤄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 블리치/676화 . . . . 1회 일치
          * 우라하라는 아스킨이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라고 보는데 실제로 아스킨은 "유하바하 가 삼계를 부수고 만드려는 세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로 움직이고 있다. 아스킨은 "너도 같은 타입"이라며 회유하려 하는데 우라하라는 "과학자라면 직접 만들어서 본다"며 거절한다
  • 블리치/678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우라하라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서 데려왔을 뿐, 실제로 어떨지는 몰랐다.
  • 산바람 . . . . 1회 일치
         입선 이전에는 [[미얄 시리즈]]에 나오는 [[말뚝이(미얄 시리즈)|말뚝이]] 탈을 실제로 만들어 사인회에 난입한 전적도 있는듯.
  • 서림 . . . . 1회 일치
         명종 17년 1월 기사에서 율이(栗伊)라는 도적이 서림이 다시 임꺽정과 연락하였다고 하여, 명종은 서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신들과 논의하게 된다. 대신들은 대체로 서림이 도적으로서 흉악한 자이지만, 체포된 뒤로는 임꺽정 일당을 잡는데 협력을 많이 했고 정보를 제공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서림을 잡지 않았다면 '가짜 임꺽정'에 몇번이나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서림을 포도청에 소속하여 투포사 [[남치근]]의 감시 하에 있도록 하였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다만 전성기 시절에 관한 부분은 더욱이 자세히 봐야 하는것이 서영춘이 구봉서, 배삼룡보다 데뷔 시기나 주목받은 시기가 확실히 눈에 띄게 늦은 편이다. TV 방송 이전 악극단, 영화 시절 그리고 웃으면 복이와요 초창기 시절만 보더라도 메인은 서영춘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이었다. 실제로 웃으면 복이와요 초기 오프닝을 보면 배삼룡, 구봉서의 이름이 맨 처음에 등장하고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오프닝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youtu.be/CxMGWjLKOYA|1969년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 오프닝 링크]]
  • 서울특별시/인물 . . . . 1회 일치
         * [[샤크제로]] - 성동구
  • 서정환 . . . . 1회 일치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 서현진 (방송인) . . . . 1회 일치
         * 《[[불만제로]]》 시사/교양 진행
  • 소격서 . . . . 1회 일치
         도사를 뽑을 때는 《영보경(靈寶經)》ㆍ《과의(科義)》ㆍ《연생경(延生經)》ㆍ《태일경(太一經)》ㆍ《옥추경(玉樞經)》ㆍ《진무경(眞武經)》ㆍ《용왕경(龍王經)》 등을 교제로 사용하였다.
  • 소명(가수) . . . . 1회 일치
         * 2016년 [[MBC가요베스트]] 대제전 인기상 수상
  • 스트리트 파이터 2 . . . . 1회 일치
         보통 한 스테이지는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게임 도중 다른 플레이어가 난입, 먼저 하고있던 플레이어와 대결을 벌일수도 있다.
  • 스틸오션/일본 . . . . 1회 일치
         >A-30으로도 알려진 카와치급 전함은 일본의 첫 반(半)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함포는 305mm 구경이지만 예산 문제로 전(前)드레드노트급처럼 두 종류의 다른 주포를 장비하는걸로 변경되었다. 카와치는 1918년 발생한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고, 세츠는 워싱턴 해군 조약에 의해 비무장 표적함으로 개장되었다. 세츠는 1945년 당시 미군 항공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1945년,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보게 되자 공화파 망명자들은 굉장히 기뻐하였는데,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서 프랑코 정부가 무너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시즘 세력에 점령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해방되었고, 나치 독일과 동맹하던 파시즘 정권은 패망하는 나치 독일과 함께 붕괴하였다. 스페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던 망명정부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동유럽 지역은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공산화 된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지속했고,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게릴라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귀환하지 못했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회 일치
          * 학생들이 특훈에 지키자 히사코가 피로회복제로 준 것이 오미자차.
  • 식극의 소마/185화 . . . . 1회 일치
          * 냉정한 말투 때문에 차가운 사람인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딸바보에 애처가.
  • 식극의 소마/196화 . . . . 1회 일치
          * 죠이치로가 대표로 선발된 소식은 토오츠키 학원 전체에 퍼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출전을 축하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선출제로 뽑혔으니 선출의원들에게 꼬리쳐서 얻은 자리가 아니냐고 시비를 건다. 특히 그 중심에는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이 있는데 집안의 위신 때문에라도 십걸에 꼭 들어야 했지만 죠이치로 때문에 밀려난 전력이 있다. 그는 앞장서서 죠이치로를 깎아내리며 "출전권을 걸고 식극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1회 일치
          * 각 경기는 대전카드를 뽑아 거기에 적힌 주제로 대결하는데 허무하게도 소마가 뽑은 카드는 네네의 특기 중의 특기인 소바.
  • 식극의 소마/220화 . . . . 1회 일치
          * 그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메기시마는 실제로 "라면 마스터"라는 직함을 가진 요리사. 바깥의 시끄러운 지저귐 따위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회 일치
          * 소마가 아직 멤버를 모집하고 있던 시점. 제일 먼저 연락이 닿은건 [[잇시키 사토시]]였다. 소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무리라는 건 알지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하려는데, 잇시키는 벌써 홋카이도에 와있다며 대답할 필요도 없는 문제로 취급한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1회 일치
          그들이 건네준 신문에는 척봐도 [[나키리 아자미]]가 흉계를 펼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진정한 미식가를 표방하는 그 원칙을 대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급시험이 진행됐던 홋카이도가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대고 실제로는 각 식당들을 센트럴이 정한 원칙에 따라 요리하게 시키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유통루트에 손을 대서 식자재를 납품 받는 것 조차 막는다. 이런 횡포로 인해 벌써 폐점의 위기에 처한 점포가 부지기수. 듣고보니 소마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전에 [[츠카사 에이시]]가 그렇게 말했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허둥대는 반역자 동료들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미마사카의 얼굴을 보라면서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마사카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도 대단히 여유로운 웃음을 띄고 있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회 일치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츠카사는 "지금까지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론 3학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신하고, 실제로 센트럴의 시식이 시작되자 전세를 급변한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그것도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 느낀다. 에이잔이 시나린 성분을 노리고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썼지만, 그 경우 자기 요리의 맛도 무너지는게 당연지사. 하지만 에이잔의 요리는 완벽한 맛을 연출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잇시키 사토시]]는 그 점에 대해서 "경험치"라고 추측한다. 에이잔의 전공분야는 "프로듀스". 많은 식당을 프로듀스하면서 경쟁업체의 "맛"을 "지우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치가 식극에서도 발휘됐을 거라는 것. 실제로 [[나키리 아자미]]가 에이잔을 등용한 것도 그런 점을 높이사서였다.
  • 신동주(야구) . . . . 1회 일치
         2014년부터 정식 코치가 되어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결정됐는데, 실제로는 1군 선수단과 동행 중이다. 2015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김한수]]와 같이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 아워맨 . . . . 1회 일치
          [[제로 아워]]에서 사망.
  • 아테지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안효민 . . . . 1회 일치
         * [[리그 오브 레전드]] - 킨드레드 (늑대), 워윅 (리메이크), 메카 제로 사이온 스킨, 요릭 (리메이크), 갈리오 (리메이크)
  • 알천 . . . . 1회 일치
         족보는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 이후, 알천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소벌도리를 문열왕(文烈王)에 봉했다고 전한다. 태종무열왕 3년에 알천은 선조 소벌도리가 꿈에서 지목한 진주 도사곡((塗斯谷, 현재 진주시 [[상대동 (진주시)|상대동]])으로 이주해 일가를 이뤘다. [[조선]]시대 중기 홍문관, 예문관의 [[대제학]]을 역임한 문신 양곡 [[소세양]]과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문신 곤암 [[소세량]]은 그의 먼 후손이었다.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선학산록(仙鶴山麓)에 안장되었고, 사후 대각간(大角干)을 지낸 [[김인문]](金仁問)이 그의 비문을 찬하였으나 실전되었다. 그 뒤 1977년 전국 소씨 종친회에서 비석을 재건하였다.
  • . . . . 1회 일치
          * 암이 진행되어 신경을 침식하기 시작하면 극한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 고통은 [[모르핀]]과 같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에게는 무제한적인 모르핀 사용이 허가된다.
  • 애니 일본어 . . . . 1회 일치
         이는 한국 성우들도 마찬가지. 성우 발성훈련을 받은 목소리는 일상회화에 비해서 청취하기는 좋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 양예나 . . . . 1회 일치
          * 한 살 아래 동생인 멤버 [[이진솔]]과 친한 듯하다. 실제로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진솔을 챙겨주거나 진솔과 투닥거리는 영상들이 있다. ~~같이 헬륨 가스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APRIL 멤버 중 가장 친동생 삼고 싶은 멤버로 이진솔을 꼽았다. 스킨십하는게 좋다며. --[[이진솔]]이가 완강하게 거부(?)한건 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1회 일치
         이걸로 적을 잡으면 죽지 않고 바닥에 누워 끙끙거린다. 설마 아무것도 모르는 경비병을 붙잡아 보스턴 돌바닥에 [[파일 드라이버]]를 먹여도. 이 때문에 완전 동기화 과제로 살해 제한이 걸린 임무에서 사용된다.
  • 에릭 (가수) . . . . 1회 일치
         * [[2007년]] UGIZ, 코카콜라 제로, It's SKIN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1회 일치
         쇠락하던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벨카 공국은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벨카 공국은 자국 영토에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회 일치
         자세한 내용은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줄거리]] 페이지 참조. 스포일러 주의.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마레 제국에서 엘디아 인이 박해받는 모습은 [[게토]]에 강제로 가두거나, 함부로 살해하는 등,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을 박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 여태조 . . . . 1회 일치
         제4차 북속시기 이후 재건된 대월 여왕조의 초대 황제로 본명은 여리다.
  • 영국 요리 . . . . 1회 일치
         넷상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악평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 요리에 대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잘못된 험담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영국에서 여행한 사람들은 영국 요리에 극찬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을 여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편견에 영향을 받아 이를 반박하여, 영국 요리의 평가는 넷 상에서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 영양군 . . . . 1회 일치
          * [[이재오]] - 프로필에는 [[강원도]] [[동해시]]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태어난 것뿐이고 실제 어려서부터 영양에서 살았고, 심지어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프로필 바꾼것도 TK이미지 벗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매일신문]]이 이재오가 네이버 프로필 출생지를 영양에서 동해로 바꾼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였으니 영양 출신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 사람이다.
  • 영주시 . . . . 1회 일치
          * [[최교일]] : 변호사, 국회의원. 탄핵문제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 시내 최교일의 사무실 앞에서 촛불집회가 자주 일어났다(...).
  • 영창대군 . . . . 1회 일치
         흔히 야사에서는 구들장에 쪄죽였다고 알려져있으나, 실제로 실록에서도 정항이 영창대군을 쪄죽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인조실록에 가면 이정표가 양잿물을 먹여 죽였다고 나온다(...)~~사망전대~~
  • 영천시 . . . . 1회 일치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불로장수, 건강증진에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복용하면 발얼을 하여, 열을 발신시키기 위해서 돌아다니며 '행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어서 열을 식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를 한식산(寒食散)이라고 했다.
  • 오영실 . . . . 1회 일치
         1987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아나운서 15기로 아나운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97년 [[육아]] 문제로 KBS를 퇴사했다. 그 이후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 오이다시베야 . . . . 1회 일치
         이러한 풍속 자체는 과거부터 공공연하게 있어왔지만, 용어 자체는 2012년 12월에 [[아사히 신문]]이 존재를 알리고 큰 논란이 있었다. 2013년 1월에는 [[후생노동성]]에서 퇴직 강요 문제로 조사하여 여러 대기업에서 이러한 부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 오칸 아트 . . . . 1회 일치
         집안에 장식하여 기괴한 분위기를 돋구거나, 아이들에게 강제로 사용하게 하여 수치심을 주는(!?)데 사용한다.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1회 일치
         사실 사람을 겁 줄 뿐. 실제로 해를 입힐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한다.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 [[늪]]의 수면에 떠있는, 섬 같은 것으로서,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의 덩어리이다. 위에는 식물이 자란다.
  • 우효광 . . . . 1회 일치
         국가대표 운동선수로 활동하던 우효광은 [[2002년]] [[7월]], 우연하게 사촌누나의 권유로 TV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지성[*2 청춘지성 참가로 연예계로 데뷔하게 된다. 우승상품으로 심천의 아파트가 수여되었다. 배우가 되기 위한 자금 마련 및 활동비를 위해 처분했다.]'에 참가하여 우승했다. 같은해 그는 연기 오디션 우승에 이어 음악 콘테스트에도 참가하여 2002년 10월, 아시아 신인 음악 콘테스트에서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했다. 싱가폴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유명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O.S.T에도 참여하며 가수와 작곡가로도 활동한다. 2003년, 명문예대인 중앙 희극학원에 들어가 2004년, 드라마 주연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배우로 드라마를 해오며,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드라마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복지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익과 개혁을 주제로 하는 극에 자주 출연하고 있으며 아동복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기부 및 자원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 워터보딩 . . . . 1회 일치
         미 법무부가 CIA에 적어보낸 메모에서는 한번에 40초 이상 하는걸 금지했다. 실제로는 30분간 워터보딩을 지속한 경우도 있다고한다.
  • 원 포 올 . . . . 1회 일치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은 페이크고]] 실제로는 '''「개성」을 양도하는 「개성」.''' 사람의 사람을 거쳐 성화처럼 내려온 힘과 가능성. 즉 한 사람의 몸에 여러 사람 몫의 힘이 담겨져 있는 개성이다. 그리고 발휘되는 힘 자체는 사실.
  • 원피스/823화 . . . . 1회 일치
          * 일행이 식사 문제로 소란스러운 사이, 페드로는 신문을 보는데
  • 원피스/838화 . . . . 1회 일치
          * 루피는 가짜가 피까지 토했었다고 하는데, 그건 크래커의 장인정신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냥 잼.
  • 원피스/842화 . . . . 1회 일치
          * 이건 붓기를 빠르게 빼는 팩인데 몸의 정상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방식. 따라서 실제로 상처가 낫는건 아니고 오히려 몸에 나쁘다.
  • 원피스/846화 . . . . 1회 일치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남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상황은 좋지 않다.
  • 원피스/847화 . . . . 1회 일치
          * 사실 이들이 잡힌건 작전의 일환이다. 쵸파는 일부러 "해비 포인트"로 거대화된 상태로 잡혔는데 변신만 풀으면 바로 쇠사슬을 풀 수 있다. 게다가 어제로부터 시간도 많이 지나서 "몬스터 포인트"를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잘만되면 브륄레를 때려잡을 수도 있는 것. 쵸파는 침착한 태도로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
  • 원피스/856화 . . . . 1회 일치
          쵸파는 그 장소 보다는 둘이 싸웠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다. [[징베]]는 상디가 빈스모크 일가로서 온 이상 매우 복잡한 처리에 놓였을 것이고 간단히 돌아갈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지만 상디를 정말 데려갈 거라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징베는 이미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모인 다음에 밝힐 생각이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냥 말한다. 사실 그는 [[페콤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음모"에 휘말려 바다에 떨어져 상어밥이 될 처지였던 걸 징베가 구해준 것. 페콤즈는 빅맘의 다과회가 실제로는 상디를 포함한 빈스모크 일가의 학살극이라는 걸 전한다.
  • 원피스/858화 . . . . 1회 일치
          벳지는 시작부터 위협적으로 나온다. 부하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딱딱한 태도다. 상디는 거기에 딴죽을 건다. 자신이 죽었다간 식 자체가 없어지니 찬스가 제로라는 것. 게다가 그는 개시 2시간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것이다. 벳지는 유감이라며 그 말에 동의한다. 징베는 그렇게 밀당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끼어든다. 그는 루피에게 직감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떻지 의향을 묻는다.
  • 원피스/870화 . . . . 1회 일치
          * 나미의 논리정연한 설교는 더 이어졌다. 응전할 틈이 있다면 모두가 탈출할 방도를 생각해야 하며 애초에 싸울 걸 전제로 했으면 [[조로(원피스)|조로]] 일행까지 전부 데리고 왔을 것이다. 포네그리프 확보의 일등공신인 [[브룩]]도 나미를 편든다. 그는 나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어디까지나 소수 인원이었기에 침투가 가능했고 지금은 전원 무사히 와노쿠니로 가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원피스/872화 . . . . 1회 일치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1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100만으로 의뢰를 받겠다고 하지만, 30만 정도 밖에 낼 수 없다고 해서 그걸로 의뢰를 받는다. 단, 일의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3일이 지난 뒤, 우편함의 우편물이 모두 없어지고 새댁의 우편물만 남아 있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아줌마는 새댁을 우편물 도둑으로 몰고가고, 게다가 새댁의 집 열쇠나 차 열쇠가 모두 접착제로 붙여져 있었다. 새댁은 거의 미칠 지경.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회 일치
         핸슨은 킹돔[* King Dome. 시애틀에 있던 종합경기장. 안전 문제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으로 대피한 민간인들의 구조를 주장한다. 배넌은 후퇴하는 것도 바쁘다며 이를 거부하지만 민간인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핸슨의 반발에 파커에게 구조를 맡긴다. 파커는 부대를 이끌고 킹 돔으로 향한다. 킹 돔 앞 주차장에서 다수의 소련군을 발견하지만 파커의 부대는 킹 돔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헬리콥터로 도착한 증원군이 포격으로 킹 돔이 무너지기 직전에 민간인들을 구출해낸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1회 일치
         대학생들은 "경찰이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A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동행했던 한 학생은 "경찰 질문에 여성이 '생활지원금을 받기로 했다'고 답했다"며 "경찰은 배후가 누구인지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건국부터가 구 상나라+주왕실 유력왕족으로서, 상당히 권위가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실제로 위는 춘추시대 초기는 주요 유력국가로서 공(公)을 칭할 정도[* 후대에는 아무나 공을 칭하지만, 본래는 공(公)도 매우 권위 있는 칭호였다.]의 강국이었다. 비록 위의공 시대에는 그 위세가 좀 쇠퇴하였으나, 그렇다고 해도 제후국들 가운데서 중상급, 상급 이상의 국력[* 춘추시대 초기에는 100개가 넘는 제후국이 있어 후대에는 이름도 모르고 역사도 불명한 작은 제후국도 많았다. 이 당시는 위나라는 크고 강력한 국가 축에 들었음은 분명하다.]을 가진 유력 제후국이었던 위나라가 '''이민족에게 갈려나가버리고 군주가 시체도 못 챙길 정도'''로 처참하게 패망했다는 것은 당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 위키규정 . . . . 1회 일치
          * 개인 사용자를 주제로 한 문서는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 유령의 집 . . . . 1회 일치
          * [[아즈망가 대왕]] : 문화제로서 등장한다.
  • 유로달러 . . . . 1회 일치
         1950년대,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무역적자의 형태로 전 세계로 '수출'했다. 그 결과 막대한 달러화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 누적되었다. 1971년 [[닉슨 쇼크]]로 전 세계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자, 이러한 막대한 역외달러를 이용한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역외달러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은 당시 경제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였으며,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파리]], [[암스테르담]] 등이 역외달러 금융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프랑스의 BNP 파리바, 네덜란드의 ABN AMRO 등이 주요한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따지고 보면 서형욱은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답변 이후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웃으면서도 당황했고, 서형욱은 '저는 글래머라고만 했지, 가슴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말했다. 이에 윤태진은 '글래머가 가슴 아닌가요? 그럼 엉덩이인가?' 라고 말하였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서형욱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은혼/580화 . . . . 1회 일치
         * 지금까지는 카무이와 우미보즈의 대립이 "부모 죽이기"라는 야토의 옛풍습에 따른 걸로만 알려졌었는데, 실제로는 코우카에 얽힌 애증 때문이었다.
  • 은혼/599화 . . . . 1회 일치
          * 수뇌부의 변변치 못한 지능지수 때문에 토론은 어느새 다르빗슈의 배우자 문제로 번져간다.
  • 은혼/602화 . . . . 1회 일치
          * 자작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원상은 원래 화제로 돌아간다.
  • 은혼/609화 . . . . 1회 일치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가 에도성을 때려부순건 눈축제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지나가는 드립이 아니라 정말로 은혼 세계관의 정사. 그래서 그런지 적들도 겐가이포가 나타나자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라고 생각해서 긴장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긴토키는 실제로 완성도 높게 눈조각을 만들었던게 증명됐다.--완성도 높은데 어이!--
  • 은혼/612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하타 황태자를 인질로 잡고 강제로 황태자 일행의 협조를 받아내는데.
  • 은혼/623화 . . . . 1회 일치
          * 타츠고로는 오토세가 일하는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던 놈들을 정리하던 참이다. 녀석들은 지로쵸의 이름을 팔던 조무라기들인데, 그래서 지로쵸의 부하인줄 알고 마침 나타난 지로쵸에게 "부하관리 똑바로 해라."고 경고한다. 오토세가 쓰러진 놈들은 멋대로 그의 이름을 팔 뿐, 실제로는 부하도 뭣도 아닌 건달들이라 해명한다.
  • 은혼/646화 . . . . 1회 일치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상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남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 은혼/647화 . . . . 1회 일치
          * 사루가쿠는 아직도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적들을 쓰러뜨리면서 신스케의 대답을 곱씹었다. 알려줄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존재만으로 전장을 바꾸는 영웅이 실은 이미 서있을 수도 없는 중상인데 알 필요가 없다. 신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몸으로라도 여전히 서있는, 서있으려는 영웅들이 그렇게 말했다. 가츠라, 다츠마, 그리고 신스케. 그 자신들은 실제로는 영웅도 뭣도 아닌 보통 사람에 불과하면서. 단지 그들을 믿고 싸워주는 이들을 위해 영웅으로서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자들.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아네 모네 자매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 그런 것과 별개로 사명을 다하는 자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문이 붕괴하도록 한 것도 원래는 우츠로의 복안인 듯. 현장에서 조작하던 부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의 붕괴와 함께 이들도 깨긋하게 사망. 우츠로는 우주를 향해 솟구치는 아르타나를 "용"이라 부르고, 실제로 우주의 자작 제독도 그 모습을 용에 비유했다.
  • 의성군 . . . . 1회 일치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 의식 높은 계 . . . . 1회 일치
          *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자기계발에 노력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내는데 골몰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분위기일 뿐이지, 실제로는 대단한 노력도 하지 않고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
  • 이강덕 . . . . 1회 일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고종 32) 대구 공산의 소학교에 입학하고, [[1901년]](광무 4) 공산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부]]로 상경, [[경성부]] [[기호중학교]](畿湖中學校)에 입학했다. [[1905년]]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해 [[11월 17일]]의 [[을사 보호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으나 조약이 강제로 통과되자, 관직의 꿈을 접고 교육계에 몸담았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오라 하였는데 이는 나라 잃은 나는 못난 이라는 뜻이었다.
  • 이규환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1944년]]부터 강제징용으로 노역을 하던 중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라디오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을 영화화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 후 연출한 《춘향전》(1955)은 전후 대한민국 영화 부흥의 기폭제로 평가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영화의 경향은 민족주의, 서정적 리얼리즘, 향토색으로 주로 설명된다.
  • 이기택 . . . . 1회 일치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 이름뿐인 관리직 . . . . 1회 일치
         [[일본]]의 노동법에서 관리직은 잔업수당 등의 할증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을 악용하여, 직함만 관리직으로 하고 실제로는 임금 등을 지불하지 않는 직원.
  • 이만섭 . . . . 1회 일치
         [[1980년]]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자 과거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출신과 [[유신정우회]]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제11·12대 국회의원에 연속으로 당선되었고 [[1985년]]에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의 총재를 지냈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알아인 FC와 계약만료후 군 문제로 국내 복귀를 추진중이었다. 많은 팀들에서 오퍼가 왔으나 최종적으로 친정팀인 포항스틸러스와 황선홍 감독의 FC 서울이 경쟁 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52&aid=0000000664 [서호정의 킥오프] FC서울은 어떻게 이명주를 잡았나?]</ref> 2017년 6월 19일 [[FC 서울]]로의 이적이 공식 발표 되었으며 계약기간은 6개월이다.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허나 이런 훈훈한 일화도 얼마 못가 [[포스코]] 비리 연루 의혹을 받으면서 빛이 바랬다.(...) 결국 2016년 1월 25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청]]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으며, 결국 2016년 2월 1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포스코 관련 비리 때문에, 새누리당이 인명진 비대위체제로 넘어간 뒤 2017년 1월 18일에 당에서 '''제명되었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1회 일치
          * 2018.02.06 새벽 이상민하고 전여친 문제로 인하여 싸웠다.
  • 이석훈 . . . . 1회 일치
         ||<#0D3EA3> {{{#ffffff 종교}}} ||<(><rowbgcolor=#ffffff> [[개신교]][* 6집 앨범 끝부분에서 성경구절을 언급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드러냈으며 실제로 2009년 10월에는 줄라이 프로젝트라는 그룹의 CCM앨범에도 참여했다.] ||
  • 이선희 . . . . 1회 일치
         * [[12월 30일]] [[MBC 가요대제전]] 최고 인기 가요('알고 싶어요') 선정
  • 이수민(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1회 일치
          * 유연성이 상당히 뛰어난데, 실제로 춤을 출 때 유연성이 요구되는 동작들을 자주 선보이기도 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에서는 고난이도의 다리 찢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 이승엽 . . . . 1회 일치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 이시영(배우) . . . . 1회 일치
         2010년도 복싱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처음으로 복싱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비록 드라마 제작이 무산되었긴 했지만 '뜨거운 형제들'에선 [[권투]]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복싱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소속사에서는 이시영이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드라마가 엎어졌다는 얘기를 못 꺼냈을 정도라고. 많은 사람이 취미인 줄로만 알았으나(...)
  • 이인영(정치인) . . . . 1회 일치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 갑에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경쟁자로 불린 새누리당의 [[이범래]] 역시 20대 총선에서 타 지역구로 옮길 것을 주문 받았는데, 이범래는 실제로 지역구를 옮겼고 낙천했다(..)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 [[tvN]] 《[[푸른거탑 제로]]》 중대장 이장운 (《[[푸른거탑]]》 대대장 이장훈의 쌍둥이 동생) 역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2010년 판 아내의 유혹이었던 《[[웃어요 엄마]]》에서는 정교빈 포지션인 신머루 역을 맡아 아내의 유혹에서 정교빈이 먹었던 욕을 자신이 도로 흡수했다.[* 실제로 웃엄 출연 당시 자기 어머니(실제 배우의 어머님)한테서 "나쁜 놈"이라고 욕먹었다고 한다.].
  • 이정길(영화배우)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하도 [[회장]] 연기를 많이 해서 '회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칭이 있는데, 실제로도 한 신재생 에너지 [[회사]]에서 회장은 아니지만 [[부회장]]으로 일하고도 있다고 한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3032970|참조]].
  • 이지은(2000) . . . . 1회 일치
         8화는 2차 경연을 주제로 여자연습생들이 포메이션 배틀을 준비하여 공연하는 장면이 잡혔다. 데뷔조 멤버들이 5곡을 지정한 후, 댄스, 보컬, 랩으로 각 멤버들을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 이태현(씨름) . . . . 1회 일치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 이택희(정치인) . . . . 1회 일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불법으로 연행되어 고문당하고 강제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그리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 인종개량 . . . . 1회 일치
          * 혼혈을 통한 인종개량 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사실 근대 일본에서도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었고, 실제로 정책적으로 옮겨진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와전되었는지 한국 인터넷에서는 일본인들이 개화기에 '혼혈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펼쳤다는 루머가 퍼져 있다.[[http://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363548&rtn=%2Fmycommunity%3Fcid%3Db3BocWlvcGhyM29waHFnb3BocW5vcGhxb29waHFxb3Boc2ZvcGhza29waHNmb3Boc2g%3D (참조)]][[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073574 (참조)]]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 할리퀸은 3000년 전 성전에서 영웅왕으로 칭송 받았던 두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 브리타니아를 배신한 거냐고 묻는다. 그로키시니아는 대답 대신 킹과 디안느가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를 증명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들이 주려는 시련은 분명 큰 성장으로 이어지지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라 한다. 강제로 시키진 않겠지만 충분히 숙고한 다음 선택하라고 권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1회 일치
          * 해골병들의 힘이 보통을 넘게 되자 실제로 일행은 당황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해질 데로 강해진 일행의 적수는 아니었다.
  • 일장청 호삼랑 . . . . 1회 일치
         포로로 잡히고, 가족은 몰살당하고,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 신세지만 왕영과 사이는 좋았던 듯. 후반부에는 왕영과 함께 출진하는 장면이 많고, 왕영이 쓰러졌을 때는 분노하여 돌격하는 묘사도 나온다.
  • 자시키로우 . . . . 1회 일치
         하지만, 당시는 유교 윤리가 확립되어 하극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영주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도 없었다. 가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안 되면 부적절한 영주를 붙잡아 자시키로우에 몇달간 가둔 다음 선정을 베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영주의 행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은거를 시켜서 축출하게 되는 것이다.
  • 잘츠부르크 . . . . 1회 일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 영화를 주제로 한 투어 코스가 있다고 한다.
  • 장은숙 (성우) . . . . 1회 일치
         * 《[[제로의 사역마]]》 ([[애니맥스]]) - 카틀레아
  • 장정희(배우) . . . . 1회 일치
          * [[2007년]] [[MBC]] 그라운드 제로
  • 장헌식 . . . . 1회 일치
         [[1907년]] [[7월]] [[역대 한성판윤|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부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7월]]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였을 때는 [[훈3등]] [[팔괘장]]을 받았고, 1907년 10월 한성부민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윤]]으로 근무할 때인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하자 이토 추도회를 여러 차례 여는 등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전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 전가의 보도 . . . . 1회 일치
         그러나 이렇게 귀한 가치가 있는 반면,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전가의 보도였다. 가문 대대로 물려줄 정도의 보도라면 가치가 매우 높지만, [[일본도]]는 관리하기가 어렵고 실전에서 사용하면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에는 높은 가치가 있는 만큼 실제로 사용하다가 손상을 입히면 그만큼 깍여나가는 피해액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 전상욱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6 시즌 중 성남은 전상욱이 건강상의 문제로 갑작스럽게 그라운드를 잠시 떠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전상욱은 5월 1일 광주전에 [[김동준 (축구 선수)|김동준]]과 교체 투입되어 3분간 골문을 지켜 팀의 2-0 승리를 함께하였고, 광주전을 끝으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 1월, 치료를 마친 전상욱은 성남 FC 유소년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였고, 성남 유소년 육성반 U-12팀에 합류해 U-10 전담 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후 전상욱은 본인의 병명이 [[암|비인두암]]이었음을 밝혔다.
  • 전태일 . . . . 1회 일치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 전혜진(1970) . . . . 1회 일치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1회 일치
          * 효부가 비협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후지코의 이상을 제일 먼저 감지한 것도 효부였고 마기를 잠입하게 한 것도 있다. 실제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는 듯.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1회 일치
          * 실제로 효부는 자신은 "과거보다 현재를 소중히하는 사람은 못 된다"고 인정하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는 [[츠보미 후지코]]가 이런 상황을 예측 못했을리 없다고 보는데 실제로 바벨 내부는 텔레포트만 방해되고 있는 등 수상한 점이 많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1회 일치
          둘은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칠드런에게 구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이 둘의 강박관념을 자극해서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 "반대로 지켜지는건 싫다", "모두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선 블랙 팬텀에 의탁하는게 최고다"라는 비약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평소 바보로 일가견 있는 미오가 보기에도 앞뒤가 엉망진창인 전개.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블랙 팬텀이 그들의 "마음의 틈"에 세뇌를 집어넣은 거라고 본다. 미오는 떨어져 버린 카즈라 일행도 염려하는데 모모타로는 텔레파시로 그들도 교전 중임을 알린다.
  • 절연금 . . . . 1회 일치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상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반면, 절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임의로 손해보상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 정다정 . . . . 1회 일치
         이광낙(<small>인터넷 아이디:</small> Lv7.벌레)은 2012년 9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24인용 군용 텐트 혼자 치기(T24 소셜 페스티벌 또는 T24 행사)를 성공시켜 화제가 된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혼자서 24인용 군용텐트 칠수 있을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910/49262459/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1 = 박상훈 | 저자2 = 김진우 | 저자3 = 윤상호|쪽 = |날짜 = 2012-09-10|확인날짜 = 2012-10-27}}</ref> 그는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자 “되는데요”라고 답글을 단 바 있는데, 이 말은 그가 텐트를 실제로 혼자 칠 수 있음을 보이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유행어가 되리 시즌 2 - 제 14장│되는데요. .|url =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a_id=2012091021072828319|출판사 = 10asia|저자 = 최지은|쪽 = |날짜 = 2012-09-11|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만조 . . . . 1회 일치
         [[1929년]] 관제 친일 유림 조직인 [[경학원]]의 대제학을 지냈고, 국사 편찬 업무에 발탁되어 일본의 시각에서 역사를 적는 데 일조했다. [[1921년]]부터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일본 측의 시각에서 《조선사》를 집필하였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편찬에도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 정승화(육군) . . . . 1회 일치
         이후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영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영에서 [[백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태우 당선(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태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영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 정좌관심 . . . . 1회 일치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정진영(배우) . . . . 1회 일치
         실제로 만나보면 옆집 아저씨같이(...) 좋으신 분이라고 한다. 아들이랑 사이가 좋아서 "배우 정진영이 소개하는 절친 아빠 되는 방법"이란 인터뷰도 했다. 직접 읽어보면 좀 닭살돋지만, 자녀교육도 바르고 연기면 연기, 다 열심히인 듯. 게다가 [[애처가]]라고.
  • 정진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푸른거탑 제로]] - [[정진욱(푸른거탑)|정진욱 이병]] 역
  • 제령 . . . . 1회 일치
         테크모의 게임 령 제로 붉은 나비에서 유래한, 스탭이 유령에 시달리다가 패브리즈로 제령을 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방법은 페브리즈를 뿌리면 된다(…).
  • 조아영(배우) . . . . 1회 일치
          * [[지율]]과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동기. 신입생 오티 때 지율을 처음 봤는데, 당시 민낯으로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어서 별로 예쁜 줄 몰랐다고 한다. 아영은 개강 후 꾸미고 나타난 지율이 예뻤다고 회상했다. 둘은 자주 학교 앞에서 고기를 먹던 사이였으며, 실제로 지금도 가장 친한 듯 하다.
  • 주먹 . . . . 1회 일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무기…지만 사실 위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리 신뢰할 만한 친구가 못된다(…). 인간 끼리의 싸움에서는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지만. 왠지 [[여성]]들은 주먹보다 [[할퀴기]]라는 선입견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주먹도 많이 쓰는 것 같다.
  • 중화소바 . . . . 1회 일치
         본래 [[밀가루]]면을 사용한 [[국수]]를 일본에서는 '중화소바'라고 불렀다. 그런데 [[치킨]]라멘이 히트하면서 라멘이라는 명칭이 퍼져서 정착하게 된다. 그래서 라멘과 중화소바라는 명칭이 병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 지소 . . . . 1회 일치
          * 실제로 이런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다.([[https://myoji-yurai.net/searchResult.htm?myojiKanji=%E6%B1%A0%E6%B2%BC (참조)]])
  • 지아(1986) . . . . 1회 일치
          * ~~꿈이 PC방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서든어택을 잘한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1회 일치
          * 실제로 거인 측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희망을 만들어낸 전략은 모두 아르민이 입안한 것.
  • 진격의 거인/87화 . . . . 1회 일치
          * 당국에 잡혀간 그리샤에겐 혹독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당국은 그에게 올빼미의 정체를 캐지만 그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걸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끈질기게 심문을 반복한다. 이미 그리샤의 남은 손가락은 세 개 뿐이다. 그리샤가 아는건 전부 말했다고 애원하는데도 관리들은 또 하나 손가락을 자른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1회 일치
          소음 공해에 가까운 가비의 귀환인사가 역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리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콜트 그라이스]]의 머리도 울린다. 잘 마시기도 못하는 주제에 분위기를 너무 타버린 탓이다. [[포르코 갤리어드]]가 그 점을 지적했다. 어제 그 현장에 있었던 [[파르코 그라이스]]도 누가 시작한 거냐고 투덜거린다. 범인은 피크. "마시고 싶은 얼굴이라 줬다"고 책임회피한다. [[지크 예거]]는 어쨌든 콜트 쪽 문제로 간주해서 "피크의 배려를 차량 곳곳에 토해냈다"는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마가트 대장도 그 개판을 보고 어제 말리지 않은걸 후회했다.
  • 진헌식 . . . . 1회 일치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이긍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8월까지 관선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남도지사 임기 중이던 1952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충남대학교]] [[총장]] [[서리]]를 [[충남대학교/역사|겸직하였다]]. 이어서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가 [[곡물]] 관리상의 문제로 경질되고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짐 브라부라 . . . . 1회 일치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맥스 페인 2]]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를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추궁한다. 발레리 윈터슨이 [[블라디미르 렘]]의 애인이었다는 말을 들은 브라부라는 맥스가 뇌물을 받고 윈터슨을 쏜게 아니었다는걸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맥스를 경찰 자리에서 내쫓는다. 그때 맥스에게 계속 만나자는 말을 했고, 실제로도 맥스가 브라부라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차준환 . . . . 1회 일치
         '''차준환'''(車俊煥, [[2001년]] [[10월 21일]] ~ )은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어린 시절 CF모델과 아역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news.donga.com/3/all/20151208/75250655/1 국내 男피겨 ‘역대 최고점’ 차준환 “연기활동 위해 배운건데…”]</ref>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403 피겨 프린스 차준환, 내일은 피겨왕!]</ref> 2011년 SBS TV의 피겨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진지희]]와 짝을 이루어 출연했다. 2013년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 2018년 ISU 어텀클래식 내셔널 시니어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 하여, 한국 남자싱글 역사상 250점을 넘기며, 베이징 올림픽의 금메달에 희망을 안겼다.
  • 차희식 . . . . 1회 일치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고, 간척공사를 비롯해 송충이 잡는데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노동 착취가 심하였다. 또한 1907년 염업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 제염업자의 경영 기반을 해체시켰는데 이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었던 염업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일제의 수탈정책은 다른 지역보다 소작농의 비율이 높고 여건이 열악한 이 지역민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 착각남 . . . . 1회 일치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남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남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 창작:리넷 블랙번 . . . . 1회 일치
         그래서 학교 내에서만 끝나는 동아리 활동이 아닌 실제로 수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삼촌인 클린트와 종종 싸운다. 당연히 클린트 입장에서는 리넷의 부모님이 자기 아내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양육자로서 걱정하는 것이지만, 리넷은 이를 과보호로 받아들이고 싫어한다. 그래서 그나마 '똑똑해서' 리넷과 말이 통하는 파트너 [[창작:채드 헤링|채드 헤링]]을 통해 설득하지만, 그마저도 '똑똑한 척하는 게 재수없다며' 씹는다. 레스터야 두말할 것도 없이 무작정 씹히지만(…), 클린트나 채드와 달리 성격도 직장도 변변찮아서인지 자기 멋대로 도량을 베푼다며 말을 들어준다.
  • 창작:린다 딩글 . . . . 1회 일치
         털털하고 호탕하다. 어지간히 큰 일이 아니면 호탕한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대인배. 흑인 특유의 여유로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인지 동네 흑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실제로 결혼이나 연애 신청도 들어왔지만 본인은 그냥 우스개소리로 받아들여서 허사가 된다. 다만 본인이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
  • 창작:맹수인 . . . . 1회 일치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식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상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창작:무동군 . . . . 1회 일치
          * 오병장 월북 추정 괴담 - 무동군 인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오정복 병장이 [[총기난사 사고]]를 벌이고 [[월북]]을 한 사건에 얽힌 이야기. '월북 괴담'이 아니라 '월북 추정 괴담'인 이유는 오병장이 실제로 북한에 도착했는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색대의 수색 결과 휴전선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중에 흔적이 끊어졌으며, 북에서도 그런 인물은 월북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당시 부대원들 역시 오병장은 제대를 몇달 앞둔 [[말년병장]]으로서, 군생활도 특별히 문제없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고를 벌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창작:미키 그리지오 . . . . 1회 일치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마피아|트와일라이트 시티 마피아]]의 하부조직 [[창작:그리지오 패밀리|그리지오 패밀리]]의 두목 [[창작:첼레스테 그리지오|첼레스테 그리지오]]의 외아들로, 실제로 그리지오 패밀리의 카포(행동대장)를 맡고 있다. 미국 태생이기 때문에 본명은 미켈레가 아니라 마이클이다. 마피아 두목 아들내미라는 배경과 본인의 ~~쓸데없이~~ 잘생긴 외모 때문에 돈, 인기, 여자라는 삼종신기(…)를 가진 인생의 승리자.
  • 창작:세정종합병원 . . . . 1회 일치
         이런 입소문 끝에 단순히 '일본 의사 귀신 괴담'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731 부대에 관한 연구서적이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자[* 다만 이 서적의 출판은 본 괴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우연의 일치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731 부대의 조선인 희생자가 꿈에 나타나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주었다'는 식으로 반강제로 괴담에 얽히고 있다.] 세정병원의 괴담도 덩달아 크게 부각되었다. 결국 익명의 제보자가 세정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및 투자자들 대부분의 선조가 731 부대 협력자(일본인, 조선인 둘 다 포함)임을 밝혀냈다. 당연히 이 일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법정대응이 난무함에 따라 '찌라시'로 치부되었으며, 관계된 기사나 인터넷 자료 등은 모두 삭제되었다.
  • 창작:연합 택시회사 . . . . 1회 일치
         택시의 색깔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홍콩 택시와 비슷하게 빨간색과 하얀색을 섞어 쓰고 있다. 하지만 경영자와 주요 직원들이 중국인이고 본토 중국에 아직도 공산당이 남아 있는 것을 빌미삼아 속칭 '빨갱이 택시(Commies Taxi)'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당연히 이 멸칭을 증오하지만 작게는 개인의 생계부터, 크게는 중국교포들간의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묶여 지낸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1회 일치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 창작:좀비탈출/4-0 . . . . 1회 일치
         몸이 계속 떨린다. 오한이다. 정신적인 문제로 오한까지 올 수 있다니. 그럼 정신력으로 저놈들도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1회 일치
         병이 나는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예상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 예상이란건 해열제나 소화제로 처리되는 병에 대한 것이고 이토록 격렬한 발열과 의식의 끈이 끊기는 상황을 상정한게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손발이 남의 것 같고 신체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움직이는게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우연히 그게 전멸한 도시 한 복판에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나!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1회 일치
         그때 푹 자지 않았더라면 와트니가 하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봐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안다. 별점 테러를 하려다 보면 영화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보드 정도는 읽어봐야 하니까. 그때는, 예를 들어서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이야기를 "무슨 화성에서 농사나 짓고 있어? 전원일기냐?"같은 멘트를(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단 상스러웠다) 쓰기 위해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마션의 스토리와 와트니의 업적은 숙지하고 있다.
  • 창작:코스모폴리턴 . . . . 1회 일치
         동명의 옴니버스 범죄물 소설[* 단 제목은 ~~있어보이려고~~ 영어로 표기하여 COSMOPOLITAN이다.]이자 그 세계관의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비중은 프로젝트가 더 크다. ~~그래서 소설은 연재속도가 겁나게 늦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 및 해설 부족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개인 프로젝트로 전환되었다.
  • 창작:헤이즈 . . . . 1회 일치
         NTX에서 제작되는 선택지 소설. 구NTX에서 나린위키로 설정위키를 운영할 시절 시도했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다 사이트 개편을 통해 ~~나린위키보다 훨씬 간편하고 유용하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기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 청송군 . . . . 1회 일치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 총기 . . . . 1회 일치
         [[20세기]] 중후반의 [[AK-47]], [[M-16]] 등의 대표적인 [[돌격소청]]의 발명 이후로 개인용 총기는 기술적 발전에 정체를 겪게 된다. 개인 화기로서는 이미 위력과 성능이 충분하고, 개인 화기라는 한계 때문에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중량한계, 그리고 [[예산]] 등 다양한 문제로 개량이 지지부진하기 때문. 미래의 총기로는 무탄피소총이나 자력을 이용하는 [[코일건]], [[레일건]]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개인용으로는 아직 효용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인지 새로운 발명이나 개선은 정체되고 있다.
  • 최민호(유도선수) . . . . 1회 일치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 최여진(탤런트) . . . . 1회 일치
         지상파의 고정패널, [[케이블 TV]]의 진행자를 맡는 등 본업이 연기자라는걸 감안하면 꽤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였다. 과거 고정패널로 활동했던 "여걸6"[* 이게 이 프로그램의 여성 출연자들의 위치가 좀 미묘했다. 일단 대우는 MC급으로 퇴사하면서 어쩔수 없이 하차해야 했던 [[강수정]]을 제외하면 본인이 하차하지 않는 한 변동이 거의 없었지만 사실상 진행은 [[지석진]]이 혼자 맡았고 일반적인 당시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여성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의 진행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었으며 고정 페널이라 보기에는 당시 고정 페널로 나오던 [[이승기]], [[김종민]], [[신정환]]과는 대우가 완전히 달랐다.]에서는 주로 [[신정환]]과 엮이는 구도였으나 그리 오래 출연하진 못하고 4개월 만에 개인 스케쥴 문제로 하차하고 말았다. 프로그램내 비중은 거의 공기수준으로 아무래도 다른 여성 출연자들의 [[정선희|존]][[조혜련|재]][[현영|감]][[강수정|이]] 너무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묻혔었다.[* 다만 대부분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덕에 나름 비주얼 담당을 맡았었다는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여담으로 출연시 [[밸리댄스]]를 추는 특집편이 있었는데, '''[[뽕]]'''이 상의 위로 밀려올라가서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1915년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면서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었고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서화협회]] 전람회 정회원을 역임했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을 응용한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초상화 연작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연달아 수상했지만 그가 작품 활동 초기에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는 일본 화풍의 채색화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점차 한국의 전통적인 수묵 담채화의 관념적 작품으로 회귀하게 된다. 주로 산수화와 신선도 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국정원 제2차장으로 일하면서 2016년 6월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제3차장 시절이던 2015년 2월경 [[홍만표]]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정운호의 무혐의 처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실제로 2016년 6월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는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홍만표 변호사에게 사건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건넸고, 홍 변호사가 당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 검사에게 청탁하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2015년 2월 당시 최윤수 차장검사가 홍만표 변호사의 청탁 알선을 받고 정운호의 뒤를 봐줬기 때문인지 정운호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 최정호 (성우) . . . . 1회 일치
         *[[조이드 신세기제로]]([[챔프]]) - 이가
  • 최지우(영화배우) . . . . 1회 일치
         [[올가미(영화)|올가미]]가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1996년에 개봉하여 똥폼만 잡고 끝난 '귀천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로 하였으나, 건강문제로 인하여 도중 하차한다. ] 흥행은 못했지만 나름 호연과 더불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문제는 1997년 <올가미> 출연 이후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였으나, '''흥행작이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출연했지만, 일단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장동건]]이 조연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아무도 최지우가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 츤데레 . . . . 1회 일치
         겉으로는 상대에게 퉁명스럽거나 또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호의를 보이는 태도. 서브컬쳐나 문학 작품에서 먼 옛날부터 쓰여온 설정 중 하나이다.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 카치구미 . . . . 1회 일치
         브라질 경찰은 신도연맹(臣道連盟) 회원을 닥치는대로 검거하고, 일부는 감옥에 보냈으며, 추방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8월 27일에는 브라질 연방헌법 제정회의에서 "일본인 이민을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을 심의하기도 했다. 가부동수를 이뤘다가 의장이 반대표를 던져서 부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일본인 이민 금지에 찬성이지만 이런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일 뿐이었다.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트럼프에 반대하는 반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캡틴 아톰 . . . . 1회 일치
         [[그랜트 모리슨]]의 <멀티버시티> 이야기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 편에서 등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캐릭터만 DC 코믹스 캐릭터이고 실제로는 왓치맨이나 다름없는 작품인지라 캡틴 아톰은 문자 그대로 닥터 맨하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캡틴 아톰은 유일한 초능력자이자 거의 신급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며 과거에 있는 상태에서 미래의 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1회 일치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제로아워]]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1회 일치
         확장팩으로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제로아워]]가 있으며 후속작으로 [[커맨드 앤 컨커 온라인]]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취소되었다.
  • 컬트 종교 . . . . 1회 일치
         과격하고 이단적인 신흥 종교. 혹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집단.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사이비 종교]]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국가에서 컬트 종교는 사회적 문제로 여겨진다.
  • 쿄로충 . . . . 1회 일치
         리얼층 그룹의 말단으로, 리얼충이 되는데 집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리얼충이 아니다.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실제로 예수가 태어난 날은 아니라고 한다.
  • 크립토나이트 . . . . 1회 일치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상태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상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상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 키드르 . . . . 1회 일치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에 따르면, [[독소전쟁|대조국전쟁]] 전야 키드르가 [[스탈린]](!)의 꿈에 나타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면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스탈린은 부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몇백개의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독일의 침공에 국내의 이슬람이 동조할 것을 우려하여 이슬람 탄압을 완화시켰다.]
  • 킹덤/502화 . . . . 1회 일치
          * 여기에서 등장한 '사마상'은 실제로 기원전 243년에 연나라 군대를 대파한 인물이다.
  • 킹덤/507화 . . . . 1회 일치
          * [[양단화]]는 이신이 추천한 인재가 뜻밖에 어린 걸 신경 쓴다. 사실 이들은 실제로도 어리다. 나이로는 부대에서 가장 막내. 그래도 이신은 솜씨만은 틀림없다며 믿음을 보여준다. 단지 딱 하나 불안한 점이 있다고 하는데.
  • 킹덤/516화 . . . . 1회 일치
          * 지평선이 새까맣게 진군이 몰려들었다. 곧 업성은 농성 체제로 들어간다. 입구에 연결된 잔도에는 아직 건너는 중인 백성도 있었지만 황급하게 문을 닫았다. 이것 자체는 이목도 예정했던 작전. 그러나 그가 본 그림에는 업성 내부에 아홉 소도시에서 온 난민이 있지 않았다. 성주 조이백은 진군이 당도했다는 보고에 이어 또다른 낭보를 받는다.
  • 킹덤/517화 . . . . 1회 일치
          * 실제로 업으로 오는 병력 중 진군을 저지할 전력은 "알여"성과 "요양"성에서 오는 두 군대 뿐. 이들만 미리 요격하면 업공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 킹덤/518화 . . . . 1회 일치
          첫째, 자신이 합류하는 알여나 공손룡의 요양, 둘 중 하나가 움직여 반드시 진군을 쳐야 한다는 것. 즉 눈 앞의 양단화군을 격멸하라는 지시다. 다만 산민족은 미지수인 점이 많은 군대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실제로도 양단화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작은 교전이 몇 회 있었는데, 그때마다 큰 손해를 본 건 공손룡군 쪽이었다.
  • 킹덤/522화 . . . . 1회 일치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절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남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 킹덤/523화 . . . . 1회 일치
          * 조군 좌익은 선봉을 맡는 문제로 장수들 간에 작은 신경전이 벌어진다. 악영은 안면이 없는 조아룡, 마남자를 신용하지 못한다.
  • 탁석산 . . . . 1회 일치
         현대 한국 사회, 글쓰기, 직업 등을 주제로 소위 "생활철학"을 다룬 책을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의 철학은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앞의 세가지를 아우르는 방법론이자, 나중에는 그 세 가지를 지배하게 된 '실용주의'다.<ref>{{뉴스 인용|제목=<사람들> 생활철학서 낸 철학자 탁석산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59884|날짜=2008-11-11|뉴스=연합뉴스}}</ref>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2016년 일부 [[탈북자]] 단체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망명정부]]. 가칭 '북조선자유민주망명정부'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초에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설립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 탐라국 여왕 . . . . 1회 일치
          *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주도에는 탱자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사 조정철이 1812년 선조에게 본도의 성터에 해자를 파고 탱자나무로 둘러쌋으므로, 고려 때부터 탱자성(枳城)이라 불렸는데, 근래에 성곽이 붕괴되고 탱자나무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1749년 비변사 등록에 보면, 강화유수 원경하가 영조에게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자면서, "고려의 최영이 탐라국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 태영호 . . . . 1회 일치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 태종무열왕 . . . . 1회 일치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태종|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태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백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태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태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 토리코/383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100% 구르메 세포인 니트로를 먹이는건 도박인 다름이 없다. 회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아직 사천왕들은 깨어나지 못했다.
  • 토리코/384화 . . . . 1회 일치
          * 이렇게 되면 스타준과 토리코도 엄청나게 고령이 되는데, 실제로 스타준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젊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복선이었던 셈.
  • 토리코/386화 . . . . 1회 일치
          * 스타준이 "내가 찾아다니던 식재는 식운"이라던 발언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실제로 식운을 "식재"로 취급해서 섭취. 스타준이 등장하면서 "지금 나는 식운이 있다"고 한걸 보면 죠아의 식운을 흡수한 걸로 볼 수 있다.
  • 토리코/392화 . . . . 1회 일치
          * 토리코는 자신의 식운은 스타준이 플로제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것이라 먹어치울 수 없다고 말한다.
  • 토리코/396화 . . . . 1회 일치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백, 장남이 적, 차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백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백색이라고 첨언한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1회 일치
          * 수금 담당자 - "돈이 문제로군"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1회 일치
         폭탄을 발사하는 투석기. 20라는 암담하기 짝이없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써보면 더 암담하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1회 일치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식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태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 특촬물 . . . . 1회 일치
         하나 알아 둘 것이, 특촬물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 각주에서 언급한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도 그렇고 [[이글루스]]에서도 특촬 포스팅은 대개 [[애니메이션 밸리]]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등, 유독 애니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두 장르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특촬물을 특수 촬영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 특촬물은 엄연히 '''실사이자 드라마'''이다. 특촬물 더빙도 외화 더빙에 해당된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파이널 파이트 정식 속편들은 [[슈퍼패미컴]]으로 2탄과 3탄이 나왔다. 다들 1편만도 못한 함량미달로 묻혔으나 [[슈퍼패미컴]]용 2탄의 여성 캐릭터 '[[겐류사이 마키]]'가 [[CVS2]]에 등장하면서 잠시 재조명될 뻔 하기도 했다. 마키는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블 어퍼 등의 이식작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식작들 반응이 좋지 않아서 역시 그냥 묻혔다.(...)
  • 파일 드라이버 . . . . 1회 일치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같은 기술은 이 때문에 언듯 보기에는 정수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허벅지로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서 바닥에 부딯치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1회 일치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식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회 일치
          >강제로 떨어뜨려 주마!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회 일치
          >시간의 틈새를 강제로 열거야.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폐비 윤씨 . . . . 1회 일치
         남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 프레샤 . . . . 1회 일치
          * 보통은 뉴타입의 특수기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기동전사 Z건담]]에서 묘사한 프레샤가 가장 강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는 프레샤는 올드타입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뭔가 전장에서 식별 가능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프레샤라 봐도 무방할 듯.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프로 스포츠에서는 [[경기]]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징수하는 입장료 수익이나, 선수나 해당 스포츠를 주제로 한 상품의 판매, [[스포츠 마케팅]] 광고 효과를 노리는 광고 스폰서 등으로 수익을 얻어, 영리적으로 스포츠 단체를 운영한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 근대적인 연쇄살인범에 적용된 예로는 테드 번디가 있다. 테드 번디는 멀끔하게 생긴 외모, 괜찮은 스펙, 뛰어난 언변에다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그루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쇼를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결혼을 하였다.
  • 하이큐/210화 . . . . 1회 일치
          *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이 히나타를 남겨놓은걸 가지고 화제로 삼는다.
  • 하이큐/235화 . . . . 1회 일치
          * 스코어는 13대15. [[츠키시마 케이]]가 서브를 준비한다. 카라스노 벤치에선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에게 굳이 마이너스 템포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카이 코치는 "보여주는게 중요"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괴짜 속공의 등장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변했고 카라스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 하이큐/242화 . . . . 1회 일치
          * 관객석에서는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카라스노의 활약 상으로 떠들썩하다. 대부분 1학년 괴짜 속공 콤비나, 레귤러 중 1, 2학년 비중이 높은 점을 화제로 삼는데 아쉽게도 3학년들의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 하이큐/245화 . . . . 1회 일치
          * 호시우미의 동료는 이쯤에서 인터뷰를 끊는다. 그는 호시우미 대신 "말이 꼬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기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호시우미에겐 "칭찬하는 사람은 사심없이 칭찬하는 거고 실제로 너 자신이 불리한 것도 자각하고 있고 그런데도 활약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거다. 넌 자의식 과잉이다"라고 속사포로 제재를 가한다. 동료가 호시우미를 달랑달랑 들어올리며 사과드리라고 하자 호시우미가 싫어하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 하이큐/247화 . . . . 1회 일치
          리시버인 [[니시노야 유]]가 바로 눈치챈다. 실제로 어떻게 칠지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타나카도 리시브 진형 짜기 힘들겠다고 투덜댄다. 여기에 카게야마는 중학생 때, 인터하이 때 모두 베스트 서버 상을 탔다고 정보를 추가한다. 아즈마네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좌절한다.
  • 하이큐/248화 . . . . 1회 일치
          * 스가와라는 관중석에서 미야 아츠무의 극성팬을 본 일을 이야기한다. 부채에 커다랗게 아츠무의 이름을 써서 가지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돌 팬덤같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실제로 그들은 아이돌 같다며 1위팀 이타치야마하곤 다른 의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과 화려함을 겸비한 "최강의 도전자"라는 캐릭터. TV에서도 이걸 살려서 자주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 하이큐/257화 . . . . 1회 일치
          * 이나리자키의 첫 TO에서 코치가 이런 방침을 전원에게 전달한다. 카라스노의 괴짜 속공은 히나타의 기동력을 전제로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든 때려넣는게 장점. 하지만 미야 형제는 오사무의 원래 포지션인 우익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히나타가 아츠무를 전담마크하고 카게야마와 [[타나카 류노스케]]가 좌익과 센터를 리드 블록으로 막는 걸로 대응해본다. 히나타가 오사무를 얼마나 틀어막느냐가 관건인데, 히나타가 제대로 도움닫기만 하면 도달점이 팀내에서 가장 높고 반응도 빠르니 기대해볼만하다.
  • 하이큐/262화 . . . . 1회 일치
          명치를 찍어누르는 세 문장. 타나카는 곧바로 보복을 결심했다. 사와무라가 일찌감치 눈치챘다. 타나카는 외모 만큼이나 살벌하게 "인적 드문 곳에서 퍽하고" 하는 보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상대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실제로 오늘 우리팀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말들이었다. 타나카가 사와무라를 따라가며 따지듯 물었다. 저렇게 얕보이는게 정말 괜찮은 일이냐고, 좀 아닌게 아니냐고.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지만, 타나카가 들은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 하이큐/267화 . . . . 1회 일치
          * 시라미네의 조치는 재빠르긴 했지만 적절하진 않았다. 코즈메는 들켰다걸 알았지만 작전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른쪽이었다. 중앙에 멈췄던 시가는 공이 카이에게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카이가 짐착하게 스파이크. 뒤늦게 시가가 블록에 참가했지만 그의 팔에 맞고 텅빈 사루카와의 좌측에 내리꽂혔다. 완전히 속았다. 중계진은 넓은 레프트를 버리고 좁혀진 라이트를 공략한 의외성에 놀랐다. 그리고 사루카와의 블록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감행한 코즈메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세터일지 모른다고 호평했다. 정작 당사자는 방금 조금 짧게 올라갔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학대의 연쇄 . . . . 1회 일치
         [[체벌]]이 훈육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서는 별달리 문제시 되지 않았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의식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학대의 연쇄 역시 진지한 문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를 받다가 보호, 구조받은 아동에 대해서 면밀한 정신적 케어가 요구되고 있다.
  • 한국영 . . . . 1회 일치
         [[2016년]] [[카타르 SC]]가 2부리그로 떨어지자 [[알가라파 SC]]로 이적하였다. [[2017년]] [[7월 5일]] 군문제로 인해 [[K리그1]] [[강원 FC]]로 이적하였다.
  • 한규복 (1881년) . . . . 1회 일치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 한무숙 . . . . 1회 일치
         장편 작품으로는 [[한국방송]] 대하드라마로 각색되어 유명해진 《역사는 흐른다》 외에 《빛의 계단》, 《석류나무집 이야기》, 《만남》 등이 있다. [[정약용]]의 삶을 주제로 한 《만남》에서 보듯 한국 고유의 전통과 여인의 한에 대한 관심이 특징으로, 동양적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필집으로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이 외로운 만남의 축복》, 《내 마음에 뜬 달》 등이 있다.
  • 한상덕 . . . . 1회 일치
         *[[명탐정 코난: 제로의 집행인]] - 현병위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상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상훈의 남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 한호문 . . . . 1회 일치
         할아버지는 [[배천군|배천]][[군수]](白川郡守)를 지냈고 [[증직|증]] 가선대부 [[병조]][[참판]](嘉善大夫 兵曹參判)과 서림군(西林君)에 증직된 한창서(韓昌緖)이고, 아버지는 어모장군 [[충의위]](禦侮將軍 忠義衛)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형판(刑判)을 지내고 사후 [[증직|증]]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贈正憲大夫 議政府左參贊)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서원군(西原君)에 추증된 한강(韓綱)이고, 어머니는 우계이씨(羽溪李氏)로 지중추부사 이전(李晉+戈)의 딸이다. 형제로는 한선문, 한의문, 한사문 등과 칠계군 헌민공 [[윤탁연]]의 아들 윤길원에게 출가한 누이가 1명 있다. 그의 형제들은 그의 아버지 한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ref>경기도, 《경기금석대관 2》, (경기도 편역, 1987) 한양위 묘갈편</ref>
  • 한확 . . . . 1회 일치
         * 부인 : 남양부부인 홍씨 - [[남양 홍씨]] [[이조판서]], [[대제학]] 문양공 홍여방(洪汝方)의 딸 - 3남 6녀
  • 함병춘 . . . . 1회 일치
         독립 운동가이며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의 막내 아들이며, 장남 [[함재봉]]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미국 랜드연구소 한국정책석좌를 거쳐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차남 함재학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다.<ref>{{뉴스 인용|인용=실제로 우리 모두는 함대사의 장남인 함재봉 연세대 교수가 93년 10월 몇몇 학자들과 함께 부친 의 유고를 모아 책을 발간하자 매우 기뻐했다. 「한국의 법, 정치 그리고 문화」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영문 유고는 이미 86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발간했었다. 이 책은 근대 한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서구인들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역저라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 재학군도 부친의 위업을 따라 법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 함인섭 . . . . 1회 일치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 헤소린 가스 . . . . 1회 일치
         실제로 비슷한 것으로 [[소기 가스]]가 있다. 효과는 소기 가스와 각성제를 참조한듯.
  • 현정건 . . . . 1회 일치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 현주엽 . . . . 1회 일치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영입을 간절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상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 현진건 . . . . 1회 일치
         이들 형제는 현진건이 5촌 당숙 '''현보운'''([[1875년]]~[[1919년]])의 양자로 [[입양]]되어 들어간 뒤 법적으로는 친형제에서 6촌 형제로 바뀌었다. 관립 일어학교 출신의 보운은 고종 33년인 [[건양]](建陽) 원년([[1896년]]) 8월 3일에 외국어학교의 교관(敎官)이 되었고, 광무 3년([[1899년]])에는 궁내부 번역관, 광무 4년([[1900년]]) 12월 24일에는 예식원 참리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광무 7년(1903년) 11월 11일에 주일공사관 이등참서관이 되었고, 광무 8년(1904년) 일본 보병대 수원(隨員)으로 일본으로부터 즈이호오 4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병조|군부]] 군무국 포병과로 옮겨 정위가 되었다.
  • 혜정(1993년 8월) . . . . 1회 일치
          * 닮은 동물은 [[사자]]나 바다에서 사는 동물들을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찬미(AOA)|찬미]]는 개그 만화 보기 좋은 날에 나오는 우사미를 밀고 있다. 실제로 찬미의 동물 농장 시리즈 중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편.
  • 홍경인 . . . . 1회 일치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 홍순언 (1530년) . . . . 1회 일치
         이윽고 [[1588년]](선조 21년) [[대제학]](大提學) [[황정욱]](黃延或)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洪聖民)을 부사로 파견했다. 이때 홍순언은 역관으로 파견되었다.
  • 홍유경 . . . . 1회 일치
         '''홍유경'''([[1994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전 멤버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철강 제조업체인 [[DSR제강]] 창업주였던 홍순모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으나<ref name=hongyk>{{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1000억대 재력가의 딸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9/2012020902006.html | 저자=한상혁 기자 | 출판사=조선일보 | 날짜=2012-02-09 | 보존url=http://archive.is/CFdQ | 보존날짜=2012-07-23 }}</ref> [[2013년]] 4월 학업 문제로 [[에이핑크]]에서 탈퇴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탈퇴..에이큐브 측 "학업 전념" |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3042315233618713&type=1&outlink=1 | 출판사=스타뉴스 | 저자=윤상근 기자 | 날짜=2013-04-23 | 보존url=http://archive.is/OkU7D | 보존날짜=2013-05-01 }}</ref>
  • 홍진 . . . . 1회 일치
         * [[1924년]] 5월 임시의정원 내에서 개헌 문제로 분란이 일자 사임후 [[장쑤 성]] [[전장]]에서 은거.
  • 홍혜경 . . . . 1회 일치
         '''홍혜경'''([[1959년]] 7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리릭 레제로 소프라노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는 리릭-리릭 스핀토 소프라노까지를 아우르는 영역을 개척하였으며,[[조수미]]와 [[신영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134148 <2006 신년특집-한국이 낳은 글로벌 리더들>“세계로 뻗는 한국문화 내가 이끈다” 기사 내용중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부분 게재되어 있음 《문화일보》2006-01-02 작성 : 김순환 기자]</ref>
  • 황보관 . . . . 1회 일치
         [[2008년]] [[3월 25일]] [[슈에이샤]]에서 발매된 [[비즈니스 점프]]의 증간지 <BJ혼> ([[5월 1일]])에서 연재되는 '[[오이타 트리니타]] 이야기・제로부터 스타트'(원작:기무라 모토히코,작화:미야기 신지)가 [[오이타 트리니타]] 설립에 분주하였던 前 자치성 동료 [[미조하타 히로시]]와 황보관의 교류를 그리고 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news/2008/0423/20080423101020202000000_5454151980.html 황보관 오이타 총괄 본부장, 일본 만화잡지 주인공 화제]</ref>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12944의 페이지중에 602개가 발견되었습니다 (500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